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취임 1년을 맞아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올 예산 13조5000억원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전제한 후 “어려운 집에 시집 온 며느리처럼 꼼꼼히 챙기겠다”고 밝혔다. 예산은 부족하지만 투자의 효율성, 선택과 집중 등 지역농업 특성에 맞는 농정을 추진하겠다는 의미이다.

이 장관은 또 AI와 관련 “국방부 장관이나 감사원 사무총장 등도 ‘도와줄 일이 없느냐, 오리고기·삼계탕을 먹는다’는 등 내일처럼 관심을 가져준다”면서 “모든 부처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준 덕택에 AI 방역체계가 일사불란하게 작동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확산방어 애썼지만

 

한 쪽에서는 방역체계에 구멍이 뚫렸다고 비난하는 데 이 장관은 ‘일사불란하게 작동됐다’고 판단하는 것이 어째 좀 궁색해 보인다. 많은 공무원과 방역사, 농협 직원 심지어는 군 병력까지 투입되면서 AI 확산을 막으려고 애써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경북에서의 AI 발생은 정부가 말하는 방역체계가 얼마나 허술한 것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난 1월 29일부터 닭·오리를 출하하기 전 가축방역관이 현장을 방문해 임상검사를 하고 문제가 없을 때만 가금이동승인서를 발급해 주는 「출하 전 사전임상검사제」를 시행해 왔다. 농축산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택에서 닭을 분양할 때 가축방역관이 현장을 방문하지 않고 팩스로 이동승인서를 발급한 것으로 보인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평택시 가축방역관의 업무 태만 여부를 확인하기로 했다.

그러나 수의 전문가들은 “임상검사만으로는 AI증상이 나타나지 않은 잠복기의 닭과 오리를 걸러낼 방법이 없다”면서 “가축이동승인제도가 무용지물”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정부 스스로 임상검사의 한계점을 인정하면서 모든 책임을 방역관 개인에게 떠넘기려고 한다고 비난했다. 허술한 과정의 이동승인서를 가지고 평택에서 경주까지 가는 동안 어떤 제재도 받지 않았다. 경주시 AI방역대책본부가 설치한 이동방역초소를 무력화시킨 것도 그 승인서 한 장 이었다.

 

축산 피해 애써 축소

 

지금 정부와 방역당국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방향감각을 잊은 듯 하다. ‘이것이다. 저것이다.’ 추측만 난무하고 건수(?)라도 생기면 책임을 덤터기 씌우려는 모양새이다. 살처분 보상금 삼진아웃제가 그랬고, 일부 농가들의 소독 태만을 축산 전체로 몰고 갔다.

그러는 사이 어물쩍 「가축분뇨의 관리 및 이용에 관한 법률」개정안이 지난달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불법 축사에 대한 사용중지명령과 폐쇄명령이 가능해졌다는 뜻이다. 가축분뇨를 자원화하기 위해 생산되는 퇴·액비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을 준수해야 한다. 축산업을 옥죄는 각종 규제들이 그 뒤를 따른다.

또 한·호주FTA 체결에 이어 캐나다와의 협정도 체결됐다. 한동안 말 많던 ‘캐나다 구스’가 5만원 인하되고, 메이플 시럽 판매가 늘어날 것이라는 보도도 나온다. 지난해 쇠고기 수입국가의 비중을 들면서 캐나다가 0.6%였다며 직격탄을 맞은 축산업계의 피해를 애써 축소한다. 어차피 수입되는 쇠고기와 돼지고기로 형성된 수입육 시장에서 수출국가들 간의 경쟁이 가열될 것이어서 국내산 축산물의 피해도 생각처럼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 놓으며 스리슬쩍 넘어간다.

미국과 EU, 호주, 캐나다 등 축산 강대국들에게 문을 활짝 열어 주면서 국내 축산업은 혐오산업으로 규정해 온갖 규제를 남발한다. 그리고 규모화·시설현대화를 앞세워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꼬득인다.

 

안쓰러워 보인다

 

현재 농축산업의 현실은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한마디에 움직여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축산농민들은 잘 알고 있다. 농축산업에 대한 대통령과 정부의 의식변화 없이는 그 어떠한 의욕을 고취시키는 선언도 단지 ‘말의 성찬’일 뿐이다. 그러니 일부 관계부처 장관의 위안 몇 마디에 고무되는 농축산부 장관이 안스러워 보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생산자단체들의 움직임도 별반 기댈 것이 없어 보인다. 사안마다 성명서를 발표하고, 농축산부 공무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축산업 대책 마련에 골머리를 앓고 있지만 어느 것 하나 시원하게 풀어지지 않는다. 사안마다 예산이 필요하고, 그 예산은 농축산부가 마음대로 만들어낼 수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농축산업의 문제는 이제 정부의 한 부서가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농축산업을 희생해도 좋다’는 정부의 막무가내 수출정책 앞에서 축산농민들은 과연 누굴 믿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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