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만 나가면 사달
조롱의 대상 반복
정부의 일방적 담화
누가 믿을 수 있을까

[축산경제신문 권민 기자]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은 웬지 섬뜩한 느낌이다. 그 말 자체가 좌파들, 소위 공산주의 빨갱이들이 즐겨 쓰는 어휘 같이 들려 평범한 시민들에게는, 반공으로 학습된 효과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이 말은 민주주의가 정립되기까지의 과정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 것이다. 17세기 왕정(王政)의 틀을 깨고 민중이 주인이 되는 시대가 올 때까지의 수백 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담겨져 있다는 뜻이다.
대한민국의 역사만 놓고 볼 때도 고려시대의 1135년 ‘묘청의 난’, 그리고 1198년 노비 만적을 중심으로 일어난 노비해방운동인 ‘만적의 난’에서부터 현대에 들어 4‧19 혁명, 5‧18 광주민주항쟁, 6‧29 선언까지 오랜 시간 자유‧평등을 위한 수많은 피가 한반도의 땅에 배여 있다. 
만적의 난은 1198년 노비 만적이 중심이 되어 일으키려다 미수에 그친 노비해방운동이다. 그 이전인 1135년에 일어난 묘청의 난은 독립운동가이며 언론인, 역사학자였던 신채호(申采浩)가 ‘조선 역사상 가장 주체적이고 자주적인 사건’이라고 지칭한 사건이다. 
그는 묘청의 난을 낭불양가(郎佛兩家) 대 한학파의 싸움이자, 독립당 대 사대당의 싸움이며, 진취사상 대 보수사상의 싸움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이 난이 실패로 돌아감으로써 유가의 사대주의가 득세해 고구려적인 기상을 잃어버리게 되었다고 애석해 했다.
역사에 조예가 깊지 않아도 역사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5000년을 이어오는 우리 역사는 지배층에 대한 피지배층의 끊임없는 저항으로 점철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이유는 한일정상회담으로 불거진 일부 기득권층의 식민지근대화론이 다시 우리 사회에서 머리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이 멸망한 것은 조선에 힘이 없어서이고, 그나마 일본에 점령당하면서 근대화가 이뤄졌다는  이론은 일본이 줄곧 제국주의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내세우는 이론이다. 
한일정상회담이 끝나자마자 일본 언론들은 일본 정부 당국자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독도와 위안부 문제에서부터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출,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까지 모두 거론했다고 밝히고 있다. 한일정상회담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윤석열 대통령은 함구하며 ‘미래를 위한 결단’이었다는 소리만 되풀이하고 있다. 젊은 세대들의 미래를 위한 결단이라고 하지만 그 ‘미래’가 어떤 미래인지도 설명이 없다. 그러다 보니 미래에 대한 결단에서 미래는 없어지고 결단만 남은 꼴이다. 
밖에만 나가면 사달이 나고, 그 결과 조롱의 대상이 되는 상황이 반복되니 어느 국민인들 정부의 일방적인 담화를 믿을 수 있겠는가?
“물컵의 반을 우리가 채웠으니, 나머지 반은 일본이 채워줄 것”이라던 윤석열 대통령의 그 결단(?)을 대하는 일본은 “한국 정부가 잘해보자고 머리를 숙이고 들어오니 이참에 그동안의 한·일 현안 문제를 모두 한국 쪽에서 해결하라”고 오히려 엄포다.
지금 이러한 상황을 국민들은 참을 수 없는 것이다. 미래가 없는 결단을 국민들은 조공외교이자 국민의 자존감을 대통령이 짓뭉겠다고 반발이 거세다. 
윤석열 정부나 여당인 국민의힘은 이러한 국민적 감정과는 완전 딴판이다. 물컵의 반을 채워놓기는커녕 담겨진 물을 마시고 잔을 깨버린 일본의 행태를 두고도 “조만간 답을 해 올 것”이라는 기대뿐이다. 
게다가 조부의 친일 행각이 드러난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국민들의 반발에 오히려 화를 내며 ‘식민지콤플렉스’라고 아예 싸잡아 비난하고 나섰다. 
조부에게 어린 시절부터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자랑을 듣고 자라서인지 아니면 점령 당한 후 모진 고초를 겪지 않고 좋은 기억과 오히려 친일로 호가호위해서인지 일본에 대한 국민적 반감을 그는 그렇게 표현했다. 
윤석열 대통령조차 부친이 일본 문부성 제1호 장학생으로 일본 대학교에서 공부하던 시절, 일본을 방문하고 좋았던 순간의 감정을 평생의 기억으로 삼아서인지, 일본인은 정직하다느니 왜색일색이다. 
식민지콤플렉스는 대한민국 국민에서 할 말이 아니다. 바로 그 이야기를 한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이나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친일세력들이 가지고 있는 소국주의 또는 사대주의가 바로 그것이다. 
대학시절 일본어 시간에 일본학 교수가 일본제국주의 시절 그들의 국가인 ‘기미가요’와 애국가를 비교한 일이 있었다. 양국의 국가를 비교한다는 자체도 기이했지만 내용이 더 기가 막혔다.
기미가요 내용 중 ‘작은 돌이 큰 바위가 되고 그 바위에 이끼가 낄 때까지 계속되도록…’이란 구절이 있다. 이 대목을 애국가의 ‘동해 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과 비교하면서 일본 국가는 생산성과 진취성을 말하고 있는 반면 애국가는 소모적이고 수동적이라는 것이었다. 
그날 “문화와 문화를 어떻게 그렇게 비교할 수 있느냐”로 시작해 “일본어를 배우자고 강의를 신청했지 막무가내 친일을 배우고자 한 것이 아니다”고 소동을 벌이며 그 시간을 끝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그 일이 생생하다. 그런 생생한 기억을 다시금 듣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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