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 파고 이겨내고 산업화…국민 품 안으로

수입 자유화 되자 생존 걱정
외환 위기에 광우병 파동까지
생우마저 개방 산업 벼랑 끝
품질 고급화 승부 절묘한 수

출하된 소 절반 1등급 이상
고급육 시장 활성화 되면서
한우 브랜드 시대 본격 개막
정부 육성책·농가 노력 결실

외국산과 경쟁 위해 총결집
결과적으로 발전 계기 마련
자조금 출범 재도약 길 터
안전·유통 투명성으로 신뢰

한우산업 발전사
2007~2009년 2005년 2001년 2005년 1990년~
제도적 기반 확충

 

한우 자조금 출범… 소비·홍보 강화

 

생우 수입저지 …투쟁의 역사

 

전국한우협회 창립…구심점 거듭

 

개방화 파고…격변의 혼란기

 

 

[축산경제신문 이혜진 기자] 한우 산업은 소고기 수출국들의 강도 높은 시장개방 압력의 어려움과 열악한 유통체계 등을 획기적인 제도적 장치 마련과 품질 고급화 등으로 극복해 농업부문의 어느 품목보다도 높은 경쟁력을 갖췄다. 또 자조금 도입으로 다양한 홍보 사업을 추진하며 소비자들의 높은 선호와 신뢰를 얻고 있다. 개방화 파고에서도 역경을 딛고 산업화에 성공한 한우 산업. 

현재 사육마릿수가 330만 마리를 훌쩍 넘기면서 수급 불균형이 우려되고 있지만, 한우업계 전문가들은 그동안 한우농가들이 겪어온 숱한 어려움을 협력과 지혜, 저력, 능동적인 대책 마련과 실현으로 이겨내 온 점을 강조하며 미래 한우 산업의 성장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내다보고 있다. 

 

# 1990년대-UR협상 타결로 위기 직면

1990년대 한우산업은 UR협상 타결(1993년 10월)에 이어 세계무역기구 출범에 따른 외국산 소고기의 국내 시장 유입 본격화로 인해 위기를 맞았다. 당시 UR 협상 타결에 따라 국내 사정과는 상관없이 수입 쿼터 물량이 들어오기 시작했으며, 2001년 1월부터는 관세 41.2%로 물량 제한 없이 수입이 자유화됐다. 문제는 소고기뿐 아니라 생우 시장 역시 개방됐다는 것이다. 

수입자유화 바람에 따라 호주와 미국, 캐나다 등 주요 소고기 수출국들은 이 시기 한국에 지사를 설립, 다양한 소비 홍보 활동을 전개하는 등 본격적인 국내 시장 진출을 위한 교두보 마련에 총력을 기울이기 시작하면서 산업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이 가운데 당시 정부는 UR 협상 타결을 계기로 ‘42조 원 투·융자 계획’을 세워 농업부문의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이런 기조에 따라 한우 사육 마릿수는 꾸준히 증가했으며 1996년 9월에는 289만 마리까지 불어났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와 사룟값 폭등, 사육 마릿수 증가, 광우병 파동이 맞물리면서 1998년 한우 송아지값이 50~60만 원대에 거래되는 제2의 소 값 파동이 일어나며 큰 시련에 부딪혔다.

 

# 1992년 도체 등급제 실시…고급육 생산 시작

1990년대 들어 소고기 수입, 특히 냉장육 수입마저 본격화하면서 국내 소고기에 대한 객관적 평가 기준 마련과 등급에 의한 거래제도 확립을 위한 제도 마련의 필요성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1992년 일본의 육류등급제와 유사한 등급제를 개발해 시범사업을 실시하며 현재 도체 등급제의 모태를 마련했다. 이는 거세를 통한 고급육 생산의 시발점이 됐다. 

그러나 1992~2000년까지 한우 1등급 이상 출현율은 10%대에 머물렀다. 이시기는 시장에서도 고급육 수요가 많지 않았고 구이보다는 탕과 불고기가 주된 소비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거래방식도 품질보다는 중량 중심으로 이뤄지다 보니 쉽지 않았다. 

1993년 정부도 고급육 생산을 위한 수소의 거세를 적극적으로 장려했지만, 수소의 거세 비율은 정부의 당초 계획인 40% 수준에 크게 미달한 한 자릿수를 맴돌았다.

이 가운데 1999년 10월 소 냉도체 등급 판정제 전면시행과 거세 장려금 지급, 한우의 브랜드화 바람은 품질 고급화의 기폭제가 돼 수소의 거세 출현율이 크게 늘기 시작했고, 2001년 처음으로 20%를 돌파한 가운데 2002년 35.2%, 2005년 47%에 이어 2007년 드디어 50.9%를 기록하면서 절반 이상 1등급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거세 고급육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브랜드도 함께 육성되기 시작했다. 1999년 본격화된 한우 브랜드 출범으로 2003년에는 428개 브랜드가 상표등록을 한 가운데 미등록 브랜드까지 합치면 700여 개 수준으로 양적인 성장을 거뒀다. 그러나 체계적인 운영이 되는 브랜드는 소수인 데다가 관리가 미흡해 소비자들의 인지도가 낮아 농식품부는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하고 축산물 개방확대에 대응하고자 품질과 위생‧안전성 등이 확보된 우수브랜드를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정책을 내놓았다.

