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되는 사슴산업…회생할 방법 없나?
방치되는 사슴산업…회생할 방법 없나?
  • 이국열 기자
  • 승인 2021.06.18 09: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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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기능제품 봇물… 녹용, 구시대 유물 홀대

우리 민족 대표적 보양식
집집마다 보이던 ‘약탕기’
자취 없고 추억으로 기억
건강기능 제품 시장 주도

가치 여전히 인정 받지만
한·뉴질랜드 FTA 체결로
관세 장벽 풀리자 우르르
가격 열세로 도산 잇따라

면역력 강화 급속 부상 속
비중 큰 방문판매 찬바람
초고령화·영농지원은 없고
업계 차원 자구노력 한계
위기의 사슴산업 보호·육성을 위한 장기적인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

 

[축산경제신문 이국열 기자] 국내 사슴산업이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리며 존폐의 기로에 놓였다.

웰빙열풍이 불던 2000년대 초까지 호황을 누리던 사슴산업은 이제 옛말이 됐다.

전체 사육마릿수가 16만 마리에 육박했던 과거에 비해 2만6000여 마리로 급감했고, 사육농가수도 10분지 1로 줄어든 1600여 농가에 머물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업계의 여러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혹자들은 ‘녹용’은 이제 구시대의 유물과도 같은 존재로 소비자들이 더 이상 찾지 않으니 도태되는 것은 자연스런 경제현상이라고도 한다.

예전에 집집마다 보이던 그 많던 약탕기가 이제는 보기 힘들어진 것처럼 말이다.

과연 현 사슴산업의 위기가 단지 시대적 흐름일 뿐이라 말할 수 있을까?

 

# 녹용 가치 인정받고 있어

녹용은 녹혈과 더불어 우리민족의 대표적인 으뜸가는 보양식으로 여겨져왔다.

기운을 북돋는 자양강장의 대명사였던 녹용은 귀하디귀한 만큼 쉬이 복용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특별한 날이나 가족이 아플 때 하루 종일 쪼그려 앉아 약탕기를 매만지던 어머니들의 온정이 담긴 문화였다.

이랬던 녹용한방문화가 어느 샌가 자취를 감추면서 추억으로만 남겨지고 있다.  

이 시대엔 수많은 건강기능식품이 녹용의 자리를 대체해 고급이미지는 더 이상 녹용만의 전유물이 아니게 됐다. 

소비자들도 손쉽게 먹을 수 있는 건강기능식품을 원하면서 비타민, 미네랄, 오메가3 등 다양한 제품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시대적 흐름에 따른 자연스런 소비감소로 귀결되는 게 맞다.  

그러나 수천 년 간 민족의 건강을 책임진 녹용은 우리들 DNA에 깊숙이 각인돼 있다.

유명 건강기능식품제조회사에서는 여전히 녹용제품을 내놓고 있고, 한약방에서도 녹용을 지속해서 사용하고 있다. 시대가 변해도 녹용의 가치는 인정받고 있으며 여전히 녹용을 귀하게 여기는 소비자들은 많아 소비에는 큰 무리가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국내 사슴산업은 해마다 빠르게 축소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 한국·뉴질랜드 FTA로 직격탄 맞아

사슴산업은 지난 2015년 체결한 한국·뉴질랜드 FTA 협정으로 직격탄을 맞았다.

한국·뉴질랜드 FTA 협정은 국내 기업의 고품질 자동차, 가전 등 공산품 수출엔 호재로 작용했으나 업계에게는 재앙으로 다가왔다. 저렴한 뉴질랜드산 녹용이 관세도 낮아지자 빠르게 국내 녹용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며 전체 수입녹용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FTA 협정 후 2015년부터 녹용 149톤이 수입됐으며 이 수치는 계속 늘어나 2020년에는 200톤에 육박했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녹용 중 국내산 녹용의 비율은 20%에도 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앞서 언급한 유명 건강기능식품제조회사와 한약방, 홈쇼핑 등에서는 뉴질랜드산을 비롯한 수입녹용만을 유통해 국내산 녹용의 판로가 막혔다. 

비록 한국양토양록농협에서 수매를 하고 있다지만 국내산 녹용을 전부 소화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수입녹용과의 치열한 경쟁으로 판매도 난관에 부딪쳤다. 

국내산 녹용은 뉴질랜드산 녹용에 비해 품질이 훨씬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사슴농가들은 녹용만 전문적으로 생산하기 위해 사슴을 사육하고 있지만 뉴질랜드에서는 고기용 혹은 수렵용으로 사슴을 사육하고 있어 녹용은 어찌 보면 부산물에 가깝다.

때문에 가격은 저렴한 반면 품질이 고르지 못해 약용으로 사용하기 부적합한 경우도 있다.

