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경제신문 권민 기자] IBM은 1993년 81억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적자를 떠안고 파산의 위기에 봉착했다. 퍼스널컴퓨터의 기반 기술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마이크로소프트에게 막대한 운영체계 시장을 넘겨주고, 명령축약형(RISC)칩 개념을 처음 발명했지만 워크스테이션의 기능성을 무시했다. 

 

이념만으로는 불가능


또 기업 고객을 대상으로 통합적인 IT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기술적 기반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과거의 성공을 이끌었던 메인프레임 판매에만 집착했다. 바로 ‘성공의 함정’에 빠졌던 것이다. 
이때 구원투수로 나선 루 거스너는 위기의 IBM을 절묘하게 회생시켰다. 그가 분석한 위기의 원인은 IBM의 기업 전략이 아니었다. 문제는 ‘내가 어떻게 그것을 실행해 나가느냐’는 것이었다.
협동조합의 역할과 가치가 무엇인지를 줄기차게 직원들의 머릿속에 심어넣기 위해 교육체계를 새로 정립하고, 순차적으로 직원들을 그곳으로 몰아넣는 방식은 리더의 20세기 교육방식일 뿐이다. 
그렇게 열성적으로 주입한 방식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작금의 협동조합은, 역할과 가치를 현실화 시키지 못한 결과물이다. 이념이 철저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잘못된 진단은, 주입식이라는 잘못된 처방을 내릴 수밖에 없다. 이는 자유로운 토론이 전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농협의 문제점은 농협 내부 직원들이 이미 알고 있다. 때문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도 가지고 있다. 문제는 내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집행부나 임원들의 고리타분함이고, 경직된 사고방식과 인사시스템이다. 
농협의 시스템을 개편하거나 개혁의 기치를 내세우면서 매년 외부 기관에 용역을 주고 사업의 평가에 대한 최종보고서를 받아드는 것이 객관적인 평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결과보고서가 정말 정확한 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을 뿐만 아니라 정작 수백 페이지의 사업 성과 분석 역시 이미 내부적으로 공감하고 있는 것이라면 농협이 부르짖는 상생과 직원들과의 소통의 현주소가 얼마나 형편없는 것인지 보여준다.  
대다수 기업들이 초기에는 높은 성장률을 구가하다가 한 번 이상 주춤하는 시기를 겪는다. 이는 소수의 창업자 그룹들이 회사를 이끌어오면서 세웠던 ‘전략 관행’ 즉 제품 개발, 마케팅, 영업 생산 등 전반에 걸쳐 커저버린 몸에 더 이상 맞지 않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생명체는 이런 한계에 다다르면 자연선택 과정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이전과 다른 형태로의 진화를 시도한다. 가령 생존을 위해 몸집이 커져야 한다면 그에 맞는 뼈와 근육을 제대로 된 형태로 갖추는 것이다. 
기업 역시 나이가 들수록 자기파괴적인 혁신을 의도적으로 추구함으로써 옛 전략으로 회귀하려는 관성을 떼고 미래를 위한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 기업이 노쇠했다는 말은 진화를 거부하고 도태의 길을 택했다는 의미다. 
지금 농협 축산경제의 모습이다. 말은 소통이고 혁신이며, 지향점은 ‘지속 가능’이지만 하는 행동은 단지 ‘생존 유지’를 위한 몸부림일 뿐이다. 유지하는 것이 곧 도태라는 점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빈약한 경영의 결과물


이것은 나의 역할이 어떤 가치를 발현하는 지에 대한 자기 성찰이 없는 결과다. 그저 주어진 일에만 정해진 사내 규칙만 따르면 회사의 경영이 어떻든 삶이 보장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어느 사립학교에서 있었던 일화다. 학교 이사회는 한 달 중 하루를 ‘잔반 없는 날’로 운영하겠다고 방침을 정했다. 문제의 발단은 잔반 없는 날이면 퇴식구의 잔반 수거통을 치워버린 것에서 시작됐다. 
처음 시행하던 날 마침 반찬으로 나온 음식이 생선이었다. 한 학생이 “선생님, 뼈는 어떻게 할까요?”라고 선생에 물었다. 뼈까지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생선뼈라도 버려지는 광경을 이사장에게 보이면 꾸중을 듣거나 자신의 인사고과에 반영되는 것이 두려웠던 선생은, 고심 끝에 검은 비닐봉지를 구해와 학생들에게 뼈를 버리게 하고는 몰래 학교 밖으로 봉투를 가지고 나가 처리했다. 
후에 알려진 이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는 용납되지 않는 권위가 조직의 융통성을 해치고 그로 인해 창의성까지 메마르게 만든다는 점을 단적을 보여주는 촌극이다. 
우리는 그 교사를 무작정 꼬집고 비꼬면 안되는 것이, 제왕적인 리더 한 사람이 모든 의사결정을 휘어잡는 조직에서는 모두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리더의 말에 순응하게 하는 것이 개인의 입장에서는 유리한 생존전략이기 때문이다. 
사소한 직언조차 하지 못하는 조직은 겉으로는 평온하고 별 문제 없어 보이지만, 조직의 발전을 위해 과감하게 의견을 개진하기보다는 그저 개인의 안위를 위해 목소리를 줄이고 개인의 직무 범위 내로 행동반경을 국한시키려는 조직은 외부 환경이 비우호적으로 변하자마자 빠르게 도태될 것이 뻔하다. 
지금 농협 축산경제의 현주소다. 리더만 대한민국의 축산업을 대표하고 기반을 지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축산경제 내 직원들과는 전혀 다른 세계에 살아가고 있다. 
도대체 이런 괴리감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리더의 경영 철학이 빈약한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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