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경제신문 권민 기자] 어느날 박정희 대통령이 정주영 회장을 청와대로 급히 불렀다. 의아해 하는 정 회장에게 박 대통령은 하소연 비슷한 말을 했다. 
“달러를 벌 좋은 기회가 왔는데, 못하겠다는 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임자가 지금 당장 중동에 다녀오십시오. 만약 정 회장도 안 된다고 하면 나도 더는 기대하지 않겠습니다.”
“무슨 얘깁니까?” 정 회장이 물었다.

 

긍정의 마인드가 절실


“1973년 석유파동 이후 중동국가들은 달러를 주체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 돈으로 여러 사회 인프라를 건설하고 싶은데, 너무 더운 나라라 선뜻 해보겠다고 나서는 나라가 없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도 의사를 타진해 왔습니다. 중동 지역으로 관리들을 보냈더니, 2주 만에 와서 하는 얘기가 너무 더워 일을 할 수 없고, 건설공사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물이 없어 공사가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알겠습니다. 당장 떠나겠습니다.” 정 회장은 그 자리에서 선 듯 대답을 했다. 그리고는 5일 만에 돌아와 대통령을 만났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하늘이 우리나라를 돕는 것 같습니다.”
“무슨 얘기요?” “중동은 이 세상에서 건설공사 하기에 최적인 곳입니다.” 
“뭐요!”
“1년 12달, 거의 비가 오지 않으니 365일 내내 공사를 할 수 있고요.”
“또 뭐요?”
“모래, 자갈이 건설 현장 곳곳에 널려 있으니 자재 조달도 쉽고요.”
“물은?”
“그거야 기름을 우리나라로 싣고 와서 돌아갈 때 유조선에 물을 채워가면...”
“50도나 되는 무더위는?”
“천막을 치고 낮에는 잠자고 공사는 밤에 하면...”
대통령은 부저를 눌러 비서실장을 불렀다.
“이 회사가 중동에 나가는 데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지원을 하시오!”
정 회장 말대로 한국인은 낮엔 자고 밤에는 횃불을 들고 열심히 일했다.
세계가 놀랐다. 달러가 부족했던 그 시절, 30만 명의 일꾼들이 중동으로 몰려나갔고, 보잉 747 특별기편으로 달러를 싣고 들어왔다. 그렇게 우리는 제2차 오일 파동을 이기고 중화학공업 육성에 매진할 수 있었다. 
정주영 회장이 왕회장으로 무릇 많은 샐러리맨들에게 추앙을 받는 것은 그의 능력이 출중해서가 아니다. 그의 마인드가 긍정을 딛고 있어서다. 안될 것 같은 수많은 난관들을 저돌적으로 극복해낸 신화들은 바로 그의 긍정의 마인드, 삶과 일을 바라보는 긍정의 프레임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프레임이란 대상에 대한 정의다.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에게 ‘오늘’은 큰 의미가 없다. 그러나 그 오늘이 어제 그토록 살고 싶어했던 이들의 간절한 내일이었음을 정의하는 순간 오늘은 무의미한 오늘이 아니게 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업무를 직업이라고 정의하고, 어떤 이는 커리어라고 정의하고 또 어떤 이는 소명이라고 정의한다. 이는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 자신의 일을 소명이라고 규정하는 사람이 직업이나 커리어라고 규정하는 사람보다 훨씬 성과가 좋을 뿐 아니라 행복감도 강하게 경험한다. 
돌아보면 이런  사례는 주위에 널려 있다. 
한 회사가 신입 사원들에게 “나무빗을 스님에게 팔아라”는 과제를 내줬다.
대부분이 “머리 한 줌 없는 스님에게 어찌?”라며 낙심한데 반해, 그 중 한 사람은 머리 긁는 용도로 1개를 팔았다.

 

삶은 정의하는 대로


또 다른 이는 방문하는 신도들이 머리 단정에 쓰도록 식당이나 휴게실, 화장실 등 비치 용으로 10개를 팔았다.
그런데 한 사람은 무려 1000개를 팔았는데, 머리를 긁거나 빗는 게 아닌, 전혀 판이한 용도로 팔았다. 그가 찾은 곳은 깊은 골짜기의 한 유명 사찰이었는데, 주지 스님에게 “찾아 오는 신도 님들께 의미있는 선물 아이템을 말씀드리겠다”며 “빗에 스님의 정성어린 필체로 ‘적선소’(積善梳:선을 쌓는 빗)라 새겨 드리면 감동어린 선물이 될 것” 이라 말했다.
그러자 주지스님은 나무빗 1000개를 구입했고, 신도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었기에, 얼마 후 수 만개의 추가 주문을 받았다.
19세기 중반 프랑스의 한 염색공장에서 벌어진 일이다.
모두가 바쁘게 정신없이 일하는 도중 한 여직원이 등유가 든 램프를 옮기다가 염색 테이블 위에 떨어뜨리는 실수를 했다.
램프가 깨지고 램프 안의 등유가 쏟아져 나왔다. 당연히 테이블에 올려둔 작업물들은 단숨에 엉망이 되었고, 바쁜 와중에 작업이 중단된 공장 직원들은 투덜거리며 화를 냈다.
그런데 당시 공장의 대표였던 장 밥티스트 졸리는 조금 달랐다. 화를 내기 전에 먼저 그 상황을 ‘관찰’한 것이다.
염색 공장의 작업대를 덮고 있는 테이블보는 계속되는 작업으로 여러 가지 염색약에 얼룩져 있었다. 그런데 여직원이 등유를 쏟아버린 부분만 얼룩이 지워져 가는 것이었다.
장 밥티스트 졸리는 관찰하고 생각했다. 세탁 산업의 한 축이 되어버린 ‘드라이클리닝’이 발명되는 순간이었다.
핀란드의 10월 13일은 ‘실수·실패의 날’이다. 지난 1년간 저질렀던 실수나 실패했던 사례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여, 다시는 그런 실수나 실패를 하지 않도록 반전의 기회로 삼으라는 취지로 지정한 것이다.
한 번의 실수도 없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어쩌면 사람이 바르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 중의 하나는 실수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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