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군자와 소인의 얘기를 많이 듣는다. 서로 얼굴을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 가득하지만 정말 그 마음속을 알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되겠는가. “군자의 사귐은 물처럼 담담하고, 소인의 사귐은 단술처럼 달콤하다. 군자는 담담하므로 친해지고, 소인은 달콤하므로 사이가 끊긴다” 장자(莊子·기원전 369~289) 산목(山木)에 있는 말이다. 
담담하다는 것은 이해관계가 배제된 순수한 사귐을 뜻하며 담담하기 때문에 변질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 관계가 오래 지속될 수 있다. 달콤한 말은 그 속에 일정한 목적이 담겨 있으며 달콤한 사귐은 그러한 말을 내세워 접근한 자의 목적이 달성되면 그것으로 끝이 난다.
지금으로부터 2700년 전 중국 춘추시대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는 제나라 사람으로서 어릴 때부터 친구였으며, 함께 시장에서 생선 장사를 하였다. 
같이 장사를 하면서 관중은 포숙아보다 배 이상의 돈을 가지고 가고, 전쟁에 나갔을 때는 싸움터에서 항상 뒤에서 서고 싸움이 끝나고 돌아 갈 때는 항상 맨 앞에 서서 걸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장사를 하면서 관중이 왜 배나 많은 돈을 가지고 가냐’고 불평을 하고, ‘관중은 겁쟁이거나 비겁한 자’라고 비난하면, 포숙아는 항상 관중을 두둔했다. 
다른 사람들이 돈 문제를 가지고 이야기하면, 포숙아는 “관중은 구구한 돈을 탐해서 나보다 배나 많은 돈을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니다. 
그는 집안이 가난하고 식구가 많다. 내가 그에게 돈을 더 가지고 가도록 사양한 것이다. 그대들은 오해하지 마라”고 말했다. 관중을 비겁한 자라고 비판하면, 포숙아는 “관중은 용기가 없거나 비겁한 것이 아니다. 그에겐 늙은 어머니가 계신다. 자기 몸을 아껴 길이길이 늙은 어머니에게 효도하려고 하는 것이다. 어찌 관중이 싸움을 겁내리오”하면서 두둔했다. 
아울러 포숙아는 “사람은 누구나 때를 잘 만날 수도 있고 불우할 때도 있다. 만일 관중이 때를 만나 일을 하면 백번에 한 번도 실수가 없을 것이다. 그대들은 함부로 관중을 비난하지 마라”고 하였다. 
관중은 “나를 낳아준 사람은 부모며, 나를 알아주는 사람은 포숙아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마침내 그들은 생사를 함께하자는 교우의 의(義)를 맺었다. 이를 후세에서는 관포지교(管鮑之交)라고 부른다. 
포숙아의 행동은 군자의 삶이 무엇인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덕(德)이 재(才)를 앞서면 군자요, 재(才)가 덕(德)을 넘어 비루(鄙陋·천하고 너절)하면 소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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