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아 갈 때 가슴 뭉클한 얘기를 듣거나 글을 읽게 되면 감동하게 되고 그분은 어떻게 그런 생각을 갖게 되었으며 어떻게 실천했을까 하고 한없이 경외 스러워진다. 
김밥 장사로 평생 모은 전 재산을 기부하고 장애인을 위해 봉사한 박 춘자(92) 할머니의 가슴 따뜻한 얘기를 공유해 보고자 한다.
박 할머니는 15살 무렵부터 50여 년간 매일 경기도 광주 소재 남한산성 길목에서 등산객들에게 김밥을 팔아 모은 전 재산 6억 3천만 원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과 장애인 거주시설 ‘성남 작은 예수의 집’에 기부했다. 또한 박 할머니는 40여 년간 장애인을 위한 봉사활동도 이어왔다. 
60대에 김밥 장사를 그만둔 후에는 지적 장애인 11명을 집으로 데려와 20여 년간 돌봤으며 박 할머니는 2021년 5월부터는 거주하던 월셋집 보증금 중 일부인 2천만 원까지 기부한 후 한 복지지설로 옮겨 생활하고 계신다. 
박 할머니는 돌아가신 후 남게 되는 재산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기부하겠다는 내용의 녹화 유언도 남겼다고 한다. 할머니께서는 “남을 도울 때 가장 즐겁고, 장애인들을 도울 땐 있던 걱정도 싹 사라진다”고 말씀 하신 것을 보면 아마도 천사가 아닌가 하는 마음이 앞선다. 
억척스럽게 모은 소중한 돈을 차세대 어린이들과 장애인들에게 아낌없이 기부하여 그들이 밝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주신 할머니의 가없는 사랑은 존경받아 마땅하다.
지금으로부터 5백 년 전 조선시대 퇴계 이황(1501~1570년) 선생의 인간적인 얘기도 고개를 절로 숙이지 않을 수 없다. 
이황선생은 아내 복이 없었다. 21세에 허씨 부인과 결혼하지만 27세에 사별하고, 재혼한 권씨 부인은 정신질환을 심하게 앓는 사람이어서 평생 이황을 힘들게 했다고 한다. 이런 기구함 때문이었을까. 
이황은 삶을 이해하는 폭이 넓고 깊었다. 이황은 한마디로 너무도 인간적인 사람이었다. 항상 타자(他者)에 대한 배려를 강조하신 분이다. 
둘째 아들이 일찍 죽자 청상과부가 된 며느리가 안쓰러웠던 이황은 사돈댁에 재혼을 허락하는 편지를 보냈다. 당시 풍토에서는 매우 파격적인 일이다. 
또한 갓 태어난 증손자가 젖이 부족한 일이 있었다. 집안사람들은 마침 아이를 낳은 하녀를 보내 젖을 먹이려고 했다. 그러자 이황은 “내 자식 살리겠다고 남의 자식을 굶겨 죽일 수는 없다”며 이를 만류했다. 
인간은 연민과 사랑의 정이 없다면 아마도 인류의 생존은 불가능할 것이다. 할머니와 이황선생은 성자(聖者)다.

저작권자 © 축산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