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란, 비약 성장…축종 중 가장 먼저 전·기업화

정부 축산업 장려 정책 힘입어
고품격 종계·대형 부화기 도입
전용 부화장 들어서며 확장세
케이지 사육 전환 마릿수 급증

‘축산물 가공처리법’ 제정·공포
전용 도계처리공장 설치·가동
통닭구이 등 간이·가공식 등장
한때 과잉 강제적 구조조정도

육계협회, 닭고기 산업 구심점
자조금 탄생 되자 도약틀 완성
계열업체·농가 상생 기틀 마련
ICT접목…생산성 향상 극대화

 

양계산업 발전사
2010년~ 2000년~09년 1990년~99년 1980년~89년 1960년~79년

정착기

 

도약기

 

발전기

 

기반 조성기

 

태동기

 

[축산경제신문 김기슬 기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닭은 인간에게 가장 친숙한 가축이다. 고기와 계란을 함께 얻을 수 있는데다 타 축산물보다 상대적으로 값이 저렴한 까닭에 오래도록 길러왔다. 

일제강점기 이전에는 계란을 얻을 요량으로 마당에서 닭을 몇 마리 기르는 수준에 불과했다. 암탉은 계란 생산용, 수탉이나 노계는 고기로 먹는 식이었고, 닭이 알을 품는 모계부화 형태여서 소규모일 수밖에 없었다. 

이후 생산성이 좋은 외래종 산란종계와 대형 부화기가 도입되고 전용 부화장이 들어서면서 양계산업은 확장일로를 걸었다. 특히 양계용 배합사료가 공급되면서 채란업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며 전체 축산업 중에서도 가정 먼저 규모화, 전업화 수순을 밟았다.

 

# 태동기(1960~79)

한국 양계산업은 1950년대까지 부업 형태를 벗어나지 못했고, 1960년대는 겸업 내지 전업화 초기에 지나지 않았다.

1960년대 들어 경제개발 계획의 일환으로 정부가 축산을 적극 장려하며 1963년 실용계와 종계가 도입된데 이어 1965년부터 육용종계가 수입됐다. 1962년엔 미국 등지에서 옥수수와 대두박이 들어오기 시작하며 배합사료 수급 증가와 함께 사료품질 개선으로 사료효율이 좋아져 양계산업의 태동기를 이끌었다. 

그러던 양계산업은 1970년대에 접어들며 본격 성장하기 시작했다. 양계산업이 산란계산업과 육계산업으로 분리되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이다. 국가 경제와 국민소득 향상으로 계란과 닭고기 수요가 늘은데다, 외국 종계와 대형 부화기가 도입되고 전용 부화장이 들어서면서 양계산업은 전문화, 전업화의 길을 걷게 됐다. 

산란계는 평사 사육에서 케이지 사육으로 전환되면서 사육마릿수가 크게 늘었다. 육계도 ‘축산물가공처리법’이 제정·공포돼 전용 도계처리공장이 설립·가동되는가 하면 후라이드 치킨과 통닭구이 등 간이·가공식품도 출현했다.

특히, 1973년에는 양계산업 발전을 위해 한국가금협회와 한국부화협회, 한국초생추감별협회가 뭉친 대한양계협회가 첫발을 내 딛었다.

 

# 기반 조성기(1980~89)

1980년대는 전업에서 기업으로 대형화가 이뤄지며 산업의 구조가 갖취진 시기다.

세계 2차 오일쇼크와 세계적인 경제침체의 영향으로 우리나라도 경기불황을 겪게 된 가운데, 급격히 팽창한 산란계산업은 계란 과잉생산으로 인해 장기간 불황이 이어지며 반강제적인 구조조정이 이뤄졌다. 

그 여파로 1980년대 후반까지 많은 중소규모 양계농가들이 폐업하게 됐으나, 이 와중에 다수의 대군 산란계농가들 위주로 생산시설 현대화 바람이 불며 본격적인 기업화가 시작됐다.

육계 계열화사업이 도입된 시기도 1980년대다. 이 과정에서 1987년 육계협회의 효시인 대한가금처리협회가 설립돼 육계산업의 구심점 역할을 해냈다.

또 현대시설을 갖춘 중대형 도계처리장과 가공공장이 설치·운영되며 통닭 위주의 판매에서 부분육 판매가 이뤄졌고, 가공식품 판매도 시작되는 등 양계산업의 기틀을 다지게 됐다.

 

# 발전기(1990~99)

1990년대는 양계산업의 성장 발판이 마련된 시기다.

