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경제신문 권민 기자] 비교우위를 따지는 경제학자들이나 일반인들에게 농업은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 제품에 비해 국가 경제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집중하는 것이 국가 자원의 효율적 활용이 아니라고 인식한다. 
하지만 농촌경제연구원을 비롯 농업과 관련한 연구기관‧단체들의 분석에 따르면 농산물 수출의 고용창출 효과가 휴대전화 등 첨단 제조품 수출의 고용창출 효과보다 크다고 한다. 
그러니까 ‘농산물이 경제에 큰 고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은 편견인 셈이다.

 

경제발전 유발산업


농산물을 원재료로 하고 있는 음식료품 제조업과 음식점업의 시장규모를 보면 2018년 218조3000억원쯤 된다. 그저 하찮은 것쯤으로 여겨지는 농산물이 사실은 엄청난 경제발전의 유발산업임이 틀림없다. 
우리가 농축산물의 중요성을 잊고 사는 것은 먹을거리가 지천에 깔려 있고, 또 언제 어디서나 수중에 웬만한 돈만 지니고 있으면, 내가 원하기만 하면 자신의 취미에 맞게 선택할 수 있는 풍요로움에서 빚어진 결과다. 
하지만 그것들로부터 우리가 누리는 풍요는 식량 공급의 세계화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일체화된 공급망이 원활하게 돌아갈 때의 일이다. 
게다가 언제나 논‧밭의 작물들이 풍성하게 자랄 수 있는 온화한 기후가 유지되었을 때 가능한 일이다. 
만일 이러한 조건들이 갖춰지지 않거나, 지구의 한 편에서 문제가 발생해 공급망에 문제가 발생하거나, 기후에 이상현상이 일어나면 인간인 우리는 당장 먹을거리를 걱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특히 먹을거리를 국외에 의존하는 경우일수록 고통의 강도는 크다. 
지금 우리가 겪는 애그플레이션 현상이 바로 그런 경우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세계 최대의 곡창지대인 양국이 전쟁 상황에 처하고, 이상기후마저 세계 곳곳을 강타하면서, 가뜩이나 코로나19로 국경폐쇄로 물류에 이상이 생긴, 이 두 가지 요인이 겹쳐지면서 농산물 가격이 상승하고, 이것이 다시 물가 상승을 촉발하는 이중삼중의 고통을 겪고 있다. 
정부는 이제야 ‘식량안보’의 필요성을 느끼는 모양이지만, 사실 이러한 예상은 훨씬 이전부터 꾸준히 제기되어온 지적이었다. 
2007년 12월 말,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값싼 식량의 종말’이라는 기사를 통해 향후 더 이상 싼 가격으로 식량을 구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 성공한 적 없어


그 기사에 따르면 그 이유를 1960~1970년대 인류를 기아로부터 구원한 ‘녹색혁명’이 힘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과거 선진국들과 국제기구들은 종자 개량, 살충제 등에 대한 다양한 연구와 투자로 식량 위기를 돌파했지만 2000년대에는 중국을 포함한 신흥국의 소득 향상으로 식량 수요가 급등했기 때문이다. 
삼성경제연구소 글로벌연구원장을 역임한 김화년 농경제학 박사는 2012년 저서 「식량 쇼크」에서 1970년대 중반 이후에서 2000년 중반까지 과거 30년 간 전 세계의 식량시장은 ‘3S’에서 ‘3R’패러다임으로 옮겨갔다고 지적했다. 
3S ‘충분하고(Sufficiant)’‧‘안정적(Stable)’이며‘단순한(Sim ple)’ 1차 산업에서, 3R 즉 ‘부족하고(Rare)’‧‘위험하지만(Risky)’‧  ‘진화된(Renovated)’ 산업으로 급격하게 전환됐다는 것이다. 
대량 생산과 증산이 주요한 과제였던 과거에는 생산 투입 요소의 증가와 생산성 향상, 기술 발전으로 전 세계 인구를 부양하는 것이 가능했다. 
미국 등 선진국의 주도하에 다수확 품종 개발과 새로운 영농기술을 보급함으로써 생산량이 급속히 증가했을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해 재고량도 적정선을 유지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같은 생산 방식이 화학비료와 농약의 과대한 투입을 유발하면서 토지, 물, 생태 환경의 오염과 같은 부작용을 유발한 데다, 유가의 불안 등이 겹치면서 삶의 질을 중요시하게 된 최근에 와서는 안정적인 식량생산체계에 큰 변화가 불가피하게 됐다. 식량 가격이 더 이상 값싼 물건이 아니게 됐다는 의미다. 
특히 국제 식량 시장의 높은 편중성 때문에 식량을 자급할 수 없는, 식량의 외세 의존성이 강한 나라들은 소수의 식량 생산‧수출국들의 변덕에 휘둘릴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현상이 심화되면 그 나라에서의 먹고사는 문제는 그 어떤 산업보다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미국, 러시아,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크라이나, 캐나다 등 소수의 식량 수출국들이 대두 90%, 옥수수 81%, 밀 64% 등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러한 농산물들은 투자 상품화되어 대부분 선물시장에서 거래되면서 투기 자본들까지 참여해 수익의 수단으로 삼고 있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현재 곡물 시장은 ABCD(ADM, Bunge, Cargil, LDC)의 4대 메이저가 거의 장악하고 있다. 이들을 중심으로 한 독과점 형태는 완전경쟁에서 형성된 가격보다 훨씬 높게 가격이 책정된다. 
세계 곡물 변동에 따라 국내 물가가 요동치는 우리 시장에서, 식량 안보가 중요하다는 사실은 이미 체험한 상황이다. 
때문에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식량 안보 문제를 거론하지 않은 적이 없다. 하지만 내놓은 농정이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은 정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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