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낙농의 앞날을 생각하자

 
초여름 열기에도 아랑곳없이 열띤 논쟁은 끝이 없었다. 진흥회 소속 납유농가들은 이렇게 안절부절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을 외면할 수 없는 나 역시 이틀 간의 긴 토론의 여정을 함께 했다.
이 논쟁을 지켜보면서 나는 차라리 서글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의 현실은 우리가 10여년 전에도 우려했던 바로 그대로이다. 수급 조절을 하겠다고 낙농진흥회를 만들면서 시장도 장악할 수 없고 생산 농가의 호응도 반 쪼가리인 기구로 출발했으니 결과는 이미 정해진 셈이었다. 더구나 참여 농가 수만을 늘리기 위해 많은 무리를 하다보니 더욱 어려운 함정에 빠지고만 것이다.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유업체도 기업이고, 기업은 이윤을 쫓아 갈 수밖에 없는 일 아닌가. 그들더러 수입을 자제하라고 한들 얼마나 설득력이 있겠는가를 생각해 보자.
구태여 개방화의 여파가 아니더라도 세상은 이제 유통업이 지배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따라서 현실적으로는 강경한 적인 유업업체와 어떻게든 공존을 모색해야 한다.
유럽은 19세기 초 벌써 협동조합의 진로를 마케팅에 두고 시장 장악에 전력을 쏟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성공을 한 것이다.
농민과 농산물은 그 성격상 시장 적응력이 뒤떨어질 밖에 없다. 그래서 협동조합을 통해서 자본주의 논리의 결함을 극복하려 한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의 협동조합은 시장 기능에 너무도 무력한 상태이다. 그 이유는 애매한 방향 설정 때문에 소비시장을 올바로 이해 못하고 가까이 하지 못했던데 있었다. 정부의 정책에도 문제가 있었지만, 농업인 스스로에게 근원적 책임이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낙농진흥회라는 어정쩡한 기구가 무슨 조절 기능을 가질 수 있겠는가.
따라서 진흥회에 참여한 농가가 더 큰 곤욕을 치룰 수밖에 없게 되었다. 장기적으로는 생산자인 낙농가의 시장 장악력을 키워나가는 것이 근원적인 대책이라 하겠지만, 당장은 이 위급한 상황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가 초미의 과제이다. 그렇다고 초기 약속대로 정상 납유를 보장하라고 한들 진흥회가 어떤 방안이 있겠는가.
수입개방정책을 두고 정부에 원망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기실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도도한 흐름 아니었나. 농산물까지도 교역상품화 한다는 것이 진정한 삶을 지향하는 양심에서 보면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할 정도로 시장의 법칙만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그 질서에 순응할 밖에 다른 묘안도 없다. 현실은 늘 이상보다 강하다. 또한 살아남는 자만이 이상을 세워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살아남을 방법을 찾는 일 외에 다른 길이 없다.
지금 정부를 향해 외쳐대는 우리 낙농인들의 애타는 목소리도 어찌보면 다분히 감성적이다. 이 혼돈의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으리라 믿는 조금은 피상적이고 소박한 꿈을 버리지 못한다. 그것을 누구도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현실의 냉혹함을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셈이다.
이제 모두가 냉철해야 할 시점이다. 농업도 시장이 지배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우리 농업인 모두가 겸허히 받아 들여야만 한다. 물론 정부는 최선을 다해서 그 완충적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그렇게 하여 우리 농업이 새로운 변화와 환경에 안착할 수 있어야만 한다.
또한 이번 기회에 정부도 진흥회 문제만이 아닌 낙농 발전을 위한 근원적인 대책을 폭 넓게 검토해서 확실한 방안을 내 놓아야 하리라. 우선 전체적인 시장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래서 감산이나 폐업문제도 부분적으로가 아닌 국가적인 차원에서 접근하고 실행해야 하리라. 이에 따른 충분한 보상과 과감한 실행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우유감산 정책도 면피성 임시방편에 그치고 말 것이다. 낙농가 여러분도 극단적인 투쟁방법만을 내세울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소비자인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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