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경제신문 한정희 기자] “곡물 생산국이 식량을 무기화하는 현상이 심화되면 이는 국가안보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식량 문제를 국가안보로 인식하고 식량안보 규정을 헌법에 명시해야 한다.” 농협중앙회 농협경제연구소는 최근 ‘세계 곡물 가격변동성과 식량안보’라는 연구보고서에서 이같이 밝혔다. 우리나라는 곡물 수입 의존도가 80%에 달하고 곡물 가격 변동성에 취약한 만큼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부는 한돈·한우·닭고기·분유 등 축산물에 대한 갑작스러운 할당관세 적용으로 축산물 시장을 외국업체에 내어 주려 한다.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지난달 22일 농축산식품 전문지 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식량을 수입해 먹으면 된다는 생각은 만용”이라며 “식량 수입 비중을 낮춰갈 것”이라고 밝혔다. 정 장관은 “우크라이나 전쟁은 세계 곡물 가격 상승을 촉발했고, 세계가 식량안보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앞으로 전쟁이 아니어도 식량안보 저해 사례는 반복될 것이다. 돈이 많다고 해외에서 식량을 충분히 사다가 먹을 수 있는 시절이 아니다. 농업을 귀하게 여기고 지켜서 안정적인 생산기반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식품부 장관의 이 같은 약속은 몇 시간 지나지 않아 공허하게 흔적도 없이 흩어졌다. 이런 말이나 말지. 정부는 이날부터 돼지고기 5만톤에 대해 할당관세를 적용했다. 며칠 후인 지난 8일에는 삼겹살 2만톤 추가, 소고기 10만톤, 닭고기 8만 2500톤, 전·탈지분유 1만톤 등에 할당관세를 적용한다고 밝혔다. 축산농가들은 망연자실하며 참담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난 11일 가축을 돌볼 시간에 서울 용산으로 나와 규탄의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는 공급과잉으로 인한 가격 하락 우려, 사료가격 상승으로 인한 생산비 급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축산농가를 외면하고 있다. 한우협회는 농협·농식품부와 함께 공급과잉으로 인한 소 가격 폭락을 우려해 암소 5만마리 도축을 목표로 추진 중이다. 그러나 정부는 소 40만마리에 달하는 소고기 10만톤을 무관세로 수입한다. 연간 한우 도축 마릿수의 50%에 이르는 엄청난 물량이다. 정부가 한쪽에서는 암소 도축을 장려하고, 다른 쪽에서는 수입을 장려하고 있다. 
한돈협회는 하반기 돼지 생산비가 kg당 5500원대로 올라, 비육돈 생산비가 마리당 10만원 가량 급등할 것이라 예측한다. 생산비 중 60% 이상을 차지하는 사료가격이 최근 2년간 60% 이상 급등, 지난해부터 kg당 250원 가량 올랐다. 사료가격의 하반기 추가 인상도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때는 한돈농가는 돼지를 출하할수록 적자가 누적되는 상황이 된다. 국내 돼지고기 생산량도 역대급으로 많은 상황이다. 정부는 이런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수입을 장려하고 있다.
우리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요동치는 물가 속에서 에너지든 식량이든 자급률을 갖추지 못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뼈저리게 느꼈다. 설익은 정책으로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 국내 생산기반을 흔드는 정책은 하지 말아야 한다. 이전 상태 복구는 불가능해질 수 있다. 국내 축산 기반이 무너지면 국민의 기본 먹거리에 큰 차질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당장의 달콤함을 위해 우리 시장을 내주어서는 안 된다. 축산물 가격은 오름세와 내림세를 주기적으로 반복하며 시장 원리에 따라 조절되고 있다. 섣부른 정부 주도 축산물 수입 장려 정책은 즉각 중단해야 한다. 정권은 바뀌었어도 비상식적인 농정은 그대로라는 비판을 몇 번이고 곱씹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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