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경제신문 권민 기자] 2004년 12월 26일, 스리랑카 연안의 여러 해변들은 가장 파괴적이었던 자연 재해 쓰나미가 닥쳐 25만 명의 생명을 앗아가고 250만 명의 재해민을 낳았다. 그중 가장 심각한 타격을 입은 곳은 동부 해안의 ‘아루감’만이었다. 
이곳은 어업을 주로 하고 낡은 리조트들이 들어서 있는 곳이었고, 정부의 재건팀이 복구계획의 시범케이스로 지정한 곳이었다. 지역주민들은 수십 년 동안 이곳에서 지붕을 얹은 오두막에서 어업 시즌을 보낸다. 

 

냄새공해 표현 등장

 

호텔 앞에는 이곳에 머무르는 호주 및 유럽의 관광객들과도 쉽게 어울려 지냈다. 다채로운 전통 생활양식을 가진 어부들은 현지 모습을 좋아하는 여행객들이 원하는 토속적인 풍경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소박한 해먹이 드리워져 있고, 야자수에 설치된 스피커에서는 런던 클럽 뮤직이 흘러나왔고, 레스토랑은 보트에서 잡은 생선들을 사들였다. 오랫동안 호텔과 어민들 사이에는 별 갈등이 없었다. 
스리랑카에서의 내전이 일시적으로 정지되면서 도로가 개방되자, 아루감 해변은 여행 가이드북들마다 차세대 푸켓이라고 소개되는 유명세를 치렀다. 날이 갈수록 해변은 붐비기 시작했다. 
천혜의 자연으로 여행객들이 몰리자 호텔 소유주들은 해변가에 즐비한 오두막들이 경관을 해치고 썩어가는 생선의 악취가 고객들을 쫓는다고 불평을 하기 시작했다. ‘냄새 공해’라는 표현도 이때 등장했다. 
일부 호텔업자들은 보트와 오두막을 외국인들이 찾지 않는 다른 곳으로 옮겨달라고 정부에 로비하기도 했다. 하지만 주민들에게는 수세대에 걸쳐 살아온 삶의 터전으로, 단순한 보트 정박지 이상의 의미가 있는 곳이었다. 
게다가 이곳은 그들에게 신선한 물과 전기, 자녀들의 학교, 잡은 생선을 사주는 구매자가 있는 곳이었다. 양측의 갈등은 쓰나미가 있기 6개월 전부터 폭발했다. 한밤중에 누군가의 방화로 보트 24척이 불에 타는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그런 와중에 쓰나미가 화재로도 해결하지 못한 갈등을 해소했다. 하루아침에 해변의 모든 것을 쓸어가버렸던 것이다. 관광객용 오두막과 방갈로뿐만 아니라 보트와 어업용 오두막까지 모조리 사라졌다. 인구 4000명의 지역사회에서 350명이 죽었다. 
한편 폐허와 즐비한 시체더미에서 관광산업이 새롭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일하는 사람들로 붐비던 어수선한 곳이 모두 사라진 고적한 해안은 휴가를 즐기기 딱좋은 에덴동산으로 바뀐 것이다. 해안 어디나 마찬가지였다. 폐허더미가 사라지자 남은 것은 호텔업자들의 천국이었다. 
급박했던 상황이 진정되자 어민들은 예전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경찰들은 새로 집을 짖지 못하게 막았다. 새로운 규정이 생겼다는 것이다. 규정에 따르면 해변에는 더 이상 집을 지을 수 없었다. 최고 수위선으로부터 최소한 수백 미터 떨어진 곳에 지어야 했다. 
하지만 그곳에는 쓸만한 땅이 없었다. 어부들은 갈 곳이 없어졌다. 새롭게 규정된 완충지대는 아루감 해변뿐만 아니라 동부 해안 전체로 확산됐다. 이제 해변은 어민들에게는 출입금지 지역이 되었다.  
어민들은 식품 배급과 약간의 위로금을 받기 위해 수십만 명이 해변을 떠나 임시 캠프로 들어갔다. 그곳은 사람이 살만한 환경이 조성되지 않은 더럽고 질병이 들끓는 곳이었으며, 자동소총을 든 위협적인 군인들이 순찰을 도는 곳이었다. 

 

재난으로 전부 덮혀


공식적으로 정부는 완충지대가 안전조치라고 말했다. 또 다른 쓰나미가 올 것을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논리는 관광산업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오히려 호텔들은 어민들이 일하고 거주했던 해변 쪽으로 확장하고 있었다. 완충지대에서 면제된 것이다. 
쓰나미의 피해는 모두 해안 안쪽에 위치했던 어민들의 몫이었지만, 해변의 땅을 재건축한 뒤, 해안마을에서 고급 부티크 여행명소로 탈바꿈 시키겠다는 것이 정부의 계획이었다. 정부의 해안자원개발계획이라는 문서에 보면, 5성급 리조트, 하루에 300달러에 달하는 호화로운 생태계 관광별장, 수상비행기 부두, 헬기 선착장이 들어선다. 이러한 설계에서 해안에 거주하며 일했던 쓰나미의 희생자들인 어민들은 모두 제외됐다. 
줄곧 현대의 자본주의를 재난 자본주의로 규정해오고 있는 저널리스트이자 사회운동자인 나오미 클라인은,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으로 인한 국민들과 또는 그로 인해 피해를 입는 약자들 간의 갈등이 재앙 수준의 재난이 닥치며 혼란스러워 지면, 정부의 갈등을 야기하는 정책이 쉽게 통과된다고 지적했다. 
스리랑카의 예뿐만이 아니다. 하지만 이 한 예를 놓고 봐도 ASF‧AI 등 해외악성가축전염병으로 혼란스러운 축산업을 대하는 정부의 일방적 방역정책이 자연스럽게 연상된다. 
무차별 살처분 방역정책이 국회의원, 전문가를 비롯 축산인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까지로 확산되자 내놓은 ‘성공작’이라는 강변은 자화자찬에 불과하다. 오히려 자신만 옳다는 ‘발악적’ 주장이다. 
온전한 정신이라면 발생 건수만 늘어놓고 숫자가 적으니 대확산 시기보다 잘하고 있다고 주장하기에 앞서 성한 가금들을 무차별로 생매장하고 그로 인해 피해를 입은 축산농가들에게 사과하는 것이 먼저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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