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평등하게 태어난다. 누구나 자유와 행복을 원한다. 
하지만 남을 부리는 위치에 있거나 권력을 쟁취한 후에는 돌변하는 경우를 우리는 주위에서 종종 보게 된다. 
다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여 하인 대하듯이 하는 사람이 비일비재하다. 
중국 당나라 중기 때 시인이자 뛰어난 경륜을 지닌 정치가 백거이(772-846년)는 본래 학식이 풍부하고 총명하기 그지없어 높은 지위에 올라 자못 그 우월감이 충만해 있었다. 
그는 새둥지처럼 나무 위에서 좌선하는 조과선사(鳥窠禪師)를 시험하고자 선사를 찾았다. 
“선사님, 나무 위는 위험하니 어서 내려오십시오” 라고 하자 “그대가 서있는 땅 위보다 내가 앉아있는 나무 위가 더 안전하오” 명리와 이해가 엇갈리는 속세가 위험한 곳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말한 것이다.
백거이가 가르침을 받으러 왔다고 하자 마지못해 나무에서 내려와 방장실(스님 중에서 제일 어른이 기거하는 방)로 안내하며 “그래, 어찌 이 어려운 걸음을 하셨는고?” 
그러자 백거이는 “제가 평소에 좌우명을 삼을 만한 법문 한귀절을 듣고자 찾아 왔습니다.”
선사는 섣불리 아무 말이나 일러줄 수 없는 어려운 상대를 만났으나 서슴지 않고 한 게송을 써주었다. 
그 게송의 의미는 다음과 같았다. “모든 악을 짓지 말고(제악막작·諸惡莫作), 착한 일을 받들어 행하라(중선봉행·衆善奉行), 스스로 마음을 깨끗이 하면(자정기의·自淨其意),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 이니라(시제불교·是諸佛敎).”  
그 구절을 읽은 백거이는 “선사님! 그것은 세 살 난 어린이도 아는 말입니다” 라고 하였다. 
“세 살 난 어린이도 아는 말이지만 80세가 된 노인도 실천하기 어렵지”라고 조과선사께서 말씀하시자, 평상심 (平常心)이 곧 도(道)라는 것을 백거이는 크게 깨닫게 되었다. 
새집처럼 나무위에서 중생을 제도하는 고승이 고관대작에게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천이 중요함을 일깨워 준 것은 고승이 고관대작보다 한 수 위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백락천의 판정패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실천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운동은 보약보다 낫다는 말을 수없이 듣지만 실행이 어렵고 담배도 백해무익하지만 잊어버리고 습관적으로 핀다. 
머리로 알고는 있지만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강인한 마음을 먹어야만 실행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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