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안 벨트 AI 반복…‘예방’ 위주 정책 절실

발생농장 중심 동그라미 식
사후대책 살처분 능사 아냐
백신정책 병행 피해 최소화
바이러스 확산 사전 저지를

한국엔 항원뱅크 이미 구축
몇 시간 내 백신 생산 가능
효과 입증 가격도 부담 없어
과거 뉴캐슬병 근절 경험도

AI 감염 사망자는 아주 적고
여러 종 혼재사육 경우 해당
백신정책 ‘상재화’와는 무관
정책 수립 현장 의견 반영을

윤종웅 한국가금수의사회장

가금 전문가들은 살처분의 여파가 큰 만큼 예방백신 접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윤종웅 회장.

[축산경제신문 김기슬 기자] 대한민국이 고병원성 AI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난 2003년부터 현재까지 총 8회의 고병원성 AI가 발생했고 2년간 지속되는 양상을 보여왔다. 특히 서해안 벨트를 따라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등에 반복 발생하는 경향을 나타냄에 따라 해당지역 농가들의 피로도가 높으며, 살처분의 여파로 계란값이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등 밥상물가까지 뒤흔들고 있는 실정이다.

대한민국 가금산업의 미래를 위해 가축방역은 어떠한 방향으로 가야 할까. 

윤종웅 가금수의사회장으로부터 가금업계 방역에 대한 견해를 일문일답식으로 들어봤다. 

 

- 겨울철 반복 발생하는 고병원성 AI로 가금업계의 피해가 큰데, 정부는 살처분 정책만 고수하고 있다. 이에 대한 생각은.

한국은 중국과 같은 철새 이동경로에 있다. 이에 따라 겨울철새를 통해 매년 AI 바이러스가 유입돼 서해안 벨트를 타고 전국으로 확산되는 양상이 수년간 반복돼왔다. 향후에도 이같은 패턴이 되풀이될 것으로 판단된다.

살처분 등 ‘사후 대책’이 아닌 ‘예방 대책’이 필요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겨울철마다 AI가 발생한다고 가정할 경우 살처분으로 확산을 막는 사후 대책보다 사전 예방이 시급하다.

아울러 발생농장을 중심으로 동그라미를 쳐 논 18세기식 살처분 방역을 고집해선 안 된다. 지금은 차량으로 하루 안에 어느 곳이든 갈 수 있는 시대인 만큼 역학적으로 주변농장이 꼭 더 위험하다고도 할 수 없다. 21세기인 만큼 가금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을 틀어야 한다.

 

- 그렇다면 그 대책은 무엇인가.

AI 백신 정책을 실시해야 한다. 백신정책은 살처분과 병행하며 피해를 최소화하고 바이러스 확산을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코로나19와 비교하면 이해가 쉽다. 아무리 방역을 잘하더라도 코로나 바이러스를 막을 수 없는 것처럼 고병원성 AI도 차단방역만으론 방어할 수 없다. 또한 백신을 맞고도 드물게 코로나에 감염될 수 있지만 증상이 경미한 수준으로 넘어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고병원성 AI 역시 백신을 접종하더라도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 있고 증상도 나타날 수 있지만 바이러스 배출량이 극적으로 줄어들고 아주 일부만 전파된다. 

때문에 백신접종 후 AI에 감염된다손 치더라도 지금처럼 반경 몇 km씩 예방적 살처분을 실시하지 않고 예찰을 통해 감염된 농가만 도려내면 된다.  

반복 발생지역인 경기도만이라도 AI 백신접종을 시범 실시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 이미 한국엔 항원뱅크가 구축돼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항원뱅크란 백신을 만들기 전에 바이러스만 증식해 보관한 상태를 말한다. 여기에 적당량의 보조제를 넣어 병에 포장하면 몇 시간 안에 백신을 생산할 수 있다. 항원뱅크용 고병원성 AI 바이러스는 어떤 바이러스가 유행할지, 피해가 큰지를 선택해 국내 대형 가금단지에 2회 접종할만한 규모의 백신을 비축한다.

