계절 가리지 않고 발병·확산…‘안전 지대’가 없다

 

# 국내 AI 발생현황과 특이점

 

우리나라에서는 AI가 1996년 3월 18일 경기도 화성의 종계장에서 처음으로 발생했다. 이날 발생한 AI 바이러스는 H9N2의 저병원성(폐사율 20~30%)이었다. 이 후 같은 해 5월 18일 전라북도 정읍(폐사율 12%)과 8월 1일 경상북도 영천(폐사율 23.6%)에서도 저병원성 AI가 발생했고 당시 정부는 해당 5개 농장의 가금류 9만7963마리를 살처분 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더 이상 AI 청정지역이 아니게 됐다.

1995년 중국과의 국교 수립 이 후 양국 간 무역·관광의 교류가 본격화된 시기라는 점에서 당시 수의·축산 전문가들의 우려는 컸다.

2001년 이 같은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2001년 5월 23일 중국산 수입 오리육(중국 상하이의 Daying Food)에서 고병원성 AI 바이러스가 분리됐고, 정부는 중국산 가금육 수입 금지 및 수입된 가금육을 폐기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와 동시에 국내수입 가금육에 대한 전면적인 검사에 들어갔다.

이 사태로 인해 가금육의 국제 교역이 바이러스 전파의 주요 경로라는 점이 부각됐다. 실제로 수입가금육에서는 ND(뉴캐슬병)나 저병원성 AI가 등 다양한 가금 질병의 바이러스가 분리되기도 했다.

2003년에는 국내에서 첫 번째 고병원성 AI(H5N1)가 발생했다. 2003년 12월 10일부터 2004년 3월 20일까지 총 19건(닭 10건, 오리 9건)의 고병원성 AI가 발생했고, 392농가의 가금류 528만 마리가 살처분 됐다. 여기에 투입된 비용도 1500억원에 이른다. 당시 국내 유입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역학조사 결과 오리 농장이 수평전파의 주 요인으로 지목됐다. 2006년 11월 22일부터 2007년 6월 18일까지는 총 7번의 고병원성 AI(H5N1)가 발생해 460개 농장의 280만 마리의 가금류가 살처분 됐다.

이 시기 농장에서 발생한 고병원성 AI 바이러스는 야생철새로부터 분리된 바이러스와 동일함으로써 야생조류를 통해 바이러스가 농장에 유입됐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렸다.

특히 처음 신고 시 이미 5개 농장이 감염돼 있었다는 점(최초 신고 농장과 처음 발생 농장이 다름)에서 전국적인 감시망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2008년에는 이례적으로 겨울이 아닌 봄에 고병원성AI가 발생했고, 전국적으로 유행하는데 단 42일이 소요됐다는 점에서 방역당국을 긴장시켰다. 전국 11개 시도에서 846만 마리가 살처분 되는 등 역대 최대 살처분 마리수를 기록했다.

당시 서울을 포함한 주요 도시에서도 발생함으로써 인근 재래시장 방역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2010년 12월 29일 발생한 고병원성 AI는 다음 해 5월 16일까지 이어져 종식에 139일이 소요됐으며 286농가에서 647만 마리가 살처분 됐다. 검사 결과 4건의 야생조류와 1건의 분변에서 고병원성 AI 바이러스가 분리돼 철새에 의해 바이러스가 유입됐을 것으로 추정됐다.

2014년에는 이전과는 달리 두 종류의 H5N8형(고창주, 부안주)의 고병원성 AI가 1월 16일 최초로 발생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현재까지 살처분 마리수는 2008년을 넘어선 1500만 마리에 육박하고 있다. 살처분 보상금 또한 1251억원이 지급됐지만 생계안정자금 등 추가로 들어갈 비용을 고려하면 살처분 비용은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특히 이번 고병원성 AI는 계절을 가리지 않고 발생했다는 점에서 고병원성 AI 상재화에 대비해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 고병원성 AI 백신, 접종 왜 안하나

 

사상 최악의 고병원성 AI 사태가 발생하자 백신 사용을 두고 찬반 논란이 적지 않다. 방역당국은 지금까지 백신사용 없이 청정화를 실현한다는 방역정책 기조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무분별한 살처분에 대한 지적이 끊이질 않자 최근 고병원성 AI 백신 도입을 검토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병원성 AI 백신 접종을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무분별한 살처분이 아닌 백신 접종을 통해 질병으로부터 동물을 보호하고 바이러스 확산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초동방역이 실패해 고병원성 AI가 전국적으로 확산 또는 만연되거나 방역체계가 허술해 살처분 정책만으로 확산을 막을 수 없을 경우와 홍콩과 같이 지속적으로 특정지역에 고병원성 AI가 전파되는 경우에 백신 접종과 살처분 정책을 병행해 실시하는 것이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수의전문가들은 말한다. AI 바이러스는 크게 A, B, C 형으로 3종으로 분류된다. 이 중 B형과 C형은 사람에게 감염되고, A형 바이러스는 사람을 비롯해 닭, 칠면조, 오리, 돼지, 말, 밍크, 물개 등 다양한 종류의 척추동물에 감염된다.

