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시민들은 개미처럼 열심히 살아간다. 열심히 주어진 역할을 하면서 공동체로 살아가기 때문에 신께서 미물인 개미에게도 길지 않는 생명을 부여 하였다. 여왕개미는 30년 이상 살 수도 있으며, 일개미는 1~3년 정도 산다. 그러나 수컷은 수명이 몇 주에 불과하다. 스님들이 가지고 다니는 지팡이를 주장자(柱杖子)라고 부른다. 이 주장자의 용도는 미물인 개미가 스님이 지팡이를 딛고 걸어갈 때 발에 밟히지 말고 피하라는 일종의 경종을 알리는 도구다. 불교에서는 살아있는 생명체를 죽이지 말라는 계명(誡命)이 첫 번째이다. 사람의 발에 개미가 밟혀 죽는다는 것은 개미의 입장에서 보면 끔찍한 일이다. 법구경(法句經·초기불교의 말씀을 엮은 책)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사람으로 태어나기가 어렵고, 태어나도 생명을 유지하기가 또한 어렵다. 세상에 부처님이 계시기 어렵고 부처님이 계셔도 그 가르침을 듣기가 또한 어렵다” 삶과 죽음이 동전의 양면과 같지만 죽음이 있기에 삶이 그만큼 값진 것이 아닐까.
우리는 언젠가는 세상을 하직해야 한다. 죽음에 대해 표현의 방식이 조금씩 다르다. 일반인들이 세상과 하직하는 것을 사망(死亡)이라고 하거나 혹은 세상을 마쳤다는 뜻의 졸(卒)로 표현하기도 하고 선비의 죽음을 불록(不祿) 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조정에서 주는 녹봉이 끊어졌다는 뜻이다. 황제의 죽음은 붕(崩)이라고 한다. 사회에 현저한 공훈을 남김으로써 국민의 추앙을 받는 사람의 죽음을 서거(逝去)라고 하고 서거에 준하는 인물이 현직에 있으면서 비공식으로 죽었을 때 유고(有故)라고 한다. 가톨릭에서 사제의 죽음을 선종(善終)이라고 하며 불교에서 스님의 죽음을 입적(入寂) 또는 열반(涅槃)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중국의 당나라 때 유명하신 보화스님의 입적에 관한 전설적인 얘기가 전해오고 있다. 보화스님은 임제 의현(臨濟義玄·?∼867)스님으로부터 관(棺) 하나를 선물 받았다. “내일 동문에서 죽겠다고 하고 동문(東門)에 가보니 사람이 너무 많이 몰려와 내일 서문(西門)에서 죽겠다고 하면서 관을 메고 떠나버렸다. 서문에서도 사람이 많이 모이자 오늘은 여기서 죽지 않고 내일 남문(南門)에서 죽겠다고 라고 하면서 떠났다. 다음 날 남문 밖에는 적은 수의 사람들이 나와 있었는데, 보화스님은 ‘오늘 여기서 죽지 않고 내일 북문(北門) 밖에서 죽겠다’고 하며 또 관을 메고 가버리자 사람들이 미친 중이 거짓말을 하여 사람을 속인다고 삿대질을 하며 분위기가 살벌하였다. 북문에서는 사람이 없자 지나가는 사람에게 관 뚜껑에 못을 밖아 달라고 했다.” 사람들이 몰려와 관을 열어보니 보화스님은 없고 공중에서 요령소리만 은은하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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