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축협 통합 부당성 알리며 국회서 할복 시도
전국의 시도 가운데 최초로 외자 도입에 성공
축산국장 시절엔 소고기 시장 개방 유보 성과

[축산경제신문 한정희 기자] 신구범 전 제주도 도지사가 지난 2일 81세 나이로 별세했다.
신 전 도지사는 1942년 제주시 조천읍 출신으로 오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육군사관학교를 4학년에 중퇴했다. 이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경제학과에 편입해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1967년 제 5회 행정고시에 합격, 제주도청에서 행정사무관으로 공직을 시작했다. 이후 농림수산부로 옮겨 축산국장, 농업구조정책국장, 기획관리실장 등을 역임한 행정가다. 축산국장(1989년~1991년) 당시 한·미 소고기 협상 수석대표였으며 소고기 시장 개방 유보 성과를 올렸다. 또 한국마사회의 체육청소년부 이관 반대 후 직위가 해제되고 미국으로 쫓겨나기도 했다.
1993년 제29대 제주도지사를 지냈으며,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나와 초대 민선지사(제31대) 당선 기록을 세웠다. 재임 중 제주도개발공사를 설립해 ‘삼다수’를 만들어 생수 시장을 선점했다. 이는 제주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됐다. 또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주식(도민주)을 발행해 제주컨벤션센터를 설립했다.
일본채권 시장에서 3.05%의 저금리로 200억엔의 자금을 조달해 도로혁명을 일으켰고 IMF를 극복했다. 총연장 1100km나 되는 미집행 도로는 30년 가까이 방치된 상태였다. 필요 예산은 2조 2000억원인데, 투입 가능 예산은 연간 400억원으로, 도로포장 완공에 55년이 소요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전국 시도 가운데 최초 외자 도입 성공사례가 됐다.
국내 첫 상용 풍력발전을 세웠으며, 우루과이라운드(UR) 대비책으로 김귤산업 회생을 위한 감귤생산조정제도를 시행했다. 또 지방재정 확충을 위한 관광복권을 발행했고 그 수익금으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초·중·고등학교 급식 시설을 지원했다. 이 같은 정책으로 제주도는 매년 2000억원의 추가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특히 IMF 외환위기 이후 구조 조정의 회오리 속에서 축협을 지켜달라는 축산농가들의 요청에 따라, 1999년부터 2000년까지 제8대 축협중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축협중앙회장 당시 농·축협 강제 통합 반대와 농협을 주인인 농민에게 돌려줘야 한다며 정부와 맞섰다. 축산농가와 농민을 위한 협동조합을 지켜내지 못한 책임을 지고 국회에서 할복을 했다. 가까스로 생명을 건졌으나 정치보복으로 뇌물죄의 누명을 쓰고 790일간의 옥살이를 하면서, 그가 일생을 걸었던 농업회사법인 ‘삼무’가 무너졌다.
지난 6일 제주영락동산에서 열린 고인의 안장예배에서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고인은 제주의 자립과 발전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며 “현재의 제주도를 만든 대단한 인물로 100년에 한 번 나올 수 있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고향 제주에 대한 사랑으로 일생을 살다 가신 고인의 삶을 모든 도민과 함께 기억하겠다”고 추모했다.
김경학 제주도의회 의장은 “제주 민선시대를 열었던 제주의 거인께서 영면하셨다”며 “도지사로 재임하는 동안 제주가 대한민국의 변방이 아님을 일깨우셨고, 발상 전환을 통해 혁신적이고 획기적인 업적을 많이 남기셨다”고 애도와 경의를 표했다.
또 “고인께서 생전에 제주에 베풀어 주셨던 업적과 은혜를 가슴에 새기고 제주의 번영된 미래를 위해 전심전력하셨던 큰 뜻을 이어받아, 제주의 발전과 도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진력해 나가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