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경제신문 권민 기자] 199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농산물 시장이 개방되자 값싼 외국산 농산물이 지천에 깔리면서 가격 경쟁에서 밀려난 농민들은 큰 타격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민들을 제외한 대다수 국민들은 값싼 농산물의 혜택(?)을 받았다. 
게다가 WTO 체제와 농축산 강국들과의 잇따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은 외국산 농축산물에 빗장을 활짝 여는 계기가 됐고, 식량 문제는 완전히 해결된 듯 보였다. 과연 그랬을까?
코로나 팬데믹이 장기화되면서 각국이 국경을 닫자 세계 물류시스템이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됐다. 그 여파는 수입에 의존하는 국가들에게 곧바로 충격으로 다가왔다. 특히 대부분의 농축산물을 수입에 의존해온 우리의 상황은 더욱 어려워졌다. 
지금까지 지천에 깔려 있으므로 먹을거리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있지 않던 우리가 자연스럽게 갖게 된 농업 경시, 또는 무관심이 세계 곡물가격 상승에 따라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여기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곡물가격을 비롯 유류가격까지 천정부지로 치솟자 비로소 식량 자급률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하지만 국민들의 체감과 정부의 체감이 같을까? 정부가 식량을 안보로 생각하고 있을까? 정말 국민의 밥상을 지키려고 노력하고는 있는 걸까? 작황 및 가격의 변동성으로 농업의 경영위험이 클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있을까? 먹을거리 전반에 관한 포괄적 대책보다 당장의 가격 안정이라는 단기적 발상에 더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닐까?

 

수입의존 단순논리


물가안정이라고 선 듯 무관세 수입 카드를 꺼낸 것부터 정부가 장기적 근본대책에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급 부족으로 가격이 오르면 공급을 늘린다는 단순 논리다. 그러니 농축산 관련 물가가 급등락을 되풀이 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국은 세계에서 7번째로 곡물수입량이 많은 국가다. 그것도 몇몇 주산국에 수입물량 대부분을 의존하고 있다. 
밀은 미국과 호주, 우크라이나 등 3개국에서 약 80%를, 콩은 미국, 브라질에서 90%, 옥수수는 미국,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3개국에서 80%를 수입한다. 
때문에 평상시에도 이들 국가가 수출금지 등 무역제한 조치를 단행할 경우 가격 상승 위험에 대처할 방법이 많지 않다. 하지만 정부는 곡물 수입국 다변화를 도모할 생각이 별로 없는 듯하다. 다변화하려면 그만큼의 관심과 노력이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당장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촉발된 곡물 가격 파동으로 곡물 생산‧수출국들이 문을 닫어 걸고 나섰다. 양국 당사국들은 물론 헝가리 등 주요 곡물 수출국들도 수출 제한 행렬에 속속 동참하고 있는 상황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주요 곡물가격은 곡물의 생산과 공급‧유통 등에 차질을 빚으면서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이 장기화될 경우 곡물 수출국들의 수출 중단 조치는 확산될 것이고 곡물 수입 의존도가 높은 우리는 그 타격이 상상 이상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돈이 있있어도 마음대로 곡물을 수입할 수 없게 된다는 뜻이다. 

 

장기적 대책 세워라


한국은 밀‧콩‧옥수수가 곡물 수입의 95%를 차지한다. 식량 자급률은 45.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중 최저 수준이다. 2020년 기준 곡물 자급률은 20.2%이며, 이중 밀은 0.5%, 옥수수는 0.7%다. 
또 세계 각국과의 잇따른 자유무역협정 체결로 농산물 시장 개방과 농지 전용 확대에 따라 농지의 감소로 매년 식량 자급률이 낮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산물 자급률에 대한 고민도 없고, 안정적인 먹거리 확보에 대한 대안도 제시하지 못한다. 
정부는 그저 국적과 관계없이 먹거리만 풍성하면 그것이 식량안보인 줄 안다. 이러한 농업에 대한 몰이해 때문에 수입 농산물이 국내 농업을 대체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농업의 본질은 탄소, 질소, 물 등 무기질을 이용해 태양에너지를 식물성 생명체로 전환하고, 때로 이를 다시 동물성 생명체로 변형해 인간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그래서 농업은 인류 생존에 필요불가결한 산업이고, 다른 산업으로 대체 불가능한 산업이라는 사실을 무시한다. 
정부의 먹거리에 대한 대책이 부실하다고 걱정하는 이유는 다른 산업과 달리 농업에 대한 차별성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정부가 최근 미래의 먹거리라며 반도체 산업 육성에 올인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정말 반도체가 국민의 먹거리를 대신할 수 있을까? 전 세계적으로 기후위기로 몸살을 앓으면서 곡물 생산량 감소 위기가 현실로 다가온 상황에서 정작 먹거리를 걱정해야 할 시기가 도래하고 있는 데 말이다. 
국내 농업 기반은 심각한 고령화로 이탈농가가 속출하고 있으며, 농업 소득은 수십 년 째 1000만원 수준에 머물러 있다. 농축산물 생산비는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국내 농축산물 가격을 치받고 있는데 수입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유아적 발상이다.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정부가 개입해 가격을 인위적으로 조절하는 것은 정부가 부르짖는 자본주의의 원칙에도 벗어난다. 농업은 필수산업이다. 먹을 것이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축산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