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경제신문 권민 기자] 퇴근 무렵 선배가 찾아왔다. 그날따라 형색이 영 말이 아니었다. 얼굴은 평소보다 검고 몸에 힘이 하나도 없어보였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아무렇지도 않더니 어디 아프냐” 했더니 대답 대신 서 있기도 힘이 드는지 의자에 털썩 앉는다.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아 대답을 채근했다. “응? 아, 병원에 갔더니 채독증이래.” “뭔 채독증이요?” “그러게나 말이다.” 그는 혀를 찼다.  

 

과도한 채식 毒 되어


채독증(菜毒症)은 신선한 무잎이나 배추와 같은 풋채소를 생식하는 사람에게 볼 수 있는 질환이다. 그 질환을 가만히 생각해보니 걸릴 만 했다. 
그는 복 애호가였다. 하루에 두 번도 더 갈 정도로 복지리, 복매운탕을 좋아했다. 평소 복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잦은 만남은 항상 복집이었다. 그런데 그를 따라 복집에 가면서, 그가 복을 좋아하는지 아니면 복지리에 넣어주는 미나리를 좋아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복이 익기 전에 넣어주는 미나리를 무지막지하게 먹었다. 물론 미나리가 몸에 좋다는 이유에서다. 미나리는 각종 비타민이나 몸에 좋은 무기질과 섬유질이 풍부해 알칼리성 식품으로 해독과 혈액을 정화시키는 데 좋은 효과를 가지고 있는 알칼리성 식품이다. 
동의보감에서도 미나리는 갈증을 풀어주고, 머리를 맑게 해 주며, 주독을 제거할 뿐만 아니라 음주 후의 두통이나 구토에 효과적이며, 삶아서 혹은 날로 먹으면 좋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 이유로 현대인들에게는 해독과 중금속 정화작용에 좋은 건강채소로 사랑받고 있고, 간의 활동에 도움을 주어 피로회복에도 효능이 좋다고 되어 있다. 고혈압은 물론이고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 경감 효과가 있어 심혈관 질환에 효과적이어서 정신도 맑아지는 식품이라고 극찬을 받고 있다. 
하지만 좋은 것도 ‘과하면’ 독이 된다는 것을 그 선배가 입증하고 있다. 극단적 채식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채식도, 그들이 주장하는 육식의 부정적인 면과 다를 바가 없다. 육식이 온갖 질병을 유발하듯이 채식도 그렇다. ‘과하면’ 말이다. 
육식의 비윤리성을 강조하기 위해 무리하게 전개하는 ‘질병 유발론’은 같은 잣대로 채식에도 적용해야 균형에 맞는 주장이 된다. 편향된 식습관이나 편향된 사고방식은 그 자체가 건강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은, 육식 찬양이든 채식 찬양이든 관계가 없다. 
채식이 몸에 좋아서 그동안의 온갖 질병들로 고생하던 사람이 섭식 방법을 바꿔서 치료됐다는 사례가 있듯이, 채식 위주의 식단으로 바꿨다가 오히려 병을 키운 사례는 얼마든지 많다. 체질에 따라 다를 수도 있고, 식습관의 차이가 다른 결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오빌 셸이라는 저널리스트가 그의 저서 <현대의 고기>에서 푸에르토리코에서 의사 카멘 샌즈와의 인터뷰를 실으면서 고기가 얼마나 위험한(?) 식품인지 지적했다. 그 예를 보면 끔찍하다.  
카멘 샌즈가 말한다. “초경을 일찍 시작하는 어린 환자의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고 나 자신도 가끔씩 보와 왔습니다. 그런데 1980년이 되자 이런 증상으로 병원을 찾아오는 아이들이 날마다 한두 명씩 꼬박꼬박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보이는 증상으로 볼 때 어떤 종류의 에스트로겐에 오염되어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육류가 무슨 죄라고


에스트로겐(estrogen)은 스테로이드 호르몬의 하나로 모든 척추동물에서 생합성되며, 특히 여성에게 매우 중요한 호르몬으로 알려져 있다. 
이 호르몬은 여성의 성적 발달과 성장에 꼭 필요한 대표적인 성 호르몬이다. 특히 사춘기에 접어든 여성의 2차 성징을 유도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빌 셸이 그녀에게 그 증상을 설명해 달라고 부탁했더니, 그녀는 그에게 사진을 몇 장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사진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셀은, 그녀의 얼굴에 나타난 분노와 비애, 그리고 결의에 찬 표정을 보았다고 했다. 
네 살짜리 아이가 거의 완전히 성숙한 가슴을 하고 있는 모습, 12살 짜리 소년에 붙어 있는  큰 가슴, 1살 여아가 부풀어 오른 가슴을 하고 고무젖꼭지를 빨고 있는 모습, 그 외에 글로 설명하기 힘든 끔찍한 모습들의 사진이었다. 
푸에르토리코 아동들에게서 성적으로 조기 성숙하는 현상이 만연하고 있는 이유는, 푸에르토리코에서는 가축에 대한 호르몬제 사용 관련 규제가 미국에서만큼 그렇게 잘 시행되지 않는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이러한 예들이 육류가 몸에 나쁘고, 온갖 질병을 야기한다는 증거는 될 수 없다. 이러한 예들은 보통 채식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육류의 부정적인 면이 아니라 가축을 돈으로 생각하는 부도덕한 업자들의 탐욕에서 비롯된 것들이기 때문이다. 
문제의 초점은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인 업자들이지 육류 자체가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호르몬제제의 사용을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게다가 가축을 키우는 농가들의 전근대적인 의식을 잣대로, 현재 축산농가를 평가하는 것은 ‘기저효과’다. 
현재의 시점을 평가하기 위해 비교의 기준으로 삼는 시점을 의도함으로써 지금도 그렇다는 착시현상을 갖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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