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경제신문 권민 기자] 금융자유화의 사전적 의미는 자금의 조달과 운용에 제한을 거의 두지 않고 취급하는 것, 은행의 업무 영역을 확대하는 것, 무역‧외환‧자본과 용역에 관한 업무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평범한 일반인으로서는 이해하기 쉬운 말이 아니다. 하지만 알고 나면 아주 간단하다. ‘돈의 흐름을 자유화한다’는 말이다. 그냥 돈이 흘러 다니는 대로 놔주라는 뜻이다. CPTPP(포괄적 점진적 환태평양동반자협정)의 ‘금융과 외국인 투자 규제 완화‧이동 자유화’와 일맥상통한다. 

 

돈의 흐름 놔두라고?


금융감독원은 금융자유화에 따른 자본시장의 개방이, 외국인 투자자금의 유입 등으로 우리나라가 세계 경제 11위권의 대국으로 성장하는 기반을 만들었다고 선전한다. 정말 그럴까? 우리의 삶은 정말 나아진 걸까?
세계 경제 석학들은 “아시아 경제위기, 멕시코 페소화 위기, 닷컴 붕괴,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수십 년에 한 번 일어날까말까 한 대형 금융위기가 몇 년 마다 발생하는 것이 돈의 흐름을 제어하지 않는 데서 비롯됐다”고 일관된 평가를 내리고 있다. 
우리는 그러한 교훈을 멀리 볼 필요도 없고, 타국의 예를 들을 필요도 없다. 우리는 이미 1997년 말 IMF 사태를 몸소 겪어왔다. 금융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 고통을 수반하는지 너무 잘 알고 있다. 
도덕적 가치를 표면상으로 중요하게 여겨왔던 지난날 한국 사회에서는 ‘황금보기를 돌 같이 알라’고 배워왔지만 실상 돈이라는 것은, 아무런 감정도 없고 이윤이 창출되는 곳이면 어디로든지 흘러간다.
경제적 자유화는 민주적 자유화와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후자가 평등하고 협동하고 상생하는 것에 가치를 두고 있다면, 전자는 갈등하고 대립하고 불평등의 결과를 초래한다. 
정말 정부와 대기업들이 말하는 금융자유화, 시장 개방이 사회를 윤택하게 만들고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인 것일까? 그래서 금융 자유화 초기 1997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우리가 IMF 사태를 겪어야 했는지’ 한 번 찾아봤다.
1997년 여름, 이때까지 경제적 건강함과 활력의 표본이었으며, 세계화의 생생한 성공담을 만들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온 아시아 호랑이들이 전면적인 침체에 빠졌다. 달러 대 이들 국가의 통화가 폭락을 거듭했다. 
금융 위기가 닥치자 TV와 신문에서는 정체불명의 질병이 아시아를 습격한 듯 보도하기 시작했다. 이런 시장 붕괴는 ‘아시아 독감’이라는 명칭을 얻었다. 남미와 러시아로 확산되자 ‘아시아 전염병’으로 업그레이드 됐다. 
자신들의 고객들에게 아시아에 대한 투자가 돈을 버는 확실한 길이라고 말해왔던 주식 중매인들이, 떼로 몰려와 이번에는 아시아에서 자금을 빼갔다. 
태국에서 시작된 공포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으로 확산되어 자금 이탈이 가속화됐고, 세계 11번째 규모의 경제권이자 세계화라는 눈부신 스타로 대접받던 대한민국도 소용돌이에 빠졌다. 
아시아 통화를 집중적으로 공략해오는 트레이더들의 공격을 막아내려고 이들 국가들이 안간힘을 썼지만 외환이라는 총알이 없었다. 해외에서도 대서특필했던 ‘금모으기 운동’도 이때 시작됐다. 금을 팔아 채무를 상환하자는 것이었다. 

 

IMF 위기의 시작


단 몇 주 만에 300만 명이 목걸이, 귀걸이, 스포츠 메달, 트로피, 결혼반지, 금으로 된 십자가 등등을 내놓았다. 이렇게 모인 금은 200여톤으로 세계 금값을 움직일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환율은 급전직하했다. 
위기는 자살로 이어졌다. 가정에는 평생 저축이 사라지고, 중소기업 수천 개가 문을 닫았다. 한국의 자살률은 1998년 50% 상승했다. 60세 이상의 연령대에서 가장 높았는데, 나이 든 부모들이 고생하는 자녀들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쇼크 독트린>의 저자 나오미 클라인은 당시 미국 재무부의 반응 등을 자세하게 서술했다. 
“아시아의 위기는 전형적인 공포의 악순환 때문이었다. 공포를 바로잡을 유일한 방안은 1994년 데킬라 위기 때 멕시코의 환율을 구했던 신속하고 단호하게 제공된 차관뿐이었다. 미국 재무부는 멕시코가 붕괴되지 않도록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아시아의 앞날엔 이러한 조치가 없었다. 오히려 영향력 있는 재정기관들은 한결 같이 단합된 목소리를 냈다. 아시아를 돕지 말라는 것이었다.
모건 스탠리는 IMF와 미국 재무부는 1930년대 대공황과 맞먹는 위기의 고통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어떤 조치도 취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그들은 지금 아시아에서 더욱 나쁜 소식이 들려오길 바랬다. 그래야 구조조정을 촉진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나오미 클라인은 아시아의 경제 성장이 자유무역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이야기는 허구라고 말했다. 이들 국가는 당시 보호주의적 정책을 유지하고 있었고, 국내 시장을 강화하면서 일본, 유럽, 북미의 많은 수입품들을 차단했으며, 경제 자유화국가들보다 더욱 공평하게 급성장했다고 분석했다. 
서구와 일본의 투자은행들과 다국적 기업들은 이런 상황이 항상 불만스러웠고, 이들은 급성장하는 아시아에 제한 없이 상품 팔기를 원했다고 말했다. IMF 위기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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