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경제신문 권민 기자] 유엔 인권위원회 식량특별조사관을 역임했고 줄곧 세계의 기아 문제를 연구해 온 소르본 대학교 사회학 교수 장 지글러는, 기아가 절대적 ‘결핍’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유럽의 역사를 보면 중세에 농노나 자유농민, 도시민,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이 수백만 명이나 굶어죽었다. 19세기 때도 중국, 아프리카, 러시아, 오스만 제국 등에서도 수십만 명이 굶어죽었다. 

 

문제 핵심은 사회 구조


그러다가 19세기 후반 산업혁명으로 생산성이 눈부시게 향상돼 오늘날에는 19세기 같은 ‘물질적 결핍’이 사라지게 되었다. 하지만 벌써 사라졌어야 할 기아문제는 아직도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문제의 핵심은 사회구조에 있다. 식량 자체는 풍부하게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그것을 확보할 경제적 수단이 없어 식량이 불공평하게 분배되는 바람에 매년 수백만의 인구가 굶어 죽고 있다고 지적한다. 
때문에 기아가 개발도상국의 문제만이 아니라 부유한 나라에서조차도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는 그 예로 천연자원이 풍부한 나라인 러시아와 아프리카 콩고 등을 들었다. 
러시아는 세계적으로 금, 우라늄, 석유, 천연가스 생산을 선도하고 있고, 군사력 면에서는 세계 2위다. 콩고의 경우 역시 중요한 지하자원을 보유한 나라지만 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곡물을 수출하고 있는 브라질 역시 수많은 사람들이 기아로 허덕이며 하루 1달러의 빈곤선에 서 있다. 그 원인은 육식을 하는 식생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살인적인 금융과두제가 모든 중요한 물품을 독점하고 있는 사회적 상황 때문이다. 
영양실조로 팔다리가 비쩍 마른 아이를 안고 있는 인도 벵골이나 소말리아, 수단의 엄마들이 그 아이들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울부짖는 것은 육식에 대한 원망이 아니다. 착취적 정치‧경제 제도이며, 빈부 격차에 대한 차별이다. 
‘육식이 기아의 원인’이라는 너무 과장된 프레임은 전 세계에서 수확하는 옥수수의 4분의 1을 소들이 먹고 있고, 선진국에서는 고기를 너무 많이 먹어 영양과잉 질병으로 사망하는 사람들이 많은 반면 다른 많은 나라의 사람들이 영양실조로 굶어죽고 있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양쪽의 상황을 비교하면서 이를 인과관계로 엮는 것은 무리한 주장이다. 정말 가축들이 먹어대는 곡물 때문에 사람들이 먹을 곡물이 부족한 것일까? 그것은 반쪽짜리의 진실일 뿐이다. 
세계시장에서 거래되는 거의 모든 농산품 가격이 투기의 영향을 받는다. 시카고 곡물거래소가 바로 그 장소다. 몇몇 금융 자본가들이 좌지우지하면서 국제 곡물 시세를 결정한다. 
스위스의 앙드레SA, 미국의 컨티넨털 그레인, 카길 인터내셔널, 프랑스의 루이 드레퓌스 등의 곡물메이저들이다. 
장 지글러는 선진 지역인 유럽을 포함한 어느 나라도 정규 수업시간에 전쟁보다 더 많은 목숨을 앗아가는 기아에 대해 가르치는 학교가 있다는 소릴 들어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아에 대해 왜곡하고, 기아를 유발하는 정치‧제도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관료의 생각은 달라야


‘육식이 기아를 유발한다’는 이러한 주장은 그러한 연유로 쉽게 축산업을 ‘악한 산업’으로 낙인을 찍을 수 있는 것이다. 학창시절에 모호한 이상이나 현실과 동떨어진 인간애를 가지고 졸업을 하면 정작 기아를 초래하는 구체적인 원인과 그 끔찍한 결과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사실에 대해 진실과 허위를 구분하거나 주장하기 위해서는 과학적 근거, 그것도 긍정과 부정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함께 보는 과정을 겪어야 한다. 개인적 경험이나 직관에 따라 판단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게다가 정보나 지식이 어떻게 생산되었는지 그 과정을 의심하고 살펴보는 자세를 견지해야 하며, 충분한 근거가 제시될 때까지 판단을 보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릇된 판단으로 예기치 못한 결과를 낳게 된다. 
식량이 남아돌아도 기아가 발생해 영양실조로 사망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육식의 탓으로 돌리면 정작 기아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축산식품을 직접 생산하는 농가들의 불이익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육식을 터부시 하고 축산업을 규제함으로써 국내 축산업의 규모를 축소시키고도, 기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육식에 대한 오해는 풀릴지 모르지만 다시 축산업을 회복시키는 데는 더 많은 시간과 자금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특히 일반 개인이 갖는 생각과 주장은 자유라고 하지만 이를 토대로 정책을 수립하는 정부 관료의 입장에서는 반드시 체득해야 할 본질적인 자세다. 성찰하지 못한 정책은 일반 시민의 실수와는 비교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산업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이 피해자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고, 그들의 가족과 생활 자체가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책상에서 긋는 선 하나가 현장에서는 강력한 장벽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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