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경제신문 권민 기자] 올들어 윤석열 정부의 첫 추가경정예산안에서 농림축산식품부 소관 예산이 4253억원이나 삭감됐다. 특히 비료가격 인상분에 대한 정부의 지원 약속마저 후퇴하면서 사실상 6000억원에 가까운 정부의 농업 지원 예산이 사라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비료가격 상승분을 정부가 상당부분 지원해 농가 부담을 낮추겠다는 공약으로 농민들의 표심을 흔들었다. 

 

농축산인 각자 도생


무기질 비료가격 인상분 6000억원의 80%인 4800억원을 보조한다고 밝혔지만 실제 뚜껑을 열어놓고 보니 정부 지원금은 600억원에 불과하고 애꿎은 농협이 3600억원을 부담하게 됐다. 은근슬쩍 정부의 부담을 농협에게 떠넘긴 것이다. 
농업협동조합이 농민들을 위한 조직이니까 너희들이 부담을 지라는 의미인데, 이는 농협을 아전인수 격 해석에서 비롯됐다. 
협동조합이 전체 농민을 대변하라는 것도 무리지만, 정부가 자신의 책무를 일방적으로 떠맡기는 것 또한 직무유기다. 
농협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부담시킨 이 강요(?) 때문에 진정 해야 할 농업인에 대한 교육 지원 뿐만 아니라 현물 지원사업을 그만큼 축소할 수밖에 없게 됐다. 결국 농민에게 돌아가야 할 자금으로 농민을 지원하는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확정된 2022년 농업 예산은 16조 8767억원이다. 정부는 이 액수를 역대 최고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국가 총예산 604조 4365억원과 비교해 보면 2.8%에 불과한 초라하기 짝이 없는 예산이다. 
예산 증가율과 비교해도 초라하기는 마찬가지다. 총예산은 약 9% 늘었지만 이중 농업 예산 증가폭은 3.6%에 불과하다. 이것도 국회에서 예산 심의 때 2000억원 가량 증액시킨 것이라니 정부가 농업을 대하는 태도가 어떤지 확인할 수 있는 사례다. 
정부는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가입에 이어 CPTPP(포괄적 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의 가입을 진행 중이다. 농축산업의 심각한 위기가 가속화될 전망인데, 이에 대한 농축산업계의 의견 수렴 과정도 없고 지원 대책에 대해선 가타부타 말도 없다.
정부가 추정한 농림축산업 생산 감소만 해도 연평균 853억~4400억 수준이다. 
이는 중국과의 동식물위생검역 요인은 고려하지 않아 정확성도 떨어진다. 게다가 동식물위생검역 규정이 수출국에 유리하게 짜여져 있어 실제 피해액은 얼마로 늘어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식량 안보의 축을 보전해야 할 농림축산식품부가 어떤 역할을 했는가? 따져 묻지 않을 수 없다. 
먼저 정해진 예산에서 더 많은 농업 예산을 가져오려면 국가의 총무 역할을 하는 기획재정부를 설득해야 한다. 
이때 정해지는 예산은 가뜩이나 힘든 농촌의 밑바닥까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때문에 정부의 사업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추진 추최나 당사자들은 기재부를 어떻게 설득하느냐에 초점을 맞춘다. 
이때 기재부의 입맛에 맞도록 사업 설계를 하지 못하면 예산액의 증액은 요원한 일이다. 
특히 농업 관련 예산은 수치로 재단할 수 없는 사업과 정책이 많기 때문에 더 많은 객관적이고 설득력 있는 자료가 필요하다. 

 

대변인 소리 그만 좀


미래를 위한 장기적 비전, 왜 그것들이 필요한지로 수치만을 들먹이며 당장의 실효성만을 따지는 기재부를 설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총 예산 중 쥐꼬리만한 예산을 가져왔다는 것은 농식품부가 기재부를 설득시키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재인 정부의 전 장관은 ‘기재부의 대변인’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설득하러 가라고 했더니 오리려 설득 당해, 왜 쥐꼬리 예산을 가져왔느냐는 농민들의 질책에 ‘국가의 시책’이라는 뜬금없는 소리만 되뇌였다. 
다를 것이라 예상했던 이번 정부에서의 농식품부는 한술 떠뜬다. 물가안정이란 이유로 돼지고기는 물론 소고기까지 무관세로 수입한다는 정부의 물가안정대책에 대해 농축산인들의 반발을 조금도 대변해주지 못하고 오히려 ‘나팔수’ 역할이다. 
농축산인들은 식량 안보의 중요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례가 눈 앞에 벌어지고 있는 데도 국민 먹거리에 대한 수입의존도를 높여가는 정부의 행태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비난하고 있다. 
특히 일부 전문가들은 6월 기준 물가상승률 6% 중 축산물의 기여도는 0.35%P에 불과하며, 지속 증가하고 있는 물류비와 인건비를 고려하면 이번 조치는 최종 소비자물가 안정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때문에 이번 조치를 두고 민생 운운하지만 결국 축산물 수입·유통업체들의 이권을 챙겨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농민들은 국민 먹거리의 근간을 이루는 자국 농축산업에 대한 정부 당국자들의 천박한 인식에 대해 가슴 아파한 지 오래됐다. 하지만 그 아픔이 분노로 치솟는 것은 농식품부의 행태 때문이다. 
농식품부의 일련의 행태를 보면 농축산업의 발전과 미래를 지탱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민의 먹거리를 국내산에서 외국산으로 대체하는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기 때문이다. 지금 축산업은 재난에 빠졌다. 
농축산인들은 외국산과 경쟁해야 하지만 농식품부와도 싸워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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