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경제신문 권민 기자] 농축산업계에는 새해 들어 또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들린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아직 추진도 하지 않은 ‘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가입 추진 소식이다. 
그런데 이것은 단지 솥뚜껑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가입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름도 복잡하고 긴 이 협정은 간단하게 설명하면 초대형의 FTA다. 그러니까 수입 압박으로 숨통이 조여든 농축산업의 입장에서는 질식사할 입장이다. 

 

농축산 안중에 없어


CPTPP는 일본 주도로 아시아‧태평양 11개국이 참여하는 협정으로 2018년 12월 30일 발효됐다. 기존에 미국과 일본이 주도했던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서 미국이 빠지면서 일본을 포함한 동남아시아‧태평양 11개국이 새롭게 추진한 경제동맹체다. 
참여국의 면면을 보면 일본, 캐나다, 호주, 브루나이, 싱가포르, 멕시코, 베트남, 뉴질랜드, 칠레, 페루, 말레이시아 등이다. 이미 출범한 협정에 우리나라가 후발주자로 가입할 경우 또 다시 농업 분야의 수입 자유화 빗장을 풀지 않을 수 없으므로 당연히 막대한 피해가 예상된다. 
주요 협정 내용만 놓고 봐도 뻔하다. 농수산물과 공산품 역내 관세 철폐, 데이터 거래 활성화,  금융·외국인 투자 규제 완화‧이동 자유화, 국유기업에 대한 보조금 등 지원 금지 등이다. 
회원국들 상당수가 축산물 주요 수출국인 데다, 협정 중에는 동식물 위생‧검역조치를 기존의 국가‧지역 단위에서 농장단위로 축소‧구획화 하고, 분쟁이 발생하면 180일 이내 신속하게 처리해야만 한다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축산관련단체들이 즉각 반발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정부는 2019년 스스로 WTO 농업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고, 2020년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에 서명한 데 이어, 새해 들자마자 CPTPP 가입을 검토하는 등 최근 3년 동안 농축산업의 무차별적 희생을 강요하고 있는 중이다. 
마치 자유화에 목이 맨 듯하다. 도대체 자유화가 뭘까? 경제 정책상으로 자유화는 규제완화와 거의 동일한 의미로 사용된다. 
신규ㆍ이종기업의 참여ㆍ퇴출 제한이나 가격설정 등에 관한 공적 규제를 완화하고, 경제적 가치의 배분을 시장의 경쟁원리에 맡기고자 하는 정책의 변경을 가리킨다. 자유화라는 개념을 더 크게 해석해 국가가 경제나 사회를 국제적으로 개방한다고 이해하는 경우도 있다. 
자유화는 이처럼 하나의 뜻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자유화와 협정 상대국이 알고 있는 자유화는 서로 개념도 범위도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나 한 걸까?
침체된 경제를 살리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이해하기보다, 농축산업계의 입장에서는 “해도 너무한다”고 반발하지 않을 수 없다. 한 산업이(아마도 농축산업계뿐만 아니라 이 협정으로 인해 피해를 입게 된 산업이 혜택 받을 산업보다 더 많을 것이지만) 입게 될 피해는 안중에도 없는 정부의 태도 때문이다. 

 

희생이 아니라 착취


FTA로 인한 피해에 고통을 분담하자는 차원에서 제기된 ‘이익공유제’가 흐지부지된 것은 둘째 치고, 코로나 사태로 생업을 잃게 된 수많은 자영업자와 중소기업 등의 고통을 함께 나누자며 제기된 ‘이익공유제’ 역시, 그 즉시 수혜기업의 반발로 대화조차 나눠지지 않는 현실이다. 
자유경제체제가 진행되면서 경제적 불평등, 빈부 격차의 골이 한층 깊어진 것은 우리가 줄곧 보아온 심각한 폐단이다. 경제적 자유는 민주주의와 동일한 개념은 아니다. 그것은 제3국이나 남미 지역에서의 상황을 제3자의 입장으로 체득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IMF를 겪으면서 뼈저리게 느낀 교훈이다. 
정부와 정치인들이 마치 ‘자신의 살을 베어 내주고, 상대의 뼈를 끊는다’는 육참골단(肉斬骨斷)의 정신으로 협상에 임한다고 결연해 하는 것은 말 그대로 ‘쇼’다. 지금 농축산업계 어느 누가 정부나 정치인들의 말을 믿을 수 있을까?
희생이란 어떤 사물이나 사람을 위해서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자신의 목숨, 재산, 명예 따위를 바치거나 버리는 이타적인 행위이지 강요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희생이 아니라 엄연한 착취다. 
아직도 시대착오적인 낙수효과를 염두에 두고 있는지는 몰라도 낙수효과는 자유경제 내에서는 이미 실패한 정책이다. 지금 정책으로 혜택을 입은 부류는 이전처럼 벌어들인 돈을 풀지 않는 시대다. 
애널리스트로 다수의 저술과 강연 등을 통해 ‘증권계의 미래학자’로 불리는 홍성국 씨는 저서 <수축사회>에서 “세상은 지금 역사상 최고 수준의 부채와 양극화로 더 이상 성장이 어려워져 과거 팽창사회와 정반대 환경이 고착됐다”면서 이러한 작금의 사회를 수축사회라고 했다. 
이러한 수축사회에서는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이기주의가 팽배해져 기업들은 더 이상 투자하려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수축사회를 강화하는 요인 중 하나가 바로 ‘세계화’라고 지적했다. 
도대체 이 같은 협정들은 누가 어떻게 구상하는 걸까? 또 무슨 권리로 농축산업을 온전한 산업으로 취급조차 하지 않는 걸까? 도대체 누구한테 따져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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