A형 AI 바이러스는 다양한 아형(subtype)이 있는데 바이러스 표면에 혈구응집소의 특성에 따라 H1부터 H16까지 16종이 있으며, ‘뉴라미니다제’라는 효소가 나타내는 표면 단백질의 특성에 따라 N1부터 N9까지 9종의 아형으로 구분된다. 따라서 H형과 N형을 조합할 경우 A형 AI바이러스는 이론적으로 총144종(16×9)의 아형이 존재하게 된다.

특히 AI바이러스 유전자는 다른 바이러스와 달리 한선으로 연결된 것이 아니라 별개의 유전자 분절 8개로 구성돼 있고, 두 종류의 AI바이러스가 한 개체에 동시 감염되면 8개의 유전자끼리 섞여 재편성이 일어나면 이론적으로 256종의 유전자 배열이 서로 다른 AI 바이러스가 출현(변이)할 수 있다.

이처럼 고병원성 AI바이러스는 혈청형이 많고 변이가 심해 현재나 기존에 유행했던 유형의 바이러스 타입의 백신을 개발한다 해도 백신 효과를 장담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2008년 막대한 피해를 입혔던 H5N1형 타입의 백신을 개발해 접종했다 해도 2014년에는 H5N8형 AI가 발생했기 때문에 백신의 효과가 없다. 이처럼 미래에 어떤 형의 바이러스가 출현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이를 염두에 두고 수십 종류 혈청형의 백신 개발에 나서기가 말처럼 쉽지가 않다는 것이다.

또한 경제성 측면에서도 현행 살처분 보다 많은 비용이 소요된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전반적인 의견이다.

양계산업 관계자들도 백신 접종은 가금류 수출에 큰 타격을 입힐 수 있기 때문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 충북대학교 모인필 수의과대학 교수는 “고병원성 AI 백신은 달콤한 사탕이지만 독이 될 수 있다”면서 “이상적인 백신이 개발돼도 계군의 5% 가량은 항체형성이 불충분하고, 지속적인 바이러스의 전파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한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수의전문가도 “고병원성 AI 백신을 도입하기 전 WHO, OIE 등에서 요구하는 차단방역시스템을 충분히 구축해야 한다”면서 “현재로선 고병원성 AI 백신 접종은 능사가 아니다”고 전했다.

이 같은 이유로 고병원성 AI 백신은 전세계적으로 상용화돼 공식 또는 비공식적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도입을 꺼려하고 있다.

 

# 고병원성 AI 전용 소독제, 효과 있나

 

현재 국내에서 품목허가 된 가축방역용 소독제 중 AI 바이러스에 대한 소독제 효력시험을 거친 소독제는 193종으로 성분별로 크게 염기제제, 산성제제, 계면활성제, 산화제제(염소계, 산소계), 알데히드로 분류된다.

방역당국은 효력시험을 거친 소독제가 고병원성 AI 바이러스 사멸 효과가 있기 때문에 이를 선택해 사용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들 소독제 중 일부 제제들의 효과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익명의 한 업계 관계자는 “고병원성 AI 방역에 사용되고 있는 소독제 중 많은 제품이 고병원성이 아닌 저병원성 바이러스로 실험돼 허가가 나기 때문에 고병원성 AI 바이러스 사멸 효과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수의전문가)는 “AI 바이러스에 효력을 인증 받은 소독제제들 중에는 구연산과 능금산 성분이 들어간 제품이 있는데 이들 성분은 FMD에는 효과가 있지만 AI에는 효과가 떨어지고 소독 잔류 효과도 낮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방역전문가들은 고병원성 바이러스에 맞춘 효력 실험이 필요하고, 변이가 심한 바이러스의 특성상 효력 재평가를 주기적으로 실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한 제품 성분별로 사용법과 희석배수가 다르기 때문에 성분과 용법, 용량을 잘 파악한 후 사용해야 하며, 무엇보다도 정기적으로 살균 소독을 실시할 것을 강조했다.