산란계의 경우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부 정책 등에 따라 케이지 등 다양한 선진 양계기구들이 대거 수입되며 선진화와 현대화가 진행됐다. 또한 시간당 1만~2만5000개의 계란을 선별·포장하는 자동선별기가 대형농장을 중심으로 빠르게 보급됐다.

재미있는 사실은 국내 소비자들의 갈색란  선호도가 높아짐에 따라 과거 주를 이루던 백색 산란계가 1990년대 들어서며 100% 갈색 란란계로 교체됐다는 점이다. 또한 영양란, 오메가3란, 인삼란, 해초란 등 다양한 종류의 특수란이 생산·판매되기 시작했고, 구운란과 훈제란도 첫 선을 보였다.

치킨을 포함한 외식·배달문화로 닭고기 제품 수요가 급증하며 소비·유통시장이 선진화되기 시작한 것도 1990년대다. 육계 계열화사업도 본 궤도에 올랐다. 일일 10~20만 마리를 처리하는 중대형 도계·가공공장이 들어섰고, 슈퍼마켓과 대형마트가 등장하며 계육제품의 고급화와 다양화를 이끌었다. 하림을 비롯해 동원산업, 대림수산 등도 닭고기 가공품시장에 참여해 중고생치킨과 직화치킨볼, 치킨까스, 닭강정, 스모크치킨 등 가공제품 개발을 위한 투자를 확대했다.  

 

# 도약기(2000~09)

2000년대는 국내 양계산업의 도약을 위한 큰 틀이 완성된 중요한 시기다. 닭고기·계란자조금이 시작됐고 FTA 시대에 대비키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자금지원에 힘입어 시설현대화사업이 진척돼 사육마릿수가 크게 늘었다.

산란계는 직립식 케이지의 전성시대를 맞으며 기존 외국산 케이지 수입에서 벗어나 국산 케이지와 계란선별기 생산이 본격화되는 등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고, 기자재 수출길도 열렸다.

특히 계란선별기는 계란을 단순 선별·포장하는 기능을 넘어서 파란이나 혈란, 오란 등을 자동으로 분류하는 최신형 기종이 수입되면서 등급란이나 고품질 위생란 등을 보급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졌다. 자동급수기의 대명사인 종형급수기에서 누수가 없는 니플급수기로의 교체가 이뤄진 것도 이때다.

육계는 계열업체 중심의 산업에서 생산자인 사육농가와의 동반자 관계가 강조되며 상생을 위한 방안들이 마련되기 시작했다. 특히 도계장 HACCP은 계열화사업의 핵심요소로 부상했고, 닭고기 포장유통 의무화도 도계장 중심의 닭고기산업에 일대 전기를 마련했다.

그러나 2003년 국내 최초로 발생한 고병원성 AI로 닭고기시장이 얼어붙었고 가금관련단체들은 부정적 인식 해소를 위해 시식회 등 다양한 소비촉진 행사를 개최키도 했다.

 

# 정착기(2010~)

2010년대는 축산강국과의 연이은 FTA 체결로 시장 개방이 가속화되며 국제 경쟁력 향상을 위해 생산성 향상과 원가절감 등 효율 극대화에 초점이 맞춰졌다. 양계농가에도 자동화시스템은 물론 인터넷,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을 활용한 ICT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동물복지와 가금산물의 안전성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지기도 했다. 동물복지에 대한 관심과 수요 증가로 산란계는 지난 2012년부터, 육계는 2014년부터 동물복지인증제도가 도입됐다.

특히 계란은 살충제 계란 사태를 계기로 ‘난각 산란일자 표기’와 ‘이력제’, ‘식용란선별포장업제’ 등이 도입됐고, 산란계 사육밀도도 신규농가의 경우 2018년부터 기존 마리당 0.05㎡에서 0.075㎡로 확대됐다.

1인 가구와 맞벌이 증가 등으로 소비패턴이 빠르게 바뀌며 가정간편식(HMR) 시장이 급성장하며 삼계탕을 비롯, 볶음탕, 찜닭, 양념육 등 다양한 제품이 등장했고 한류의 영향으로 K-푸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2015년 미국, 2016년엔 중국으로의 삼계탕 수출이 이뤄졌다.

그 결과 1970년 1인당 63개였던 계란 소비량은 2019년 254개로, 닭고기 소비량은 0.5kg에서 15kg으로 증가하는 등 양적·질적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선진국 소비량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아직도 성장 가능성은 높은 것으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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