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원형(○)임에도 네모(□)형태로 믿고 있는 사람이 아직도 미국에는 많다고 하니 가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우주의 모든 행성이 동그란 원형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인류가 문자와 숫자를 발명하여 상호 소통의 도구로 이롭게 사용해 오는 것이 인류의 발전을 가져온 원동력임을 부인할 수 없다. 
1~9까지는 누구나 숫자로 표현이 가능하나 ‘아무것도 없다’는 ‘영(○)’은 표현이 어렵다. 
특히 숫자를 가지고 의사전달을 하는 과정에서 없다는 표시를 ‘영(○)개 가지고 있다’고 하면 이상하다. 사과를 2개 가지고 있다가 2개를 다 먹었다고 할 때 보통 하나도 없다고 말하지 굳이 ‘영(○)개 밖에 없다’고는 말하지는 않는다. 
수학과 천문학이 발달했던 고대 그리스에서는 ‘영(○)’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리스인들은 아무 것도 없는 상태인 ‘무(無)’와 ‘영(○)’이 같다고 여겨 ‘영(○)’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지금으로부터 2300년경 그리스의 위대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세상의 모든 것은 신이 완벽하게 창조한 산물이라고 주장하면서, 진공(眞空)은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그리스인들은 아무것도 없는 것을 뜻하는 ‘영(○)’마저 거부했다. 
우리는 공기가 없으면 진공 상태라고 부르지만,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를 진공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진공과 ‘영(○)’을 인정하면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무신론과 이어졌다. 
따라서 진공을 인정하지 않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이 그리스의 사상을 지배했다. 
기원전(紀元前) 오늘날 이라크지역의 바빌로니아 인들은 혼동을 피하기 위해 ‘영(○)’의 사용을 권장했다. 그러나 ‘영(○)이라는 수’에 더욱 깊고 중요한 의미가 담겨져 있었고 그로부터 수세기가 지난 뒤에야 인도(印度)인들에 의해 발견되었다. 인도의 수학자들은 ‘영(○)’이 숫자들을 구별하는 기능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고유한 수임을 알았다. 1과 2가 고유한 수인 것과 마찬가지로, ‘영(○)’ 역시 엄연한 수로서 존재한다. 
즉 ‘아무것도 없음(○)’을 나타내는 수(數)인 것이다. 이전까지는 전혀 구체화시킬 수 없었던 무(無)의 개념은 ‘영(○)’의 등장과 함께 비로소 실제적인 기호로 표현할 수 있었다. 무(無·○)라는 숫자는 컴퓨터 자판 1~9의 맨 뒤에 홀로 자리를 의연하게 지키고 있다. 천하의 만물은 있음으로부터 생겨나고, 있음은 없음(○)으로부터 생겨난다. 노자의 말씀이다. ‘영(○)’은 없음(○)이 있음을 뒷받침하는 소중한 숫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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