최근 검역본부에서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이미 한국에 만들어둔 고병원성 AI 백신에 대한 효능을 평가한 결과, 현재 준비된 백신과 유행하는 바이러스 타입이 일치할 경우 닭들을 100% 살릴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약간 다른 형태의 바이러스가 발생할지라도 60~80% 수준을 방어할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게다가 비용적 측면에서 보더라도 살처분에 의한 비용은 마리당 1만 원인 반면 백신은 200원 수준에 불과해 백신이 50배 정도의 경제적 이익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한국은 과거 뉴캐슬병이 전국적으로 유행했을 당시에도 백신접종을 통해 이 병을 근절한 경험이 있다. 백신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을 갖을 필요가 없단 얘기다. 

 

- AI 바이러스 변이로 인체감염을 우려하는 이들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WHO에 따르면 2018년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매년 120만 명이 에이즈로 사망한다. 결핵은 150만 명, 말라리라는 450만5000명으로 추산된다. 아시아에서 개에 물려 광견병으로 죽는 사람도 5만 명에 달한다.

반면 고병원성 AI에 직접 감염돼 사망했다고 보고된 사람은 전 세계 누적 기준 1500명도 안 된다. 2003년 이후 1500여 명이라면 1년에 전 세계에서 100명이 사망한 셈으로, 개에 물려 죽을 확률보다도 낮다.

게다가 실제 사람의 발병은 인도네시아, 이집트, 베트남, 중국 등 몇 개의 국가에 국한된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도 코로나 바이러스만큼 변이가 잘 일어나지만 바이러스가 스스로 진화하기보단 다른 종류의 인플루엔자가 한 몸에 섞여 유전자 정보교환을 통해 변이된다. 이같은 변이가 생기는 조건은 다른 종의 동물이 혼재된 경우다. 

오리와 닭, 돼지와 닭 등이 함께 사육되는 환경에서 일어날 확률이 높다. 인체감염이 있는 나라들이 대부분 개발도상국이라는 점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한국의 상황은 이와 전혀 다르다. 

 

- AI 백신 접종시 임상증상이 잘 발현되지 않아 의심축 신고가 지연되거나 상재화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는데.

감시계를 사용해 백신접종 농장에 대해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실시하면 된다. 

감시계는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1% 정도의 닭을 일부러 백신을 접종하지 않고 별도로 사육하는 것인데, 바이러스 침입시 감시계에게 먼저 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의심축 검색이 쉽다. 또한 감시계와 백신을 접종한 닭에서 주기적으로 혈액 샘플을 검사하면 바이러스 특성과 이동한 흔적 등도 찾을 수 있다.

특히 백신접종시 AI 발생농장만 살처분하면 되기 때문에 살처분 범위를 대폭 줄일 수 있어 정교한 방역도 가능하다.

아울러 백신 정책 때문에 바이러스가 상재화된 나라는 없다. 이같은 사실은 세계농업기구 보고서에도 명시돼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최근 정부가 도입한 산란계농가 질병관리등급제는 위험한 발상이다. 살처분 권한의 칼자루를 농가에게 넘기는 것으로 이는 정부의 책임 떠넘기기로 보여진다.

아무리 차단방역을 잘 하더라도 바이러스 유입량이 많으면 결국 주변농가에서 AI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는 아무리 마스크를 잘 쓰더라도 코로나에 걸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또한 AI 방역정책 수립시 현장수의사의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 정부나 지자체의 가축방역관이나 역학조사관들도 모두 수의사지만 현장의 실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있다. 고병원성 AI에 제대로 대처하려면 현장 경험이 풍부한 가금 임상수의사의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아울러 18세기식 살처분 방역에만 의존하는 프레임에서 이제 벗어나길 바란다. 예방 백신이 첫 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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