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경제신문 권민 기자] 미국 정치 이론가이며 도덕주의자이자 역사학자, 사회 평론가, 문학 평론가, 픽션저자였던 러셀 커크는 20세기 미국 보수주의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그는 저서 ‘보수의 정신’에서 보수에 대해 나열한 정의 중 가장 첫번째로 초월적 질서 또는 자연법 체계가 사회와 인간의 양심을 지배한다고 했다. 
또 변화가 유일한 개혁이 아님을 인정하고, 신중한 변화야 말로 사회를 보존하는 수단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을 종합해 보면 보수의 가치는 안정과 질서 존중, 의무, 화합과 공동체 중시에서 나온다.

 

보수가 안보를 패싱


그런 의미에서 보수주의를 표방한다면 국정의 안정적 유지, 외세에 의존하지 않고 종속되지 않으며 흔들리지 않는 자립성, 독립성을 삶의 지향점으로 삼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래서 보수주의자들이 공통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이 안보다. 특히 남북한이 대립하고 있는 작금의 대한민국에서는 더욱 그런 경향을 띠게 된다. 
좌파 정권이라는 문재인 정부가 5년의 임기를 마치고 보수를 내세운 윤석열 정부가 들어섰다. 두 달도 채 되지 않은 윤석열 정부의 평가를 놓고 보면 '혼란'이다. 새정부 출범 직후 향후 5년에 대한 확고한 방향 제시없이 지금 초점은 전 정부의 '흔적 지우기'다. 
세계 경제의 침체는 물론 에너지 파동, 물가 파동, 곡물 가격의 폭등, 금융 위기 등 총체적 위기인 퍼펙트 스톰의 위기 앞에서 모든 책임을 '세계적인 상황'으로 규정한 채, '남 탓'으로 일관하는 무책임과 부정과 비리의 정점에 서 있는 인물들의 요직 등용 등 온갖 난맥상이 한꺼번에 얽히고 섥힌 이 상황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1948년 남한만의 독자 정부가 들어선 이후 대한민국에서 보수 정권이 공통적으로 내세우던 정책 제1 순위는 '안보'였다.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던 그런 안보가 지금 위기에 빠져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은 것이다. 
국방과학기술용어사전에 따르면 국가 안보란 국내외의 각종 군사 ·비군사적 위협으로부터 국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정치, 외교, 경제, 사회, 문화, 군사, 과학기술 등의 제 수단을 종합적으로 운용함으로써 당면하고 있는 위협을 효과적으로 배제하고 또한 일어날 수 있는 위협의 발생을 미연에 방지하며 나아가 불의의 사태에 적절히 대처하는 것이다. 
때문에 국가의 주권을 수호하는 방법은 국력 그중에서도 국방력을 강력하게 유지 발전시키는 것을 우선으로 한다. ​일제강점기를 겪은 교훈은 우리에게 두 번 다시 주권을 빼앗기지 않을 강한 나라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가 안보는 외적 요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강한 국방력만큼 국민의 먹거리를 보장하는 식량 안보 역시 중요한 문제다. 총칼만으로는 국가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식량을 외국에 의존하지 않고 종속되지 않고 독자적으로 국민들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공급하는 것, 이것이 바로 국가 안보의 두 축을 형성하는 식량 안보의 본질이다. 
그렇다면 보수를 표방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의 국가 안보관은 어떨까? 남북이 대치하고 있고, 러시아가 국경을 맞댄 우크라이나를 침공함에 따라, 고조되는 중국의 패권주의, 그에 따른 일본의 재무장이 거론되고 있는 한반도의 주변 상황에 맞서 국방력을 강화하고 있는가?

 

식량안보도 덩달아


지금 문재인 정부 흔적지우기에 몰입한 윤석열 정부의 행태를 보면 무엇이 우선인지, 보수의 가치를 추구하고 있는지에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취임 하자마자 느닷없이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준다(국민 누가 청와대 이전을 간절하게 원한 바도 없지만)며 집무실을 용산 국방부 자리에 이전하느라 논란을 키우며 개혁의 시간을 까먹고, 북한이 미사일을 공해상으로 발사한 그 시간 영화관람하는 '안보 패스'라는 지적을 받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안보에 대한 무감각이 가장 잘 나타나는 것이 50조가 넘는 막대한 추가경정예산에서 국방예산의 대폭 삭감에서도 잘나타난다. 코로나 영업제한으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 등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국방 관련 예산이 무더기로 삭감됐기 때문이다. 각 부처의 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확보한 예산 7조원 가운데 23%가 국방부 예산이라면 이번 추경예산을 통해 윤석열 정부가 보여준 안보의식이 어느 정도인지 가히 짐작이 간다.
지금 세계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각국들의 안보의식을 크게 높이면서 국방예산을 증액하는 실정이다. 윤석열 정부의 이번 추경예산을 보면 우리 정부는 완전히 거꾸로 가고 있는 정책을 구사하고 있다. 좌·우를 막론하고 어느 정부도 북한의 도발에 대한 대응태세를 소홀히 한적이 없다.  
더욱 놀라운 것은 윤석열 정부의 안보 패싱이 그동안 내세웠던 자신의 안보관을 완전히 뒤집어 엎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국민의 먹거리를 책임져야 할 식량 안보는 어떨까? 
식량 안보는 더 할 나위가 없다. 농업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높아진데다 WTO 체계와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수입이 자유화되면서 식량문제는 완전히 사라진 듯 보였다. 지천에 깔린 먹을거리, 그 중에서 먹고 싶은 것을 언제든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풍요.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 곡물가격이 급등하자 그 모든 것들이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량 주권에 대한 무관심은 국방 문제와 겹치면서 국가 안보의 총체적 위기를 몰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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