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경제신문 권민 기자] 다시 2004년 대형 쓰나미로 250여만 명의 어민들이 삶의 터전을 잃은 스리랑카로 돌아가보자. 환경을 오염시키고 냄새 공해를 야기한다며 대대로 생업에 종사해온 어민들을 눈에 가시로 여긴 정부의 재건 정책이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를 살펴보면 말문이 막힌다.
스리랑카뿐만 아니라 태국과 인도네시아에서 절망에 몸부림치는 어민들, 익사한 어린아이를 부여잡고, 혹은 바다로 쓸려나간 자식들의 이름을 부르며 울부짖는 부모들이 방송에 나간 후, 국제사회에서는 놀라운 온정의 손길이 쏟아졌다. 

 

정부 재건서 벗어나

 

하지만 정작 이들 정부의 재건 사업은 재건이란 이름으로 거주민의 문화와 생활터전을 고의적으로 파괴하면서 땅을 빼앗아가는 과정이었다. 희생자들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착취당한 사람들을 다시 착취하는 수단이었다. 
스리랑카 정부는 물론 미국 개발처를 비롯한 해외 투자가들에게 이런 재난은, 아직 개발되지 않은 천혜의 자연을 자랑하는 이 지역을 관광산업으로 변모시킬 절호의 투자처로 밖에 인식되지 않았다. 
스리랑카 정부가 ‘해변자원개발계획’을 암암리에 수립한 후 이를 추진하기 위해 관광산업위원회를 설립하자, 미국 개발처USAID는 스리랑카의 최고급 관광 명소의 잠재성, 리조트 체인점, 관광 운영시설 투자에 열정적이었다. 
스리랑카 정부를 비롯 많은 글로벌 투자전략 그룹들은 세계 투자가들에게 ‘플루토노미Plutonomy’에 투자하라고 치열한 자본 유치경쟁을 벌였다. 
플루토노미란 부호계급을 의미하는 플루토크라토(Plutocrat)와 경제(Economy)를 합성한 단어로, 억만장자들인 소수 부자들의 영향력이 큰 경제를 의미한다. 
분쟁이 심했던 여러 종교의 갈등은 이제 부호들의 관광산업을 활성화시킬 좋은 계기가 됐다. 불교의 스님들은 명상센터를 운영하고, 힌두교 여성들은 호텔에서 형형색색의 춤을 선보이며, ‘아유르베다’라는 고대 힌두교의 건강관리법으로 이들의 힐링을 돕고, 클리닉은 번뇌와 고통을 줄여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글로벌 경제의 영향으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인 부호들의 휴식에, 하루 평균 숙박비 400달러를 내는 호화로운 호텔들의 비용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렇게 최고급 호텔을 유지하려면 정부는 국가 소유였던 토지의 개인 소유를 막는 걸림돌을 제거해야 했고, 투자자들이 리조트 직원들을 통제하기 위해서 더 유연한 노동법도 필요했다. 
최근 우리에게도 가성비가 높고 그 어느 곳보다 휴식을 취하기에 안성맞춤으로 알려진 스리랑카 관광산업이 자리를 잡게 된 배경이 바로, 그것에 살고 있던 가난한 어민들을 모두 몰아낸 결과물이다. 
하지만 거의 같은 피해를 입었던 태국의 일부 지역에서는 완전히 다른 양상을 띄었다. 태국도 스리랑카와 마찬가지로 마을 수십 곳이 쓰나미에 휩쓸렸다. 그러나 스리랑카와 달리 일부 마을에서는 몇 달 만에 성공적으로 복구했다. 
이런 차이는 정부의 주도적 재건정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태국 정부와 정치인들도 재난을 구실 삼아 어민들을 쫓아내고 토지 소유권을 대형 리조트에 넘기려 했다. 다른 곳과의 차이점은 바로 태국 주민들이 정부의 약속을 처음부터 의구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다는 점이다. 

 

재난 극복 모범 사례

 


피난캠프로 쫓겨가 공식적인 정부의 재건 계획을 기다리지 않았다. 대신 수주 만에 수백 명이 자신이 살던 지역으로, 손에 장비를 들고 몰려들어 리조트 개발업자들이 고용한 무장 경비원을 뚫고 원래의 터전에 영역 표시를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들은 처음부터 국가가 자신들에게 토지를 돌려줄 것이라는 환상을 품지 않았다. 그렇게 땅을 점유한 상태에서 토지 소유권 협상을 벌였다. 동냥물품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복구에 필요한 도구들을 요구했다. 
그들의 열렬한 생존권 투쟁이 알려지자 대학의 건축과 교수와 학생들이 자원봉사로 참여해 새로운 집을 디자인하고 재건 계획을 짜도록 도움을 주었다. 이런 도움 속에서 더욱 정교한 어선과 집을 직접 만들 수 있었고, 지역사회는 예전보다 훨씬 더 튼튼해졌다. 
스스로 재해를 극복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공통된 주제를 이야기한다고 이를 심층 취재한 저널리스트인 나오미 클라인은 말한다. 건물만 보수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치유했다는 것이다. 재난이라는 큰 충격을 겪으면 사람들은 무기력함을 느끼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여기서 벗어나는 것은 복구에 참여할 권리를 얻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ASF나 AI 발생으로 정부가 무차별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예방적 살처분을 당한 농가들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정부의 이러한 정책들이 정작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알 수가 없기에 더더욱 그렇다. 
국민을 위한 것인지, 축산농가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행정적 편의 때문인지 구별이 되질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에 대응해야 하는 방식은 확연하다. 그것은 이미 ASF 비상대책위원회의 재입식 기준마련, 총궐기대회, 천막농성, 차량시위 등 끈질긴 생존투쟁을 보여줬다. 농식품부의 처분만 바라보지 않고 조직적으로 권리를 주장해 첫 확진 후 1년 2개월 만에 재입식을 시작한 것은 앞으로 재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 지를 정확히 보여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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