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경제신문 권민 기자] 납품 발주처의 입찰 경쟁에 뛰어든 A사는 1개당 1000원을 지불하겠다고 의향서를 작성했다. 곧이어 B사가 참여하자 900원대로 경쟁가격이 하락했다. 참여 희망업체가 늘어나자 발주처는 800원대까지 낮출 수 있기를 희망한다. 
처음에 적당한 가격이라고 생각했던 A사의 관계자는 자신이 견적을 잘못냈음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스크린을 통해 가격대는 800원대도 붕괴되면서 경매가 상상도 못했던 최저가로 낙찰된다. 

 

국산이 무슨 죄라고


A사 관계자는 궁금하다. 어떻게 그런 가격대가 유지될 수 있는지. 그 가격대를 맞추기 위해서 하청업체를 얼마나 쥐어짜야 하는지를 생각하면 왠지 끔찍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렇게 생산된 제품을 구입하게 될 발주처가 얼마나 높은 불량률에 시달리게 될지도 뻔히 보인다. 이것이 바로 최저입찰가의 어두운 그림자다. 
이것이 식재료의 군납체계를 수의계약에서 최저가 경쟁입찰제로 바꾸겠다는 국방부 군급식 개편의 결말이다. 
허술한 식단을 보완한다는 긍정적 취지에서 시작된 체계 개편은 최악의 방법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허술한 식단의 원인이 국내산 식재료의 터무니없는 가격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그리고 군장병들의 식단 다양화에 대한 불만이 고조된 것도 아니다. 
식재료 관리 소홀이 가장 큰 원인임은 국방부에서도 조사 결과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경쟁입찰로 체계를 바꾸려는지 설명이 되질 않는다. 
특히나 국내산을 제외하고 특정업체나 외국산 농축산물을 구입하라고 적시하면서, 군장병 먹거리의 위생과 안전을 우선시 했다는 것도 납득되지 않는 모순된 행태다. 
지난 50년 간 안정적으로 식재료를 공급하던 농가들로서는 황당하다 못해 울화통이 터질 노릇이다. 
2020년 기준 전체 군 급식 조달규모는 1조6000억 수준이다. 농축산물 조달 규모는 약 6000억원으로 전체의 37%이며, 축산물은 4100억원 정도다. 
올해 7월부터 국방부는 군 장병 1인당 기본급식비를 기존 하루 1만1000원에서 1만3000원으로 인상했고 2024년까지 1만5000원으로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군 급식 규모가 크게 증가한 것이다. 
최근 HMR(가정간편식) 등에 대한 소비자들의 욕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대기업 식품가공업체들은 시설을 대대적으로 확보하고 시장 확대를 꾀하고 있다. 
이들에겐 이전부터 눈독을 들여온 군 급식 진입은 ‘누워서 헤엄치는’ 사업인 숙원사업 중 하나였다. 이제 그 문이 열린 것이다. 
당장 현대그린푸드, CJ프레시웨이, 아워홈, 동원홈푸드, 풀무원 등 대기업 식자재공급업체들은 군납 식자재 사업 진출에 분주한 모습이다. 
9월 21일 경기 고양시에서 열린 군수산업 비즈니스 박람회 ‘DX코리아 2022’에서 이들 업체들은 각종 슬로건을 내세우며 다양한 식재 상품과 메뉴를 전시했다. 
갑작스런 계약 체계의 전환으로 공급처를 잃게 된 군급식 납품 협동조합과 농가들은 ‘생존권 수호’를 주장하며 국방부 앞에서,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잇따라 상경 시위에 돌입했지만 ‘자유’를 표방하며 시장경제의 자유로운 경쟁을 내세우고 있는 국정 철학(?)은 요지부동이다. 
축산물 군납사업은 1970년 5월, 예산회계법시행령 임시특례에 관한 규정이 제정되면서 농‧수협의 군납 농‧축산물 전담근거가 마련됨에 따라, 그해 7월, 국방부와 농협 쌍방 간 군부식 계획생산 협정이 체결됐다.  
이 협정을 근거로 수행하는 정책대행사업 성격으로 농‧어가와 직접 생산을 약정하는 계획생산 조달체계로 운영되어 왔다. 

 

대기업 진출 문 열어


계획생산 제도란 농어민 소득증대와 안정적 군 급식 보장을 위해 생산자와 사전에 계약해 군 부식 소요물량을 확보하는 제도다. 
납품단가는 축산물 생산‧조달 안정성 측면에서 표준생산비를 근거로 결정하며 시세 등락에 관계없이 연중 고정단가를 적용한다. 
농가는 생산비를 보장받으며 소득의 안정을 기할 수 있는 대신 군 장병은 안전하고 위생적인 축산물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것이다. 
한기호 의원은 지난 국방부 국정감사에서 군급식 체계 개편과 관련 국방부가 접경지역특별법을 어겼다고 지적한 것도 이러한 법적 근거에 기초한 것이다. 
접경지역특별법은 ‘국가는 접경지역 안에서 생산하는 농‧축‧수산물을 우선적으로 군부대에 납품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일방적으로 해지할 수 없다는 점을 들었다. 
그동안 40개 군납축협은 농가와의 계획생산 등을 통해 7개 축종을 책임지고 공급해 왔으며, 한육우의 경우 농협중앙회 전용공장에서 통합해 철저한 위생과 안전을 확보하면서 생산해 공급해 왔다. 
예전처럼 굶주림에 시달려오고 있다면 배 불리기 위해 값싼 외국산이라도 수입해 공급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질’을 높이겠다는 의도가 진정성이 있으려면 외국산에게 문을 열어주고, 대기업 위주의 경쟁입찰로서의 체계 개편은 철회해야 마땅하다. 
군 급식의 대기업 진출은 축산업으로의 진출로 이어질 것이 뻔하고, 그로 인해 생업을 접어야 하는 농민은 그들의 농장에서 노동자로 전락할 것이 뻔한 수순이기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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