이외에도 소독제 생산업체들이 카피제품 생산을 지양하고, 현재 소독제로 사용하고 있는 주요 성분 외에 안전하면서도 강력한 효력을 발휘하는 소독물질 개발도 다양하게 진행돼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 농가와 정부의 의식 전환 필요

 

고병원성 AI가 발생 시 확산을 최소화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신속한 신고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양계농가의 신고 의식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최근 열린 AI 관련 한 공청회에서 모인필 충북대 수의과대학 교수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특히 올해 가금 농장에서 신고를 꺼려하는 경향이 짙은 것으로 나타났다.

모 교수의 자료에 따르면 고병원성 AI가 처음 발생했던 2003년은 발생 26건 중 농장주가 신고한 경우가 19건으로 신고율이 73.07%, 2006년에는 12건 중 7건으로 58.33%, 2008년에는 106건 중 33건으로 31.13%, 2010년에는 91건 중 53건으로 58.24%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번(2013년 11월 말 기준)의 경우 고병원성 AI 양성 판정이 내려진 295건 중 신고를 통해 밝혀진 경우는 13.22%인 39건에 불과했다.

이 결과를 두고 한켠에서는 이전에 유행한 H5N1형은 감염 시 임상증상이 빠른 반면 올해 유행한 H5N8형은 증상이 서서히 나타나 초기 신고가 늦을 수밖에 없다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모 교수는 이보다 농장주가 여러 이유로 발생신고를 꺼려한 것으로 추정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 중 하나는 살처분 보상금 지급 시 농가의 과실 정도에 따라 보상금이 차등지급 되기 때문에 신고를 꺼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설명이다. 또한 신고 시 바로 이동제한 조치가 내려지다보니 신고를 망설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농장에서 신고가 늦어지고, 발생신고 후 조치가 취해지다 보니 신속한 조기 대처 및 차단방역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농가의 신고 의식을 높이기 위한 AI 신고포상제 도입이 시급히 추진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폐사계 처리 문제와 관련해서도 농가들의 의식 전환은 필요하다. 다수의 양계농가들에 따르면 폐사계가 발생하면 편의상 개 사육 농가에 위탁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이럴 경우 폐사계가 원인 모를 바이러스를 안은 채 여러 곳을 떠돌다 개 사육 농가로 들어가기 때문에 질병 전파의 요인이 될 수 있는 우려가 크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충남 천안과 부여에서 AI 양성농장의 죽은 닭을 먹인 개에서 H5 항체 양성이 확인된 바 있다.

이 같은 행위는 위법일 뿐만 아니라 방역·위생 상 위험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에 수의축산 전문가들은 양계농가들이 지양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울러 현재 정부 주도의 방역정책은 발생신고 후 조치, 발생 후 역학 조사, 차단방역 미흡, 방역행정 전문가 부재, 중요 결정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등의 다양한 문제점을 안고 있기 때문에 민간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민간주도 방역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는 주문도 일고 있다.

또한 고병원성 AI 바이러스의 지속적인 변이 발생에 대응하고, AI가 국민보건과 관련돼 상시 문제화되고 있는 것을 감안, 효율적 대처를 위해 AI전문국가기구(상시통제 전문조직)의 설립도 추진도 요구되고 있다.

또 정부에서 구성한 역학조사위원들이 탁상공론에 빠져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는 만큼 지역 축산 현장을 꿰뚫고 있는 현장 수의사들의 역학조사위원 위촉도 검토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수의전문가들은 특히 국내에서의 AI 발생이 한·중 교류가 본격화된 이후부터 시작됐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AI 이외에도 ND나 QX타입 IB의 국내 발생도 중국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양돈에서의 PED나 FMD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국내 수의전문가들은 중국을 ‘가축질병의 판도라 상자’로 우려하고 있다.

이와 관련 업계 한 관계자는 “올해 중국과의 FTA 체결에서 축산 주요 품목은 대부분 양허에서 제외됐지만 번식용 가축이나, 돼지비계 등의 일부 축산 품목은 개방됐다”면서 “정부의 안일한 협상으로 판도라의 상자가 언제 다시 활짝 열려 버릴지 모를 위험성을 안게 됐다. 어떤 일이 있어도 정부는 중국과의 FTA 협상에서 축산분야의 개방은 막았어야 했다. 특히 앞으로 축산분야의 품목 확대는 절대로 있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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