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경제신문 권민 기자] ‘작전에 실패한 장수는 용서할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장수는 용서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출처가 불분명한 이 말의 경중을 따지면 어느 것이 더 위중한 것인지 분분하지만, 이 말과 함께 농협에는 회자되는 말이 있다.
‘업무의 성패 여부와는 상관없이 의전(儀典)에 실패한 직원은 용서될 수 없다’는 말이다. 어떤 행사든 행사의 목적과 성과에는 상관없이 행사 의전에 실패하면 평가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구태 중의 구태다. 

 

자칫하면 허례허식


의전이란 행사를 치르는 일정한 법식, 또는 정하여진 방식에 따라 치르는 행사로 중요한 과정이다. 하지만 농협에서 말하는 의전이란 윗사람을 어떻게 모시느냐에 한정된 아주 소극적 해석이다. 
더구나 주변을 의식하지 않는 과잉되는 경우가 많아 이따금 주변의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하거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많은 지적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직원의 입장에서는 조직의 장(長)이 귀하고 소중하다는 의미로 진중하게 ‘모신다’는 생각이겠지만, 그러한 사고가 과해지면 허례(虛禮)가 되고 허식(虛飾)이 된다.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목표는 사라지고 모시는 행위가 주가 된다는 뜻이다. 
권위는 누군가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주위에서 치장해주고, 떠받든다고 해서 권위 있는 사람이 되지 않는다. 그 사람의 됨됨이, 공감능력, 솔선수범하는 자세 등등이 주변에 긍정적 바이러스를 전파하고 그 전염력의 강도에 따라 권위가 높아지고 낮아지는 것이다. 
과잉된 의전은 자칫 주변이 무시당하는 감정을 갖게 되거나, 의전을 받는 리더의 입장을 더욱 오히려 난처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또한 과잉된 의전을 용인하는 리더는, 직언하는 직원들을 배척하게 되고 듣기 좋은 소리에 취해 조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지금 해야 할 일의 선후도 혼동하게 된다. 
축산경제대표는 취임 직후 취임 인사차 여러 곳을 방문하고 있다. 하지만 직원들의 의전을 보고 있노라면 할 말을 잊게 만든다. 대표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 마음은 알듯도 하지만 너무 지나친 의전은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지금은 21세기다. 얼마전 비오는 날 무릎을 꿇고 장관에게 우산을 씌워주는 사진 한 장이 일파만파의 파장을 일으켰던 일이 있었다. 직장 갑질 이야기가 한동안 회자됐다. 
누가 욕을 먹었을까? 무릎을 꿇었던 직원이 아니다. 그렇게 지시했던 사람과 그것을 용인했던 장관이 결과적으로 국민들로부터 욕설을 들었다. 김병원 전 농협중앙회장이 당선되었을 때, ‘농업 대통령’이란 말을 썼다가 청와대를 비롯 각계로부터 뭇매를 맞고 순식간에 철회했다. 지금 농협도 왠만한 의전을 줄이려고 한다. 지금 때가 어느 땐가.
상(商)나라의 주왕(紂王)은 어린 시절에는 슬기로웠지만 달기라는 여인의 치마폭에 싸여 정사를 돌보지 않고 결국 나라를 멸망으로 이끌었다. 그에게는 숙부인 비간(比干)과 기자(箕子) 그리고 주왕의 이복형제인 미자(微子)가 있었다. 
이들은 충성스럽고 유능한 신하였으며 늘 주왕에게 달기를 멀리하고 나라를 돌보라고 간언했다. 하지만 주왕은 이들의 권고를 듣지 않고 비간을 죽이고, 미자를 쫒아냈으며 기자를 미치광이로 만들었다. 

 

이루고 싶은 목표는?


주왕이 즉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지혜로움과 용감함으로 명군이 될 것으로 믿었다. 그러던 어느 날 주왕은 정사를 논하고 난 후 상아 젓가락을 들고 와 대신들에게 자랑했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상아 젓가락의 아름다움을 신하들은 칭찬했다. 
기자만이 창백한 얼굴로 젓가락을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친한 대신 한 명이 후에 연유를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상아 젓가락을 쓴다면 질그릇에 국을 담아 먹지 않고 상아와 같거나 그보다 좋은 그릇을 쓸 것이네. 상아 젓가락, 옥그릇을 사용하면 콩잎으로 만든 국을 담지는 않을 것이고, 반드시 코끼리 고기나 표범의 태아 고기처럼 진귀한 고기를 찾을 것이네. 진귀한 고기를 먹으면 낡고 소박한 옷을 입으려 하지 않을 것이고, 비단 옷을 겹겹이 입고 궁중 궁궐을 지을 것이네. 
그러다 보면 사람들이 왕에게 불만을 품고 비난이 그치지 않을 것이나 왕이 그 불만을 듣고 가만히 있겠는가. 그것을 진압하기 위해 포악해질테니 어찌 두렵지 않을 수 있겠는가?”
기자의 말처럼 주왕은 사치를 일삼고 술로 못을 만들고 고기를 달아 숲을 만들었다. 주지육림(酒池肉林)의 고사다. 
농협 축산경제는 대한민국 축산업의 버팀목이고, 축산업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조직이다. 그래서 축산경제 대표의 자리가 어느 단체의 장보다 중요하다. 
초선조합들과의 인터뷰에서 항상 처음 묻는 말이 있다. “왜 조합장이 되려고 했나?”다. 이전처럼 막연히 “조합원들을 위해서”가 아니다. 구체적이고 실용적이다. 조합의 장단점을 꿰고 있다. 그만큼 자신들의 역할에 깊은 성찰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조합 발전을 이끌고 있다.  
이쯤에서 한 번 묻고 싶다. “그 막중한 축산경제대표의 자리에 왜 도전하게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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