 

# 1999년 전국한우협회 창립

한우회, 한우작목반, 한우 영농조합, 축우회, 한우연구회 등 풀뿌리 한우 조직이 1999년 한우협회라는 이름으로 한데 뭉쳤다. 

2001년 소고기 및 생우 시장 전면개방이 임박한 가운데 경제위기 확산과 사육 마릿수 증가 등으로 농가들의 사육심리가 크게 흔들리면서 농가 결집을 위한 생산자단체 설립의 필요성이 공론화됐고, 마침내 1999년 9월 전국한우협회가 창립됐다.

한우협회 창립은 소고기 시장 전면개방과 함께 한우 산업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된다.

 

# 2001년 생우 수입저지…농가 결집

소고기 및 생우시장 개방에 따라 2001년 4월과 5월 호주에서 생우 1300여 마리가 수입되면서 한우협회를 중심으로 한 농가 반발은 거세게 퍼졌다. 외국산 생우의 한우 둔갑판매와 사육심리 위축을 우려한 한우농가들은 부산궐기대회를 시작으로 인천 동구 불로동 집회, 전북도 수입생우 규탄대회, 사료 불매운동 등 사활을 건 반대 투쟁운동을 벌였다.

결국, 수입개방 첫해에 수입된 수입 생우는 입식 되지 못하고 농협에서 전량 수매해 도축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이듬해에는 호주산 생우 수입으로 다시 한번 홍역을 앓았다. 블루텅병으로 중단됐던 호주산 생우는 2002년 10월 다시 수입돼 무주, 진안과 화성 지역으로 입식예정이었지만 한우농가들의 밤샘 입식 저지 투쟁과 강력한 이동 경로 감시활동 등으로 막아냈다.

 

# 한우자조금 출범

WTO 체제 출범에 따른 축산물의 전면적 개방으로 인해 축산업이 커다란 어려움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하자 축산업계에서는 자율적인 보호장치 마련을 위한 움직임이 일어났다. 

당시 한우 사육농가는 18만 9000호에 평균 사육 마릿수는 8마리로 취약한 구조였다. 이에 의무자조금 도입에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면서 집행부는 전업농가들을 적극적으로 투표에 참여시킬 수 있는 사육 마릿수 투표를 통해 마리당 2만 원을 거출‧조성키로 하면서 의무자조금을 출범시켰다. 한우자조금은 첫해 거출율이 전국 평균 55%로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거출 1년 만에 90%를 돌파하며 다시 한번 한우농가의 저력을 입증했다. 급물살을 탄 한우자조금은 본격적인 한우 소비촉진과 소고기 유통 감시활동, 한우농가 교육 등을 본격화하며 한우 산업발전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

 

# 또 한 번의 위기 한·미 FTA 타결

2008년 타결된 한미 간 소고기 협상결과에 30개월령 이상의 소로 수입이 확대된 결과를 두고 한우농가들은 반발했고, 한우협회는 단독 집회를 개최했다. 그 결과 재협상에 돌입한 양측은 30개월령 이상 소고기에 대해서는 수입을 금지키로 하는 한편 30개월령 미만 소고기에서도 뇌, 눈, 척수, 머리뼈 수입금지를 얻어냈다. 그러나 재협상에도 불구하고 2012년 한미 FTA 체결에 따라 많은 한우농가가 산업을 포기했다. 관련 통계에 따르면 이 시기에 한우농가들은 절반 가까이 감소하면서 9만여 한우농가만이 산업에 남게 됐다. 

 

# 음식점원산지표시제의 법제화…소고기 이력제 도입

당시만 해도 소고기 유통체계는 너무도 열악해 둔갑판매를 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다. 투명한 유통환경 조성에 따른 둔갑판매 방지를 염원해왔던 한우업계는 음식점 식육 원산지 표시제 입법화를 위해 소비자단체, 요식업계는 물론 이를 반대했던 보건복지위 소속 의원들에게 입법 필요성과 공감대 형성에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다.

결국, 2005년 12월 육류의 음식점 원산지 표시제 도입을 골자로 한 식품위생법 일부법률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2007년 1월 1일부터 규모별 연차적 시행을 예고한 가운데 한미 FTA 협상 타결에 따른 보완대책으로 시행 대상이 전 음식점으로 확대되면서 빠르게 시행, 정착하게 됐다.

음식점 원산지표시 확대시행과 함께 FTA 대책의 하나로 2009년 소고기 생산이력제가 전면 시행됐다. 생산단계부터 유통단계까지 소고기 개체식별번호가 부여되고 유통과 소비단계에서 이에 관한 확인이 가능해지면서 한우 안전성과 유통 투명화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를 더욱 높이는 등 법적·제도적 안전장치 마련으로 한우 산업은 안정화에 접어들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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