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에서 아침을 준비하느라 부산한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 “당신 오늘따라 참 예뻐 보여” 한마디 하자 눈을 부라리면서 “이 잉간이 미쳤나” 한다. 하지만 식탁 위에 놓는 접시나 밥그릇 소리가 사뿐하다. 출근길이 가볍다.

남편이 출근하고 나자 아내는 재빨리 안방으로 들어가 거울 앞에 서서 펑퍼짐한 몸매를 쳐다 보고 머릴 매만지면서 “내가 요즘 살이 좀 빠졌나?” 웃는다. 잘나가던 처녀 때의 모습을 떠올리며 잠시 우쭐거린다. 그리곤 다시 거실로 나와 전화통을 붙잡고 시집간 딸에게, 친구에게 남편이 한 이야기를 자랑삼아 서너시간 씩 떠들어 댄다. 입에 발린 소리도 이 정도면 애교다. 가끔씩 찌든 삶에 활력소가 된다.

 

국민 상대로 한 범죄

 

선거 때만 되면 후보자들은 공약을 내세운다. 뭘 해주겠다느니, 심지어 노예가 되겠다느니, 주민과 국민들에게 온갖 입에 발린 소릴 늘어 놓는다. 그걸 믿고 뽑아주면 모르쇠로 일관한다. 그래서 정치인들의 공약(公約)을 공약(空約)이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이 사람은 다를 것이라는 착각 속에 속고 또 속는 것이다. 이들의 입에 발린 소리는 개인의 그것과 차원이 다르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의 약속 불이행은 국민을 상대로 한 범죄다.

최근 범 세계적 차원에서의 FTA 협상 체결과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 참여할 뜻을 밝히고 있는 정부가 수출드라이브를 강력하게 걸고 있다. 이에 편승해 농림축산식품부도 농축산물 수출에 사활을 걸고 있는 모양세이다. 농축산 강국들이 축산물을 수출하고 있는 데 우리라고 수출하지 말란 법도 없으니 그럴 듯 하다.

 

수출이 말로 될까

 

자원이 없는 가난한 대한민국이 이만큼 성장한 배경도 수출에서였고 정신적 배경은 ‘하면 된다’는 불굴의 정신이요, ‘안되면 되게 하라’는 무대포 정신이었다. ‘수출지상주의’에 빠질만도 하다. 그러나 농축산업은 제품이 아니다. 뚝딱 기계로 찍 듯 만들어 내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 농작물이 풍년이거나 흉년이거나 항상 빚에 쫓기는 농민의 상황이 되풀이 되고 있는 구조가 바뀌지 않고서는 시쳇말로 택도 없는 이야기다.

산적한 문제들을 제쳐두고 ‘수출이야 말로 한국농업의 살 길’이라고 정부가 기치를 들고 앞장 서는 꼴은 농축산인들을 수렁으로 끌고 가는 형국이다. 가만히 있는 농축산인들을 부추겨 놓고 정작 문제가 발생하면 골탕먹는 사람은 농축산인들이다.

최근 중국은 한국산 흰우유에 대해 수입금지 조치를 내렸다. 자신들이 마련한 기준에 부적합하다는 이유로 그나마 아름아름 수출되던 한국산 흰우유에 강력한 제재를 가했다. 다시 수출하려면 기존의 설비를 모두 바꿔야 할 판이고, 대응 한 번 제대로 못한 채 당했다는 평가이다. 중국의 한국산 농축산물 수입 제재는 이 뿐만이 아니다.

이 대목에서 궁금하다. 그토록 수출의 중요성을 강조한 정부는 그동안 뭐하고 있었느냐는 것이다.

농축산부의 한 관계자는 FTA와 관련 한우산업 정책 설명과 토론회의 자리에서 ‘한우의 대중국 수출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어떻게 검토하겠다는 것인지 참으로 모를 일이다. 축산을 담당하는 정부의 담당공무원이 농가와 같은 생각이면 그 산업은 볼짱 다 본 것과 진배없다.

정부가 농축산물 수출에 드라이브를 걸 생각이면 기존의 수출업체나 영농법인들에게 먼저 물어봐야 할 일이다. 지금도 정부의 도움조차 바라지 않고 개인적으로 발이 닳도록 현지를 돌아다니면서 상황을 조사하고 분석하고 조금씩 물량을 늘리고 있는 그들에게 한 번 물어보라. 대답은 간단하다. ‘정부가 끼면 될 일도 안된다’는 것이다. ‘판이나 엎지 말라고’ 말이다.

 

공무원 책임제 절실

 

1년이나 2년 순환보직을 하면서 누가 있어 국가 간의 교역문제를 풀어낼 것이며, 수출관련 시스템을 갖출 수 있는 지 참으로 궁금할 따름이다.

잇따른 농축산물 수입 개방의 대응책으로 농축산인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하는 움직임은 눈물겹게 감사하지만 그것을 담당하는 공무원이라면 농가와는 생각이 달라야 한다. 수출이 큰 그림이라면 먼저 국내 산업의 안정과 병행해야 하고, 지속적이고 일관된 시스템이 구축돼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정부가 주도하고 나서서 시작된 많은 정책의 실패를 지금까지 봐 왔고, 보고 있다. 그 말을 믿고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이들은 참여한 열성만큼 참담함을 겪었다. 그들은 말한다.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고 말이다. 공무원 책임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말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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