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경제신문 권민 기자] 자기중심의 좁은 생각에 집착하여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입장을 고려하지 아니하고 자기만을 내세우는 것을 아집(我執)이라고 한다. 세상은 급격하게 변화하는데 변화에 대응하려 하지 않고 고집스럽게 버티는 형국도 아집이다. 
이러한 형국이 발생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안주(安住)하는 자세이고, 이는 지금의 편안함을 계속 유지하려는 기득권에서 나온다. 기득권을 쥐고 내려놓지 않으려는 아등바등거리는 기득권층의 추악함은 더 나은 사회로의 진일보를 끝내 막는다. 

 

국민을 종으로 생각


소상공인들은 코로나 장기화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로 폐업조차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살려달라고 울부짖고, 농축산인들은 환경을 빌미로 생업을 접어야 하는 상황에, 물가안정 차원이라는 핑계로 다시 희생을 요구받아 악에 바친 분노를 폭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와 진보를 부르짖는 양 정당은 지금 차기 정권을 잡기 위해 진흙탕 싸움에서 벗어날줄 모른다. 현 정부에서 호가호위하던 고위공직자들이 너도 나도 대통령이 되겠다고 정치판에 뛰어들고, 그들의 여론 평가에 따라 편을 가르는 정치꾼들이 속출한다. 
진보를 표방했던 정당은 서로 밀고 있는 대통령 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들에 빌붙어 과거의 흑색선전으로 서로를 헐뜯는다. 그러는 사이, 죽어나가는 것은 국민들이요, 농민들이다. 도대체 이들은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저속한 행위를 계속하는 것일까?
“국민을 위한다”는 정치인치고 국민을 등치지 않는 이들이 없고, “국민의 공복(公僕)”이라고 떠드는 공무원치고 국민을 종처럼 부리지 않는 이가 없다. “내가 살아보니 이렇더라”고 조언하는 나이든 사람치고 정말 그렇게 살아온 사람도 없다. 
과거에 집착하며 “해보니 안되더라”며 공정한 사회로 나아가고자 하는 후대들의 길을 막거나, “아프니까 젊음”이라며 현재 고통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라고 한다. 한 차원 위로 올라갈 사다리는 자신들이 걷어차버리고 한다는 말이다. 
정말 후대를 위하고 자신의 일에 성의와 열성을 가진 사람들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자신의 일에 집중하기에도 빠듯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우리는 왜 이럴까?
태극기를 흔들며 광화문 광장에 모인 이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나는 살만큼 살았지만 후대는 이렇게 살면 안된다”고. “그래서 정권을 바꿔야 한다”고. 하지만 젊은 세대는 말한다. “우리가 살아야 할 시대를 왜 당신들이 결정하느냐”고 말이다. 
정치권력은 정권을 잡으려고, 기성언론은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고 여론을 호도하고, 세대 간, 성별 갈등을 조장한다. 그리고 많은 국민들이 그렇게 만들어진 ‘개소리’에 속아 넘어간다. 플리처 상을 수상한 영국 저널리스트의 <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나?>에 잘 나와 있다. 
프랑스 사회에 ‘분노 신드롬’을 일으킨 스테판 에셀은, 레지스탕스 투사이자, 외교관을 지낸 후 인권과 환경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면서 프랑스가 처한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국민들에게 ‘분노하라’고 호소했다. 
그는 전후 프랑스 민주주의의 토대가 된 레지스탕스 정신이 반세기만에 무너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무관심이야말로 최악의 태도이며 인권을 위해 힘써 싸워야 한다면서, 분노하는 정신이 바로 레지스탕스의 정신이었다고 일갈한다. 
20세기의 정신으로 21세기를 살고 있으면서도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행태에 대해 여러 번 글을 써왔지만 쓰면 쓸수록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가슴에 뭔가가 짓눌려오는 듯하다. 

 

이제 그만 물러나야


중국의 속담에 ‘장강 후랑 최전랑(長江 後浪 催前浪)’이란 말이 있다. 장강은 양쯔강을 말한다.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낸다’는 말이다. 옛사람은 가고, 새로운 사람이 온다는 것으로, 이전 시대는 가고 새로운 시대가 도래한다는 뜻이다. 
아무리 밀려나지 않으려고 애쓴들 세월이 지나면 덧없다. 막을 수가 없는 것이다. 버티는 모습 자체가 애처롭고 불쌍하기까지 하다. 
혹자는 당랑거철(螳螂拒轍), 즉 ‘수레바퀴를 막아선 사마귀’를, <회남자>에 나오는 이야기로 예를 들어 사마귀의 용감무쌍함으로 해석한다. 나아갈 줄만 알고 물러설 줄 모르며 제 힘은 생각하지 않고 한결같이 적에 대항하는 용감한 곤충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장자(莊子)>에서는 분수도 모르고 덤벼,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릴 뿐만 아니라 전체를 망치는 무모함으로 표현한다. 
변화하는 시대에 대응하지 못해 한 순간에 최고의 자리에서 최악의 나락으로 떨어진 세계 굴지의 기업들은 그것을 잘 보여준다. 세계 휴대폰시장을 장악했던 핀란드의 노키아가 그랬고, 필름시장을 석권했던 코닥이 그러한 잔상들의 좋은 예다. 
노키아의 CEO를 비롯한 임원진들은 당시 성공에 안주해 새로운 제품 만들기에 게을렀고, 코닥은 디지털 시대를 예상해 제품을 개발하고도 상황을 오판해 써보지도 못했다. 이는 시대에 맞는 사고방식과 시대정신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직 자신의 영달을 위하면서 “후대를 위하여”라는 말에 더 이상 후대는 속지 않는다. 세대 간의 갈등은 여기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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