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용자산 총동원하라” 지시만
감염돼지 매몰·추가 차단 집중
야생멧돼지 번식 주기 불규칙
이 상태 계속되면 노력 헛수고
전문가들, “현실 맞게 조정을”

정황근 ASF 중앙사고수습본부장(왼쪽 첫 번째)이 행정안전부·환경부, 농림축산검역본부,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등 관계기관과 지자체가 참석한 가운데 긴급 화상회의를 통해 대응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정황근 ASF 중앙사고수습본부장(왼쪽 첫 번째)이 행정안전부·환경부, 농림축산검역본부,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등 관계기관과 지자체가 참석한 가운데 긴급 화상회의를 통해 대응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축산경제신문 한정희 기자] ASF가 강원도 춘천시 소재 2개 양돈장에서 지난 19일과 20일 잇따라 발생함에 따라 방역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이들 양돈장은 24·25번째 ASF 발생으로 기록됐다. 
아프리카돼지열병 중앙사고수습본부(본부장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이하 중수본)는 곧바로 해당 양돈장들의 돼지를 매몰하고, 추가 발생 차단에 역량을 집중시켰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2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실시한 국무회의 모두 발언에서 “발생 원인을 신속하게 파악하고 추가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가용 자원을 총동원하라”고 지시했다.
이번 양돈장들의 ASF 감염 경로와 관련해 다수의 전문가는 야생멧돼지(폐사체)를 유력한 매개체로 지목한다. 수거하지 않은 폐사체를 통해 오염된 토사가 9월 초 태풍과 집중호우 등 큰비로 인해 산 아래로 흘러내린 후 차량과 사람, 야생고양이, 새, 곤충, 쥐 등 다양한 매개체를 통해 농가로 유입됐을 것이라 추정한다. 방역당국도 이같은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역학조사를 실시 중이다.               <관련 월요칼럼 2면> 
김현일 옵티팜 대표이사는 “ASF 바이러스는 생존력이 강하기 때문에 구제역이나 PRRS 등과 달리 오랜 시간 방치 상태에서도 잘 죽지 않는다”며 폐사체 수거 확대 필요성을 강조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냉장육에서 15주, 냉동육에서 최장 1000일까지 생존할 수 있다. 혈액에서 1년 6개월, 피부에서 300일 생존한다. 사체의 골수에서도 여러 달 동안 생존할 수 있다.
그러나 야생멧돼지 폐사체 발견 건수는 현 정부 들어 현저히 줄었다. 국립야생동물질병관리원에 따르면 폐사체 발견 건수는 △1월(전년동기 96건→올해 152건) △2월(167건→228건) △3월(111건→191건) △4월(119건→130건) △5월(19건→41건)의 실적을 보였다. 그러나 △6월(20건→18건) △7월(55건→15건) △8월(89건→8건)으로 3달 연속으로 줄었다. 전문가들은 “7월부터는 폐사체 수색에 손을 놓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또 야생멧돼지 번식주기가 불규칙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보편적으로 야생멧돼지는 한겨울인 11월에서 12월 초까지 교미를 하고 3월에서 4월 중에 새끼를 낳는다. 그런데 최근에 새끼돼지들이 종종 발견되고 있다. 지난 8월에는 2개월 된 새끼돼지가 포획됐다.
박선일 교수는 “6월에 새끼를 낳았다는 것은, 포획으로 개체수가 감소한 야생멧돼지가 생존을 위해 번식 횟수를 늘린 것으로 해석된다”며 “지금의 상태가 계속된다면 머지않아 기존 노력이 헛수고가 될 우려가 있다”고 강조했다. 포획 위험 강도가 높아지면 야생멧돼지는 1년에 새끼를 2번까지도 낳는다는 보고가 있다. 
또 “현재 ASF 방역은 이렇다 할 대책 마련이 쉽지 않은 총체적인 난국인 상황”이라며 “시간이 흐를수록 양돈장 ASF 확산 위험만 더 가중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밖에 해외 불법 축산물 유입 감시 강도가 예전 같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축산 관계자는 “얼마 전 싱가포르 공항에서 육포를 다량 구입해서 들여온 사례를 접했다”며 “벌금 1000만원 등 관련 홍보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음만 먹으면 별다른 규제 없이 홍콩 등에서 돼지고기 관련 식품을 쉽게 구매할 수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단기간 ASF 청정화는 불가능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방역 규제를 현실에 맞도록 완화하고, 중·장기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현일 대표는 ASF 전국 확산 방지를 위해 세가지 사항을 주문했다. 첫째는 양돈장의 철저한 차단방역 노력이다. 둘째는 ASF 발병시 농가의 신속한 신고, 셋째는 ASF 감염돼지가 절대 이동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전했다. 감염돼지 이동은 전국 확산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도드람양돈연구소 정현규 박사는 ASF 발생 방지를 위한 양돈장 주의사항을 몇 가지로 요약했다. 첫째는 번식기 야생멧돼지는 양돈장 모돈에게 가까이 접근하기 때문에, 펜스 인근이 분비물(분변이나 침)에 오염됐을 가능성이 높다. 둘째는 비가 내리면 양돈장에 오염된 토사 등이 유입될 수 있다. 농장 관리자는 이를 그냥 처리하지 말고, 특별한 소독 등 대책을 병행해야 한다. 펜스 내로 외부 토양, 물 등이 유입되지 않도록 하는 배수로가 중요하다. 
셋째는 농장 정문과 같은 수준의 방역관리가 가능하지 않다면 후문이나 쪽문을 설치해서는 안된다. 후문과 쪽문은 정문보다 훨씬 위험하기 때문이다. 넷째는 산이나 농경지 출입자는 당일 농장을 출입하면 안 되고, 다섯째는 농장 진입 차량의 바퀴는 세차 수준의 소독을 실시한다고 설명했다.  
강원도 화천의 한 한돈농가는 “야생멧돼지에 놀라고 폐사체에 놀라고 비바람이 세차게 불어도 놀란다”며 “간헐적인 ASF 양돈장 발생이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정부는 ASF 발생 책임을 농가에게 전가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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