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근현대사는
백성들 극복의 과정
누가 누구에게
콤플렉스를 논하는가

[축산경제신문 권민 기자] 미래를 위한 결단과 나머지 물컵을 채워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일본 정부는 초등교과서 개편으로 응답했다. 강제동원은 없었고, 독도는 자신들의 ‘고유의’ 영토라고 아예 못을 박았다. 
대통령실이 주한 일본대사를 초치해 항의했지만, 그는 일본 언론에 따르면 자신들의 영토를 그렇게 표현한 것이 무슨 잘못된 일이냐고 오히려 따졌다는 것이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앞으로의 미래를 위한 협력이라는 말이 무색하다. 
대통령이나 일부 기득권층의 개인적인 사고방식이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무식과 아집의 소치다. 구겨진 국민들의 자긍심을 ‘식민지 콤플렉스’로 표현하는 것 역시 자신의 세계관을 그대로 보여주는 꼴이다.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100년만 놓고 봐도, 그 시기는 백성들의 저항과 고난 극복의 시간임을 알 수 있다. 식민지 콤플렉스는 일부 우리 안의 ‘혐한(嫌韓)’사상과 무조건적 친일에 물든 이들의 사상일 뿐이다. 
한일과의 문제는 대법원이 판결한 강제징용 배상문제만이 아니다. 일본제국주의 강점기에 우리들의 할아버지‧아버지는 헌병에 불손하다는 이유로 채찍질 당하고, 조선인과 명태는 맞아야 한다고 몽둥이 찜질당하고, 저항의 싹을 없앤다고 칼로 찌르고, 베고, 작두로 머리를 자르고, 불태워 죽였다. 
어디 이뿐인가. 쌀 한 톨, 먹고 살 식량 하나까지 착취해 살 길을 찾아 또는 저항 하고자 만주로 하얼빈으로 하와이로 민족이 뿔뿔이 헤어진 것도 모자라 한반도를 반쪽으로 토막낸 것도 일본 제국주의자들이다. 
그렇게 타지를 떠돌면서도 끝까지 저항한 사람도 백성이고, 기꺼이 자신을 가족을 희생한 것도 그들이다. 그러한 저항의 몸부림을 ‘콤플렉스’로 표현하고 있는 자야말로 심각한 콤플렉스에 빠진 자다. 
1905년 일본이 대한제국을 강압해 을사늑약(乙巳勒約)을 체결한지 5년 후 대한제국이 명목상 지구상에서 사라진 1910년 8월 29일, 3‧1 독립선언문을 발표한 33인 중 한 명인 최린은 그날 남대문에서 종로를 거쳐 광화문 네거리를 지나면서 목격한 거리 상황을 다음과 같이 술회했다. 
“거리를 살펴보니 각 상점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거래가 이뤄지고 있었다. 오백 년 왕국이 하루 아침에 사라져버린 이날에 이렇게도 평안하고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을까 하는 이상한 감상을 금할 수 없었다. 
조선 민족은 애국심이 유달리 강한 민족이다. 그런데도 무슨 까닭에 이 원수의 날을 평온하게 오불관언의 태도로 맞이했을까? 우선 간단한 이유로 조선은 원래 왕국이 전제정치인 동시에 귀족의 계급정치였다. 더구나 그 종말의 난정(亂政)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폭정이었다.
그러므로 일반 민중은 이날을 국가가 망한 날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조선이 망한 날이라고 보는 편이었고, 조선이 망한 뒤에는 그 폭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막연한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조선 후기의 조선은 이미 백성의 나라가 아니었다. 양반의 나라였고 백성은 착취의 대상이었을 뿐이다. 당시 조선에 체류했던 외교관이나 선교사들은 이구동성으로 조선의 국왕과 지배층은 잔인할 뿐만 아니라 마지막 한 사람까지 부패했다고 평했다. 
조정대신들에게도 조선에서 일본으로 갈아타면 지금까지 누려온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으니 조선의 망국은 큰 관심이 아니었다. 그러니 일본제국주의 강점기에도 그들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일제에 협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세를 몰아내고자 죽기로 싸운 이들은 백성이었다. 조선에서 착취당하고 일제에게 억압받으면서도 이를 극복해냈을 만큼 대한제국의 백성들은 자주심이 강하고 독립성 강한 민족이었다. 
한국전쟁으로 폭망해 아프리카의 가나와 나이지리아, 필리핀보다도 못한, 세계로부터 ‘영원히 가난한 국가로 남을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베트남에서 40~50℃를 웃도는 열사의 땅에서 죽어라 일하며 한강의 기적을 만든 것도 백성이다. 
영국의 선교사 이사벨라 비숍은 청일 전쟁이 일어난 1894년부터 1897년까지 네 차례나 조선을 방문하여 11개월에 걸쳐 한국과 한국인들이 이주한 시베리아 지방을 직접 찾아가는 현지 조사를 해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Korea and her Neighbors)〉이라는 당시의 기록을 남겼다. 
처음 그는 조선인은 의심과 나태한 자존심, 자기보다 나은 사람에 대한 노예근성을 갖고 있다고 평했지만, 간도에서의 조선 사람을 보고 전혀 다른 평가를 내렸다. 정직한 정부 밑에서 그들의 생계를 보호받을 수만 있다면 그들은 어느 민족보다 뛰어난 자질을 펼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지금 세계는 ‘K-컬쳐’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K-팝, K-푸드 등은 정부가 만든 것이 아니다. 백성들의 땀과 눈물이 이어져 내려온 결과물이다. 대한민국의 자부심을 도대체 누가 허물고 있는가? 도대체 지금 대한민국이 무엇이 아쉬워 머리를 조아리면서까지 일본과 협력해야 하는가? 
지금 왜 극일(克日)이 필요한가? 백성들에게 이미 일본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다. 누가 감히 식민지콤플렉스를 언급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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