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경제신문 한정희 기자] 모돈이력제 시범. ‘시범’ 시행이라 쓰고 ‘강제’ 시행이라 읽는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양돈장을 대상으로 모돈이력제를 시범 시행한다. 모돈을 사육하는 전국 3623개 농장 가운데 52%인 1884개 농장이 대상이다. 이곳에서 사육 중인 모돈은 총 89만 9000마리로 전체의 82.9%에 이른다. 사실상 전면 시행 수준이다. 대한한돈협회는 “모돈 80% 이상을 대상으로 한 모돈이력제는 시범 시행이라 볼 수 없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모돈이력제는 5월 종돈장(139개소)을 시작으로 7월 모돈 전문농장(357개소), 9월 모돈(후보돈 포함) 200마리 이상 일관농장(1388개소) 순으로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이들 농장은 모돈 귀표 부착과 이력을 신고해야 한다. 후보돈(모돈)의 폐사·이동·출하 등 변동사항은 발생 때마다 이력관리시스템(모바일 앱)에 입력한다. 귀표 번호(개체번호)에 맞춰 폐사일, 폐사 사유, 출하일, 도축장명, 이동한 날 및 구분, 이동농장 등의 ‘개체이력사항’을 입력해야 한다.
추가로 매월 돼지 사육현황도 신고해야 한다. 신고사항은 모돈·후보돈·웅돈·자돈·육성돈·비육돈·자돈의 출생 등 사육 마릿수와 자돈·육성돈·비육돈 등의 폐사 마릿수 등이다. 물론 의무사항이다. 사람의 주민등록증과 같은 귀표의 부착 및 관리만으로도 추가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데, 농장 상황 변화를 건건이 스마트폰 앱에 입력해야 한다. 모돈이력제인지, 돼지사육 현황 신고제인지 구분이 안 된다. 
농식품부는 “모돈 개체별 관리를 체계화하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한다. 또 “모돈과 후보돈에 귀표를 부착해 관리하면 개체식별이 쉽고, 성적에 따라 종돈장 평가도 가능해진다”며 “분양받은 모돈의 성적을 분석하면 개량 속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농장의 전산화는 필요하다. 그러나 농장수 만큼 다양한 현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정부 주도로 의무·강제적인 전산화 시행은 그 자체로 문제가 된다. 
한돈협회는 일방적인 모돈이력제 수용 불가 입장을 농식품부에 분명히 전달했다. 한돈협회는 “정부가 생산자단체 등과 일체의 사전 협의 없이 모돈이력제 도입을 추진한다”며 “수개월 동안 수차례에 걸쳐 정부에 현장의 어려운 상황을 전달하고 모돈이력제 대신 ‘양돈장 전산관리 확대’란 대안을 제시했지만 소 귀에 경 읽기다”라고 토로한다. 
농식품부 말처럼 모돈이력제가 농가의 생산성 향상 및 생산비 절감에 유익하다면, 한돈협회가 제시한 ‘양돈장 전산관리 확대’는 왜 수용할 수 없는지 이유가 궁금하다. ‘전산관리 확대’도 힘겨워하는 농장이 있을 수 있으나, 모돈이력제보다는 무리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농식품부가 강제로 밀어붙이는 모돈이력제 보다는 한돈협회가 대안으로 제시한 ‘전산관리 확대’ 수용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길 기대한다.
한돈협회가 건의한 ‘전산관리 확대’는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만큼 농가들의 자발적인 참여 또한 기대할 수 있다. 농식품부가 모돈이력제를 통해 얻고자 했던 돼지 수급·방역·생산성 관리에 한발 더 다가설 것이고, 농가는 귀표 부착·이력 신고 등 불필요한 업무를 줄일 수 있다.
한돈협회를 포함한 농축산단체들은 차기 농식품부 장관에게 원활한 ‘소통’을 갈급해 한다. 모돈이력제 뿐만 아니라 8대 방역시설 의무화, 적법 가설건축물 폐쇄, 정부 주도 낙농제도개선 등은 대표적인 불통의 상징이 됐다. 새로운 장관은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모돈이력제와 같은 우격다짐 농정 추진을 멈춰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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