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어려울때
나에게 의논하겠지”
아버지 생각은 착각
일상에서 밀려나는
아버지의 서글픔

[축산경제신문 권민 기자] 혁수는 농장 경영과 관련해 제시하는 자신의 의견을 매사에 무시하는 아버지가 고리타분합니다. 조금만 경영 스타일을 바꿔도 편리하고 효율적으로 농장을 운영할 수 있는데도 옛 방식을 고수하는 아버지가 너무 답답합니다. 
축산학과를 졸업하고 도시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보니 처음엔 견딜만 하더니 몇 년이 흐르니 다람쥐 쳇바퀴 도는 생활로는 미래도 보이지 않고, 직장 상사와도 마음이 맞지 않아 힘들어 하던 차에 아버지의 권유로 시골로 들어왔습니다. 
혁수가 한우농장을 대물림 받은 것은 “그렇게 고생하지 말고 대를 이어 농장을 경영해 봐라. 뭐니뭐니 해도 내 사업(?)이 최고다”는 아버지의 권유도 권유지만, 수백 마리의 규모로는 충분히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으리라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아버지와 함께 농장을 경영하다보니 자신은 경영자가 아니라 머슴이었습니다. 처음부터 망가진 축사를 고치는 용접공에, 사료포를 나르는 노동부터 허드렛일은 도맡아 하면서도 제대로 된 급여를 받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옆집 현석이네나 동네 끄트머리 달성이네는 스마트팜이니, ICT를 접목한다느니 변화하는 환경에 맞게 농장을 바꾼다고 야단법석인데 자신의 농장만 아버지의 옹고집으로 뒤처지는 듯 합니다. 그래서 그는 항상 아버지를 퉁명스럽게 대합니다. 
혁수 아버지는 농장 경영을 해보지도 않고 자꾸 새것으로 무엇을 바꾸려고 하는 자식이 못마땅합니다. 경영을 배우겠다고 한 자식이 축사 이곳저곳이 주저앉고 지지대가 깨진 것을 보고서도 선 듯 나서서 고칠 생각이 없습니다. 용접공을 불러야 하느니 축사를 현대화해야 하느니 겉모습부터 고치자고 합니다. 
현석이네 아버지나 달성이 아버지의 한탄도 자주 듣습니다. 요즘 트렌드가 뭐 어떻다느니 이렇게 해야 경영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느니 하면서 축사를 현대적으로 바꾸는데, 솔찮게 돈이 들어가는 데다가 뭐가 뭔지 알 수도 없고,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아들의 채근에 못 이겨 할 수 없이 시작은 했다고 푸념입니다. 
한우를 한 마리 두 마리 사들여 수십 년간 꾸준히 규모를 키워온 1세대로서, 매일 몇 번씩 농장을 들러 소의 상태를 보고 또 보면서 생활해온 그들이 지금 자식들에겐 그저 고리타분해 보일 뿐이다. 
미국의 한 연구소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어 단어’ 앙케이트 조사를 했다. 가장 아름다운 단어는 Mother(엄마)였다. 두 번째로 Father(아버지)였을까? 아버지라는 단어는 10위 안에도 들지 않았다. 
1위부터 10위까지의 순서를 보면 이렇다. Mother(어머니), Passion(열정), Smile(미소), Love(사랑), Eternity(영원), Fantastic(환상적), Destiny(운명), Freedom(자유), Liberty(자유), Tranquility(평온)이다. 아버지는 열외자다. 
사단법인 ‘남성의 전화’ 대표 겸 상담센터장으로 30여 년간 상담일을 맡아온 이옥이 씨는 많은 남편들이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부인으로부터 심한 욕설을 듣고, 심지어는 프라이팬 등 주방용구에 맞기도 한다고 말한다. 
폭력의 성격과 양태에는 남녀의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남편이 이제는 돈을 벌어오지 못한다는 이유로 부인이 자녀들과 식사를 하면서 방에 있는 남편을 부르지도 않는 정서적 학대도 있다고 한다. 
아버지들은 자녀들이 살아가면서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 자신들에게 상의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연구 조사에 따르면 그것은 아버지만의 오산이었다. 대부분의 자녀들은 친구나 유투브에서 찾는다는 것이다. 
선천성 소아마비이면서 인권변호사를 맡고 있는 톰 파커는 아버지에 대해 가졌던 편견이 후에 얼마나 후회스러웠는지를 술회했다. 
선천성 소아마비였던 그는 어린 시절 매주 마다 아버지에 이끌려 산을 올랐다. 못가겠다고 울부짖는 그를 아버지는 다그치고 어르면서 눈물 콧물 다 빠지게 몰아붙이면서도 정상 인근에서 되돌아오곤했다. 
처음에 너무 힘들어 죽고 싶었지만, 나중엔 의문에 생기더라는 것이다. 왜 그토록 자신을 다그치면서 정상까지 오르지 않고 정상을 바라보면서 굳이 내려가자고 했는지 말이다. 
사실 아버지는 암에 걸려 있었고 몇 년 후엔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다. 자신을 극도로 몰아부친 아버지에 대한 원망도 있었지만, 그는 아버지의 임종 순간에 그 궁금증에 대해 물었다. 
“아버지, 아버지가 주말마다 저를 몰아붙이면서 산에 오른 것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왜 저에게 정상을 정복할 수 있는 기회는 주지 않은 것인가요?”  
아버지는 살며시 웃으시면서 말했다. “신체적 장애는 장애가 아니라는 사실을 네게 알려주고 싶어서 주말마다 우는 너를 끌고 산을 올랐다. 너는 그 뜻을 잘 따라주어 고맙구나. 하지만 정상은 나와 같이 올라서는 안된다. 그 영광은 오로지 네 것이란다. 이제 그 영광을 위해 네 힘으로 정상에 오르려무나.”
아버지의 정은 투박하지만 더 없이 깊다. 자식이 잘못되면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지만 아버지는 피를 토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이 가정의 달에 한 번 더 곱씹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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