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경제신문 권민 기자] 일본의 마쓰시타 전기 창업주이며 ‘경영의 신’으로 불리던 고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 幸之助)는, 자신이 기업가로 크게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하느님이 주신 3가지 덕분이라고 했다. 
“몹시 가난해서 어릴 때부터 구두닦이‧신문팔이를 하면서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었고, 태어났을 때부터 몸이 매우 약해 항상 운동에 힘써 왔으며, 초등학교도 못 다녔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다 스승으로 여기고 열심히 배우는 일에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태만은 행복을 파괴


그는 직원들에게 수시로 “감옥과 수도원의 차이가 있다면 불평을 하느냐, 감사를 하느냐 하는 것 뿐”이라고 강조했다. 감옥도 감사를 하면 수도원일 될 수 있다면서 긍정적으로 사고할 것을 주문했다. 
마쓰시타 회장은 노사협조‧인재 중시‧종신 고용 등 일본 제조업 전성기를 꽃피웠던 이른바 ‘일본형 경영’의 창시자다. 
그는 부친의 사업실패로 9살 때 학교를 중퇴하고 박봉의 견습사원으로 일하다, 1918년 24세 나이에 자본금 100엔으로 쌍소켓을 제조하는 마쓰시타 전기를 창업했다. 1년에 절반은 누워 있어야 할 정도로 약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독자적 경영이념과 수완으로 급성장을 거듭했다. 
1989년 95세로 사망할 때 그의 회사는 내셔널과 파나소닉 브랜드로 세계 시장을 주름잡는 종업원  13만 명의 세계 20위 다국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는 일본에서 1000년 간 가장 위대한 경제인으로 추앙받고 있다. 
임인년(壬寅年) 새해 ‘검은 호랑이의 해’를 맞았다. 매일 신새벽 동해에 떠오르는 태양이지만 1월 1일의 태양은 또 다른 의미다. 다시 시작을 알리는 출발 종소리와 같다. 지난해 힘겨운 또는 고통스럽던 시간을 보냈다면 이번 해에는 좀 더 나아지리라 믿는다.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코로나 블루’라는 우울증의 증상들이 사회 문제로 등장했고, 세계 각국들이 국경의 빗장을 걸어 잠그고, 사회적 거리두기, 물류와 인력의 유동이 막히면서 전 인류의 모든 시스템이 꼬이자 여기저기 그 후유증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상황이다. 
코로나 사태는 모든 부문에 엄청난 고통을 안겨준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한 비대면 사업은 한쪽의 고통 이상으로 큰 희망을 보여줬다. 같은 사태에서 빛과 그림자가 극명하게 드러났다는 의미다.
이것은 위기가 곧 기회라는 사실을 확연히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다. 또한 점진적으로 시간을 두고 변화해 오던 시대의 흐름을 급격하게 바꿔놓았음을 의미한다. 변화에 대비했던 부문은 그에 맞는 성장을, 그렇지 않은 부문은 몰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게 됐다. 
20세기 대표적인 역사학자인 영국의 아놀드 토인비는 오만과 태만은 행복의 파괴자라고 했다. 소수의 성공자가 과거의 성공에 심취해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고 교만해지면, 올바른 균형감각과 판단력을 잃어버린 채 결국 몰락한다고 했다. 그는 바로 그 현상을 ‘휴브리스’라고 했다. 
그는 “사람이 늙으면서 과거에 붙들려 있으면 불행할 뿐만 아니라 미래에 대해 눈을 뜨지 않으려는 약한 마음도 생긴다”고 했다. 과거의 사람은 몸이 죽기 전 이미 죽은 사람이며, 희망을 품고 미래를 보는 용기가 사람을 젊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긍적적 삶 필요한 때


과거를 기억해야 하는 단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과거의 실패를 초석으로 삼아 미래를 희망으로 이끄는 것, 그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말했다. 
탈무드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인간의 몸에는 여섯 개의 소용되는 부분이 있다. 그중에서 셋은 자신이 지배할 수 없지만, 셋은 자신의 힘으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앞의 셋은 눈과 귀와 코이고, 뒤의 셋은 입과 손과 발이다.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볼 수 있고, 듣고 싶은 말만 골라 들을 수 없다. 맡고 싶은 냄새만 선택해 맡을 수도 없는 것이다. 
과거는 해석에 따라 바뀌고, 미래는 결정에 따라 바뀌며, 현재는 지금 행동하기에 따라 바뀐다고 했다. 그러나 바뀌지 않기로 고집하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의미다.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을 하얀 백지라고 한다. 순백의 종이 위에 처음 무엇인가를 쓸 때의 마음은 누구에게나 경건하다. 선듯 붓이 나아가지 않는다. 첫 선을 첫 글자를 어떻게 적느냐에 따라 순백의 종이는 명화나 명필이 될 수도 있고, 전혀 가치 없는 휴지가 될 수도 있다. 
때문에 우리는 순백의 종이 앞에서 과거보다 미래를 생각할 수밖에 없고, 과거 잘못에 대한 반성과 그것을 바탕으로 보다 나은 미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는 삶이 아니다. 
아무리 힘에 겨운 삶을 살고 있다고 해도 삶을 포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차피 살아가야 할 수밖에 없다면 부정적인 삶보다는 긍정적인 삶이 훨씬 나은 일이다. 누구에게나 장점은 있게 마련이다. 
‘내가 살고 있는 오늘은, 어제 누군가가 그렇게 살고 싶어 했던 내일이었다’는 말이 있다. 그 절실한 희망의 시간을 우리는 지금 아무렇지도 않게 살고 있다는 것을, 새해 신새벽에 새기고 또 새겨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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