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병원이 아닌 뒤처진 제도가 문제

[축산경제신문 김기슬 기자] 대한수의사회가 최근 국회에서 진행 중인 국정감사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반려동물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증가한 만큼 동물병원과 관련된 질의와 지적이 이어지고 있는데, 문제의 원인을 분석하고 정부에 종합적인 대책이나 개선을 요구하기보단 무작정 동물병원이나 수의사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식의 지적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수의사회는 “동물병원에 대한 마녀사냥식의 문제 제기에 유감”이라며 “문제의 원인은 동물병원이 아니라 발전한 동물의료 환경을 따라가지 못하는 현재 제도에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국회와 정부는 동물병원에 책임을 전가할 것이 아니라 선진 동물의료 체계 구축과 동물의료의 종합적인 발전을 위한 정책 마련, 법령 정비 등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수의사회는 먼저 국회 농해수위 김승남 의이 제기한 동물병원 의료사고 문제와 관련해 현재 동물의료는 한국소비자원에서 피해구제 및 분쟁 조정을 담당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람 의료의 경우 한국소비자원과 「의료법」에 따라 의료심사조정위원회가 분쟁 조정 역할을 해왔다. 또 2011년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 제정에 따라 국가가 의료사고 예방을 위한 법적‧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불가항력 의료사고 등에 대해서는 국가가 보상하고 있다. 아울러 전담 기관인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 100억 원 이상의 예산으로 설립‧운영되고 있으며, 현재 연간 예산이 약 220억 원에 이른다.

즉, 동물 의료에서도 반려동물과 동물보호자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동물병원의 안정적 진료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사람 의료와 유사한 제도나 기관의 도입이 필요하지만, 과연 이에 수반되는 국가 재정 소요에 대한 충분한 검토나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볼 문제라는 것이다.

수의사회는 의료사고는 단순히 사망이나 부작용 등 결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수의사의 과실 여부 등 그 과정이 적절했는지를 따져보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료사고에 따른 수의사의 처벌 여부도 단순히 의료의 결과가 아닌 과정의 적정성에 따라 판단해야 하나, 동물 의료는 사람 의료와 달리 아직 표준화돼있지 않고 객관적으로 평가할 전문 기관도 없다. 이에 부적절한 동물의료 행위 등 수의사의 비윤리적인 행위에 대해 농식품부에 면허 효력 정지 처분을 요구할 수 있는 근거를 신설하는 「수의사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된 바 있으나 아직 계류 중이다.

수의사회는 국회 농해수위 안병길 의원이 펫보험 활성화를 거론하며 언급한 동물병원 진료부 제공 의무화는 주객이 전도된 문제 제기라고도 피력했다. 동물병원 진료부 제공은 동물의료체계의 발전과 필요성에 따라 검토돼야 할 일이지, 펫보험 활성화를 위해서 공개하라는 것은 동물의료의 발전에도, 펫보험 활성화에도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 자가진료 및 불법 동물진료 문제와 동물용의약품 유통체계가 개선돼 항생제 오남용 우려가 해소되고 수의사의 진료환경이 존중된다면 진료부 공개를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의사회는 펫보험 활성화의 가장 큰 걸림돌은 ‘적금이 낫다’는 동물보호자의 의견이 나올 정도로 동물보호자에게 매력적인 상품이 없는 것이 더 크다고도 지적했다. 농식품부와 안병길 의원실의 발표에 따르면 일부 상품의 월평균 보험료보다 평균 동물진료비가 싼 실정이다. 또한 노령 반려동물은 늘어나는 추세인데 연령 제한 등으로 40%에 이르는 반려동물은 애초에 보험 가입이 제한된다. 이러한 연령 제한 완화나 특정 질환에 대한 전용 상품 개발 등 보험상품 다양화 노력 없이는 펫보험이 활성화되기 어렵다.

국회 보건복지위 서영석 의원이 제기한 동물병원의 인체용의약품 공급 문제는 근본적으로「약사법」에 근거를 둔 현행 인체용의약품의 공급 체계 전반의 문제다. 동물병원에서 반려동물의 치료를 위해 사용되는 인체용의약품은 법적으로 도매상이 아닌 약국에서 구입해야 한다. 그러나 보통 약국은 주사제 등이 구비돼있지 않고 사람 병의원에서 처방이 많은 품목을 위주로 약을 보유해 동물병원은 치료에 필요한 약을 적기에 공급받기 어렵다. 또한 소매행위가 아님에도 도매상이 아닌 약국에서 소매가로 공급받다 보니 약품비도 올라간다.

동물의료계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기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왔으며, 과거 정부의 규제개혁 장관회의에도 언급될 정도였으나, 특정 이익단체의 반대 등으로 공급체계 개선을 위한 「약사법」 개정이 무산됐다.

동물병원의 마약류 사용에 관한 문제 제기도 이어지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 인재근 의원은 사람 병의원보다 동물병원의 마약류 관리체계가 미흡함을, 신현영 의원은 펜타닐 패치 처방 건수의 증가를 지적했다.

그러나 동물병원도 사람의료와 동일하게 식약처의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에 마약류 취급내역을 보고하고 있다. 또 「수의사법」에 따라 진료부에 사용한 마약류의 품명과 수량을 기록하고 있다. 동물병원 내에서 투약할 경우 진료부에 동물보호자의 기본 인적사항이 있어 사용 대상도 명확하다.

펜타닐 패치는 단순히 처방건수의 증가로 의혹을 제기하는 수준으로, 반려동물의 증가에 따른 전체적인 진료 사례의 증가, 반려동물의 노령화 추세에 따른 중증 질환 관리 증가, 동물복지적 관점에서 적극적인 통증 관리가 이루어지는 진료 추세 등에 대한 고려 등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대한수의사회 관계자는 “이같이 국정감사에서 제기된 문제들은 대부분 동물병원이나 수의사가 정말로 문제를 일으킨 것이 아니라 불합리한 규제로 현장이 왜곡되거나 단순한 의혹 제기 수준에 그치는 지적으로 그 해결책도 동물병원의 규제에 있지 않다”면서 “지금이라도 국회와 정부는 그저 관심을 끌기 위한 이슈 만들기가 아니라 현장의 애로에 대해 정확히 파악해 실질적인 해법과 동물의료가 발전할 수 있는 길을 열어달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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