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0년 전쯤에 태국여행을 지인들과 함께 한 적이 있다. 코끼리를 타보기도 하고 코끼리가 축구하는 것을 보기도 하였다. 
아마도 코끼리 등에다 사람을 태우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의 조련이 필요했을 것으로 추측이 되고 이 보다도 더 고난도인 축구를 선보이기 위해서는 코끼리에게 피와 땀과 눈물을 요구했을 것이다. 
태국은 불교국가로 동물에 대해 비교적 관대하다. 그러함에도 관광객들을 상대로 돈 벌이 용으로 코끼리를 매우 잔혹하게 부려먹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지구상 최강의 맹수이면서 살아 숨 쉬는 생명체인 동물 중에서 가장 몸집이 크고 평균적으로 몸무게가 4톤 내지는 7톤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거구가 코끼리다.
아마도 자연 상태에서 코끼리가 일생을 마친다면 아프리카 코끼리는 침팬지, 당나귀, 말의 수명과 비슷한 50년의 수명을 가지고 있고, 인도코끼리는 70년 정도의 수명을 가진 것으로 보고되어 있다. 동물원 등에서 인위적으로 통제를 받을 경우는 15년 전후를 산다고 한다. 
공식적인 기록에 의하면 우리나라에 코끼리가 처음 선보인 것은 지금으로부터 6백 년 전쯤인 1411년 조선 태종 때 일본에서 선물한 코끼리가 사람을 짓밟아 죽이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병조판서 유정현이 검사 역할을 맡아 사람을 죽였으니 살인죄로 다스려야 한다며 코끼리에게 사형을 구형하였다. 최종 판결을 맡았던 태종은 코끼리가 불교경전에도 나오는 영물이고 예의를 아는 짐승이니 사형까지는 과하다고 판단하여 외딴섬으로 유배하도록 판결을 내렸다.
 아무튼, 유배를 당한 그 코끼리는 인도네시아에서 일본에 선물한 것이었고 일본이 다시 조선에 선물하였다. 
인도네시아를 출발하여 머나먼 뱃길로 바다 건너 일본에 갔다가, 또다시 현해탄을 건너 조선까지 온 코끼리는 서울에서 전라남도 여수에 있는 최남단 해도(海島)라는 섬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고, 다시 육지로, 충청도로 이리저리 옮겨 다니다 끝내 두 번째로 섬에 갇히는 신세가 되어 파란만장한 삶을 산 것으로 추정된다. 
코끼리도 자식이 죽거나 가족이 죽으면 시신이 있는 자리에서 오랫동안 머물고 눈물을 흘리면서 슬퍼한다고 한다. 아직도 인도네시아에서는 상아(象牙·악기 도자기 등 공예품을 만드는 데 씀)를 노리고 멸종위기종인 수마트라 코끼리 머리를 자르는 참혹한 짓을 저지르고 있다. 수마트라 코끼리는 수마트라섬과 인도네시아에 서식하는 작은 체구로 전 세계에 2천 마리 정도가 남아있다. 양육강식의 법칙과 인간에 의해 지배당하는 것은 고통이다. 코끼리 수난은 인간의 탐욕에서 비롯된 것이다.

저작권자 © 축산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