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지 못해 기진한 한 어린이가 힘없이 마루에 누워있다. 그 처절한 슬픔 앞에서 나는 너무 부끄러웠다.
지금 북한 어린이 절반이 이와같은 영양실조 상태에 있다고 한다. 저 눈부신 천성의 아이들까지 무참히 내던져저 있는 셈이다. 외부의 식량 지원이 없을 경우 올해 안에 4백만명의 어린이가 굶어 죽을 것이라 한다. 단돈 5천원이면 한 어린이를 한 달 먹일 수 있단다. 사상의 논리로 그들을 외면한다면 우리 자신 죄인이 되는 것이다.
사실은 자유주의나 마르크스주의 모두 스스로의 논리에 사로잡혀 지나치게 우둔해지거나 지나치게 간교해지고 말았다. 이 점이 바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가장 위험한 요인이기도 하다.
북한에서는 최근 몇년째 홍수나 가뭄이 되풀이 되고 있고, 농약과 비료도 부족하다. 농기구도 재래식이며 외화가 없어 식량을 수입할 수도 없다. 그래서 극심한 식량난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그런 사정을 알면서도 한 민족인 우리가 머뭇거린다는 것은 타락한 이기심에 불과하다.
유엔이 채택한 세계 인권선언에 따르면 궁핍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가꾸기 위해 회원국들이 서로 협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한반도의 긴장 분위기를 고조시켜 북한을 돕는 일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심지어 북한의 핵시설에 대한 폭격을 검토하고 있다는 설까지 나오고 있다. 물론 미 강경론자들이 제기해온 주장에 근거한 가상 시나리오 성격이 짙다. 그러나 한반도 운명을 결정짓는 군사력 사용이라는 중대한 일이 한반도 사람들의 생각과 관계없이 미국에서 검토되고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북한 핵문제에 있어서도 미국은 말로만 외교적 해결을 주장해 왔을 뿐, 정작 북한과의 대화는 한사코 거절해 왔다. 또한 북한을 선제 공격할 의도가 없다면서도 모든 선택 방안을 검토중이라는 이중적인 태도는 오히려 북한에 군사 공격을 하기 위한 구실을 찾으려 되레 북한을 자극하고 한쪽으로 몰아세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져 든다. 한반도에서도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미국의 의도가 한반도를 더욱 긴장 속에 몰아넣고 있는 셈이다.
그러한 미국의 패권주의가 중동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라크 정부가 유엔 무기사찰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고, 이에대해 한스 블릭스 유엔 시찰단장도 “진정한 무장해제를 위한 의미있는 조치”라고 평가한 바 있다.
그러나 미국은 막무가내 이라크 공격의 초읽기에 들어 섰다. 그래서 세계는 마의 월요일인 3월 17일에 공격이 개시될까 촌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석유를 확보하고 무기를 소진키 위해 전쟁을 선택했다고들 한다. 이렇게 인류의 이성이 타락할 수 있는 것인가. 결국 ‘어둠의 자식’들이 세계를 주도하고 만 것이다. 어찌보면 전쟁이란 피할 수 없는 역사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임마뉴엘 칸트마져도 전쟁은 신의 뜻을 따르는 것이라고 설파하지 않았는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이번에 남북한이 함께한 평화와 통일을 위한 3·1 민족대회는 참으로 뜻 깊은 행사였다. 어떤 일이 있어도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7천만 겨레의 의지를 내세운 것이다. 행사에 참석한 북의 성직자가 명동 성당을 보고 반했다고 실토를 하면서 고백하듯 마음 속에 움트는 사랑을 말했다. 이렇게 만남을 통해 서로의 가슴을 열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북한을 대하는 태도는 논리 이전에 사랑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길이라 믿는다.
지원금이 다른 의도로 사용될 것이 염려된다는 등의 단서를 들고 나오는 것은 진실된 우정이 아니다. 그러한 계산을 다 내던지고 참된 우리의 정성을 전달하는 것만이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길인 것이다.
이 시간도 어린 생명들이 쓰러져 가고 있다. 우리가 바라만 보고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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