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경제신문 한정희 기자] 앞으로 유럽연합(EU) 가입국은 고병원성 AI(HPAI)나 ASF가 발생해도, 우리나라에 닭고기와 돼지고기 수출을 전면 중단하지 않아도 된다. 
정부는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EU산 가금·가금제품, 돼지·돈육제품 수입 위생 조건 개정 고시안’을 행정예고 했다. 즉, 고병원성 AI나 ASF 발생지역 생산 축산물은 우리나라로 수출이 즉시 중단되지만, 비발생지역 축산물은 계속 수출을 할 수 있게 된다. 정부는 관련한 국민 의견을 오는 21일까지 수렴한다. 
이는 세계무역기구(WTO) 동식물위생검역(SPS) 협정과 세계동물보건기구(WOAH) 육상동물위생규약 등의 기준을 따른 것이다. 이에 대한 최대 수혜는 ASF 발생으로 수입이 중단된 독일산 돼지고기로 예상된다. 정부가 나서서 독일산 돼지고기 수입 재개에 물꼬를 터주는 모양새에 눈살이 찌푸려진다. 더 나아가 다른 나라에서도 EU와 동등한 조건(지역화)으로 수입 허용을 요구할 것이 우려된다. 
유럽식품안전청(EFSA)에 따르면 ASF가 이탈리아, 독일 등 여러 국가에서 여전히 확산되고 있다. 최근 독일 내 네덜란드 국경 인근 양돈 밀집 지역에서 발생한 ASF는 기존 발생지에서 300km 이상 점프해 왔다. 이보다 앞서서는 500km를 점프해 프랑스 국경 인근에서 발생하기도 했다. 이탈리아도 ASF가 확산 추세에 있다. 현재 유럽 전 지역이 ASF 사정권 안에 있다. ASF 청정지역과 오염지역 구분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농식품부는 “동·축산물이 국내로 반입되면 바이러스 유무에 대한 검사 등 검역 과정을 철저하게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말에 믿음이 안 간다. 다수의 전문가는 EU산 돼지고기 수입량과 ASF 유입 가능성은 비례한다고 판단한 반면, 정부는 “관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축산물에 묻어온 ASF를 검역 과정에서 관리하겠다는 자신감의 근거가 궁금하다. 투명인간과도 같은 바이러스 유입을 관리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오류고 오만이다. EU에서 새로운 타입의 고병원성 AI나 ASF가 유입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내 축산업계 몫이 된다. 이를 결정한 공무원은 문제가 됐을 때 그 자리에 없을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이같이 EU의 고병원성 AI·ASF에는 관대한 반면, 국내 축산농가에는 필요 이상으로 엄격하다. 2019년 국내 첫 ASF 발생 당시 정부의 강력한 규제로 인해 살처분 농가는 2년 가까이 돼지 재입식을 하지 못했다. 3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과도한 방역 조치가 이어진다. 8대 방역 시설의 전국 의무화 등 양돈장에 엄격한 차단방역을 요구하고 있다. “농식품부는 바이러스 유무를 검역 과정에서는 관리가 가능하지만, 일단 국내로 들어온 바이러스는 관리 방법이 없는 것 같다”고 비꼬는 소리가 일선에서 나오는 이유다.
우스개 소리로 EU 가입국 양돈장들은 8대 방역시설 등을 설치하지 않았지만, 비발생지역에서 우리나라로 돼지·돈육제품을 수출할 수 있다. 우리는 돼지가 타 지역으로 이동하기조차 쉽지 않은데 말이다. 정부는 과학적 증거에 기반하지 않은 상태로 ASF 방역이란 명목하에 국내 양돈장을 옥죄고 있다. 
야생멧돼지는 못 잡고 양돈장만 잡더니, 이제는 검역장벽까지 위태롭게 만든다. 정부는 EU의 지속적인 요구에 백기를 들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우리나라 축산업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이번 고시 개정안을 백지화해야 한다. 축산업 보호를 위해 검역장벽을 정부가 나서서 없애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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