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에서 벗어나자
편견에서 벗어나자
  • 권민 기자
  • 승인 2022.01.07 11: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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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산경제신문 권민 기자] 프레임의 법칙이 있다. 똑같은 상황이라도 어떠한 틀을 가지고 상황을 해석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행동이 달라진다는 법칙이다. 
언어학자인 조지 레이코프는 ‘특정한 언어와 연결되어 연상되는 사고의 체계’라고 정의했다. 우리가 듣고 말하고 생각할 때 우리 머릿속에는 프레임이 작동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무슨 말인지 설명 없이는 이해하기 좀 어렵다. 하지만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상대방 입장서 생각


미국 알래스카에서 실제 있었던 일이다. 젊은 아내가 아이를 낳다가 출혈이 심해 세상을 떠났다. 다행히 아이는 목숨을 건졌고, 홀로 남은 남자는 아이를 애지중지 키웠다. 
아이를 돌봐줄 유모를 구하려 노력했지만 쉽지 않아서 그는 유모 대신 훈련이 잘된 듬직한 개를 구해 아이를 돌보게 했다. 개는 생각보다 똑똑해서 남자는 안심하고 아이를 집에 둔 채로 외출도 할 수 있었다. 
어느날, 남자는 여느 때처럼 개에게 아이를 맡기고 잠시 집을 비우게 됐다. 그런데 뜻밖의 사정이 생겨 그날 늦게야 집에 돌아왔다. 허겁지겁 집으로 돌아온 그는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주인의 목소리를 들은 개가 꼬리를 흔들며 뛰어나왔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개의 온몸이 피투성이었다. 불길한 생각이 든 남자는 재빨리 방문을 열어보았다. 아이는 보이지 않았고 방바닥과 벽이 온통 핏자국으로 얼룩져 있었다. 남자는 극도로 흥분했다. 
“내가 없는 사이에 아들을 물어 죽였구나.” 이렇게 생각한 남자는 즉시 총을 꺼내 개를 쏴 죽였다. 바로 그 순간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화들짝 놀란 남자가 방으로 들어가 보니 침대 구석에 쪼그려 앉은 아이가 울먹이며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당황한 남자는 밖으로 뛰쳐나와 죽은 개를 살펴보았다. 개의 다리에 맹수에게 물린 이빨 자국이 선명했다. 곧이어 남자는 뒤뜰에서 개한테 물려 죽은 늑대의 시체를 발견했다. 
“오, 맙소사!” 남자는 자신의 아이를 지키기 위해 늑대와 혈투를 벌인, 충직한 개를 자기 손으로 쏴 죽였던 것이다.
인도의 시인 타고르의 집 마당을 쓰는 하인이 어느날 세 시간 넘게 지각을 했다. 화가 머리 끝까지 난 타고르는 해고해야겠다고 작정했다. 세 시간이 지난 후 허겁지겁 달려온 하인에게 빗자루를 던지며 말했다. 
“당신은 해고야. 빨리 집에서 나가!”
그러자 하인은 빗자루를 들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어젯밤에 딸아이가 죽어서 아침에 묻고 오는 길입니다.”
타고르는 그 말을 듣고 인간이 자신의 입장만 생각했을 때,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배웠다고 했다. 이처럼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사람에 대해 화가 나고 미움이 생길 때는 잠시 상대방의 입장에서 조금이라도 생각해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시골의 시장통을 지나가는 한 버스에는 늘 꽉찬 승객들로 북적였다. 한참을 달리는 버스 안에서 갑자기 아이의 울음소리가 울려퍼졌다. 잠시 후에는 그치겠지 했지만 아이의 울음소리는 세 정거장을 거쳐 올 때까지도 그칠 기미가 없었다. 
피곤에 지쳐 있던 승객들은 슬슬 화가 나자 여기저기서 “아줌마, 애기 좀 달래봐요.” “버스 전세냈나.” “이봐요, 아줌마 내려서 택시타고 가요.” “여러 사람 짜증나게 하지 말고, 아 정말.” 등등 별의별 험담이 이어졌다. 

 

더불어 사는 삶이란


버스 안의 분위기가 원성으로 가득찼을 때, 갑자기 차가 멈춰섰다. 다들 의아한 표정으로 버스 기사만 바라보고 있는데, 그는 일어서서 문을 열고 나가서는 무엇인가를 사들고 다시 버스에 올랐다. 
그리고는 성큼성큼 아이 엄마에게로 다가간 버스기사는 긴 막대사탕의 비닐을 벗겨 아이 입에 물려주니 그제서야 아이는 울음을 그쳤다. 다시 버스는 출발을 했고 버스 안의 승객들은 조용히 자신의 일에 열중하게 됐다.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야 하는 아이 엄마는 버스기사에게 다가와 고개를 숙이며 손등에 다른 한 손을 세워보였다. “고맙습니다”라는 수화로 고마움을 표시한 것이다. 아이엄마는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청각 장애인이었던 것이다. 
아이엄마가 내린뒤 버스기사는 아주머니와 아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차량의 불빛을 멀리 비추어 주고 있었어도 이번에는 누구 하나 “빨리 갑시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지속 가능’이라는 말은 축산업에서만 통용되는 말이 아니다. ESG경영이라는 개념도 사실은 최근에 유행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예전부터 역지사지(易地思之)에 대해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어왔다. 단지 실천하지 못했을 뿐이다. 
‘상생’ 역시 마찬가지다. 함께 살아가는 ‘더불어’의 삶은 자기 자신의 고정관념에서 나오는 선입견과 편견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자기중심적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사회는 불협화음에 빠지고 혼란스러운 것이다. 
함께 사는 법을 배울 때 가장 필요한 건 상대방이 되어 보는 것이다. “저 사람에게는 뭔가 타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야.” 또는 “저 사람의 마음은 지금 얼마나 힘들까?”라는 마음가짐이 무엇보다 중요한 때다. 
새해에는 잘못했던 지난해와 다른, 오늘은 그릇된 어제와 차별을 두는 것, 그것이 바로 삶을 살아가는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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