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체결 갈수록 탄력 받아 지난 한해만 4개국과 서명

 

칠레와의 첫 FTA 발효 이후 10년이 지난 2014년말 현재까지 체결된 FTA는 15개이다. 2년에 3개 꼴로 협정을 타결했다. 지난해만 해도 캐나다·중국·뉴질랜드·베트남과의 FTA가 타결됐다. 가히 광폭의 속도라고 불리워질만하다. FTA 체결 수는 15개지만 EU(유럽국가연합)·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등을 포함하면 한국은 실질적으로 총 54개 국가와 자유무역을 하게 됐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의 34개 회원국 중 한국과 FTA를 맺지 않은 나라는 일본과 멕시코 그리고 이스라엘 등 3개국에 불과하다.

정부는 한국의 ‘경제영토’가 73.45%로 확대됐다고 밝혔다. 이는 세계국내총생산(GDP)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 1.74%와 FTA를 체결한 상대국 비중 71.71%를 더해 73.45%라고 설명했다. 경제영토가 넓어졌으니 경쟁력을 갖춘 국내 기업은 경쟁국 기업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세계 곳곳에서 장사를 할 수 있게 됐고, FTA를 체결한 상대국 비관세장벽이 일부 허물어지면서 국내 인력과 자본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자유무역협정으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될 농축산업을 비롯한 중소기업들은 FTA의 행보를 빛처럼 빠른 ‘광폭(光幅)’이 아닌 미친 걸음이라는 ‘광폭(狂幅)’ 이라고 비난하면서 “국가 경제를 위한 불가피한 것이었다면 먼저 희생되는 산업의 종사자들을 이해시키고, 합당한 대책을 마련했어야 했다”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FTA 찬성론자들은 FTA 체결이 국내 산업 구조조정을 촉진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일자리를 잃는 이들은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이동시킬 필요가 있다고 환영했다. 이들의 주장에는 영국의 고전파 경제학자 데이빗 리카도(David Ricardo)의 「비교우위이론」이 짙게 깔려 있다. 쉽게 이야기 하자면 선택과 집중으로 표현할 수 있는 이 이론은 개인의 일상이나 국가 간의 무역에서도 꽤 설득력이 있다.

선진국들의 발전상을 따라가면서 모방하고 때로는 창조하면서 그들이 이룩할 때까지의 시간을 대폭 줄여 「한강의 기적」을 일군 우리로서는, 한 번 더 추종하고 싶은 욕구가 솟구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비교우위 이론은 설득력이 있어서 자유무역에서 희생 당하는 농축산인들조차 반박하기가 궁색하다.

정부는 농축산업을 미래의 희망산업이라고 강조한다. 정보와 최첨단 기술을 복합적으로 접목시키면 농축산업의 전도가 유망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농촌의 현실을 선진국들의 농업 현실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맞지 않다. 또 하나 비교우위론이 정상적으로 작동되려면 ‘공정 무역’이라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공정하지 못한 자유 무역은 이미 ‘자유’의 의미를 잃는다.

선진국들의 선진화 과정은 ‘먹는 문제’의 해결에서 시작됐다. 문화인류학자들의 말처럼 인류는 끊임없이 기아와 싸우면서 살아왔다. 어떻게 하면 기아에서 탈출할지 연구하면서 곡물의 수확량을 증대 시켜 왔고, 그러한 과정에서 기계화를 통한 잉여가 발생하고, 농촌의 노동자가 도시로 유입되면서 녹색 혁명과 산업 혁명이 함께 이뤄졌다.

과학과 기술 혁명이 이뤄지면서 수확량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20세기 초만 해도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로 다시 기아가 찾아 온다’는 멜서스의 악몽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농업은 ‘기아로부터 탈출’ 이라는 인류의 끝없는 과제를 안고 있다. 때문에 기후 변화 등에 따른 잦은 호·불황은 각 국가의 정부가 해결해야 할 선결과제였다. 국가의 개입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는 말이다.

유럽의 농업에 대한 보조나 미국의 보조는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막대한 자금으로 투입되고 있다. 특히 미국의 농업에 대한 보조는 자국 농민들이 작물을 끊임없이 늘리는 촉발 요인으로 작용해 전 세계적으로 값 싸게 곡물을 수출하면서 세계 곡물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게다가 후발주자들이 추월하지 못하도록 장하준 교수의 말처럼 사다리를 걷어 차고 있다.

미국의 한 수출업자는 “미국은 지나친 풍요와 잉여에도 불구하고 가장 값싸게 곡물을 생산하는 국가가 아니다. 미국이 곡물은 다른 국가보다 오히려 비싼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타국으로 수출하기 위해서는 할인을 해야 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가격 경쟁력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막대한 국가 보조금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아시아를 비롯 라틴 아메리카의 여러 나라들이 자국과의 경쟁대열에 끼여 들다 1998년 금융위기에 처하자 세계 무역 시스템의 공식 은행인 IMF(국제통화기금)는 160조 원에 달하는 구제 금융을 약속했다가 갑자기 미국 곡물 상당량을 추가 구입하겠다는 약속을 하지 않으면 자금 지원을 할 수 없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그들은 당시 이들 국가들이 자국 농업을 보호하는 각종 지원과 외국산 농산물에 대한 관세 등 제약을 모두 해제시킬 수 있었다.

역으로 미국 등은 타국의 농축산물이 자국으로 수입되는 것에는 갖가지 명목을 붙여 강력한 제재를 가한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말하는 ‘무역’이란 공정한 게임이 아니라 이미 ‘불공정’한 것이 현실이다. 정부가 제시하는 ‘농업=희망’이라는 공식을 우리가 이해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이유다.

우리의 FTA 찬성론자들이 희망적으로 이야기하는 ‘노동력의 이동’도 1970년대나 1980년대처럼 경제가 활발하게 진척되면서 노동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에나 가능한 일이다. 한국의 실업률은 2014년 11월 현재 공식적으로 3.2%이다. 그러나 공식 실업통계에서 빠져있는 아르바이트생 등을 포함해 ‘사실상 실업률’은 10.1%로 집계됐다. 열 명 중 한 명은 쉬고 있거나 시급 5300여원 짜리 인생이라는 말이다.

지금은 현재 대기업을 중심으로 조용한 대규모 해고 바람이 불고 있는 상황이다. 경실련 관계자는 연말에 이미 2만6000여 명의 직장인이 회사를 떠났고, 연 초까지 그 수는 3만 여명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인위적인 ‘노동력의 이동’이 농촌이나 도시나, 농민이나, 직장인이나 그 어느 누구에게 도움이 될지 궁금한 일이다.

누군가 묻는다. “선진국들은 대부분 농업의 강국인데,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선진국의 대열에 참여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우리는 자유무역을 한답시고 농축산업을 기꺼이 그리고 선 듯 희생하니 하는 말이라는 설명을 붙인다.

경제영토의 확장보다 중요한 것은 정말 FTA가 대한민국 서민들의 삶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느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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