한 사슴농가는 “사계절이 뚜렷한 국내에서 자란 사슴의 녹용은 품질이 탁월하지만 시장에서는 수입산 녹용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며 “국내산 녹용에 대한 아무런 보호 대책이 없는 가운데 체결된 FTA 협정이 국내 사슴산업 위기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 코로나19로 녹용 쌓여 

한국·뉴질랜드 FTA 협정 이후 지난 몇 년간 국내 사슴산업은 황폐해졌다.

이런 와중에 코로나19는 사슴산업을 더욱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코로나19는 면역력 강화제품 등 건강과 관련된 산업을 약진시켰지만 녹용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국내 사슴농가들에게 방문판매는 녹용 유통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

버스를 대절해 소비자들은 직접 사슴농장에 방문해 녹용을 절각하는 것을 보며 녹중탕을 구매했던 것이 코로나19로 모임 자체가 안 돼 사슴농가들의 녹용은 쌓여만 간다.

5월부터 7월까지 절각을 하는데, 이때가 녹용이 판매되는 1년 중 가장 중요한 시기임에도 농장을 방문하는 손님들의 종적을 찾기가 힘들다. 

생산비에도 훨씬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고, 코로나19가 언제 종식될지 알 수 없다는 불안감에 축종 전환을 시도하는 농가들도 있어 사슴산업의 전망을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사슴산업은 다른 축산업 중에서도 유독 고령인구가 많고 사슴후계자 영농지원도 없어 무방비 상태나 마찬가지다”라며 “농가수도 점점 줄어들어 앞으로 사슴산업의 맥이 끊길까 걱정된다”며 불안감을 호소했다.

 

# 정부 정책지원과 관심 요구돼

“지속 가능한 사슴산업을 위해 정부의 정책지원과 애정 어린 관심을 간곡히 희망한다.”

난국을 타개하려는 정부의 의지가 절실하다고 농가들은 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다.

녹용 소비를 늘리려면 녹중탕 말고도 다양한 가공품을 소비자들에게 선보이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러나 농가들은 사육부터 가공·유통·판매까지 모든 과정을 도맡아 운영하고 있어 힘에 겨운 게 현실이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녹용 소비 확대를 위한 가공품 개발에 적극 나서주길 원하고 있지만 변변한 정부 산하 사슴 관련 연구기관도 없다.  

위태로운 국내 사슴산업과 농가들을 보호하기 위해선 현실을 반영한 장기적인 정부 지원이 요구된다. 예컨대 정부에서 녹용을 일정부분 수매해 주거나 가격 폭락이 심한 사슴에 대한 가격 안정제를 정착시키면 농가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

한 사슴농가는 “농가가 살려면 대단위로 녹용 유통이 활성화돼야 하는데 국내산 녹용은 구조적으로 막혀있어 답답하다”며 “한국인삼공사는 1년에 녹용을 180~200톤 정도 수입한다. 이중 3~5%만이라도 국내산 녹용을 사용해 준다면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일 텐데 뉴질랜드산만 사용하고 있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이어 “사슴결핵병에 의한 살처분 보상도 현 60%선은 턱없이 모자란 수준”이라며 “숫자 놀음이 아닌 현실에 맞는 보상책을 강구해 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 국내산 녹용 우수성과 효능 알려

사슴산업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한국사슴협회도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올해부터 ‘국내산 녹용 고부가가치 개발사업’을 위해 국비 5억5000만 원을 확보, 2023년까지 추진한다.

이번 개발사업을 통해 국내산 녹용의 우수성과 효능을 알려 소비촉진 발판을 마련하고, 맛과 건강을 충족시킬 수 있는 다양한 가공품을 개발해 선보일 계획이다.

아울러 다음 달에는 ‘제29회 우수사슴 선발대회’를 개최해 국내 사슴산업 홍보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농가가 주축으로 결성된 ‘한국사슴개량연구회’도 힘을 보탠다.

국내 사슴농가 모임 중 가장 규모가 큰 한국사슴개량연구회는 사슴사육 기술을 공유하기 위해 밴드를 만들어 SNS로 절각 기술을 알려주는 등 농가 간 소통에 앞장설 예정이다.

상대적으로 신규농가 진입이 어려웠던 사슴산업이 현장의 오랜 경험이 축적된 사양기술 전파로 사슴농가 대중화도 기대되고 있다.

사슴협회 관계자는 “업계 구성원 모두가 사슴산업이 절체절명의 위기라는 것을 공감하고 있고 해결책 모색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다”며 “우리 농가들이 고품질 녹용을 생산해 수입산과의 경쟁력에서 우위에 서야겠지만 한계가 명확한 것도 사실이다”고 밝혔다.

정부가 위태로운 사슴산업을 더 이상 방치하지 말고, 녹용유통의 구조적 문제 해결과 장기적인 관점에서 농가에 대한 지원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국내 사슴산업을 보호·육성하는 지름길이라고 모든 관계자들은 전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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