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해라, 저거해라. 사사건건 제가 하는 일이 아버지는 못마땅한 모양입니다. 열심히 일하다가 잠시 쉬면, 그새를 못 참고 게으르다고 혀를 차십니다. 그럴 꺼면 왜 도시에서 일하느니 내 농장에서 일하는 것이 좋다고 불러들이셨는지 참.”
“요즘 애들은 너무 쉽게 일을 하려고 하네요. 축사가 조금 망가져도 뭐가 잘못인지 모르고, 제 몸이 힘들다고 사람을 사서 고치고. 지 애비는 날씨만 조금 춥거나 더워도 축사의 가축들이 괜찮은지 수시로 들락거리는데…기본이 안된 것 같아요. 조금이라도 땀 흘릴 생각은 안하고 새로운 기계를 설치할 생각뿐이네요. 참.”

 

이론과 실제의 차이


아들은 아버지의 꾸지람에 불만이 쌓여가고, 아버지는 마음에 안 드는 아들의 일처리에 혀를 찬다. 도대체 누구 말이 옳은가?
축산 대물림에서 1세대와 후계 농가의 가장 큰 갈등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소통불능에서 온다. 왜 소통이 되질 않는 것일까? 그것은 비단 축산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반적인 세대 간의 갈등이 같은 공간에서 부딪치기 때문이다. 
서로 상호 간의 처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자신의 주장만 옳다고 생각하기에 그렇다. 예를 들면 아버지 세대가 처음 축산을 시작할 때의 상황과 아들의 첫걸음이 다르다. 아버지는 아들이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고생해온 과정을 지켜보았기 때문에 많이 이해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그럴까?
한 두 마리의 가축을 키우며 그들이 새끼를 낳고, 야금야금 수익을 올릴 때마다 세를 불리고, 수급 불안정으로 가축의 가격이 폭락했을 때도 굶어가면서 가축을 처분하지 않았다. 지금의 규모는 그렇게 불려온 것이다. 
하지만 자식은 모른다. 핏줄을 이어받고, 곁에서 지켜보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는 제 3자다. 그러니 말하지 않아도 알리라는 것은 오해다. 게다가 자신의 고생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부모의 배려도 한몫했다. 
천한(?) 직업을 이어받지 않고 지위 상승을 위해 자의반 타의반 자식은 농촌을 떠난다. 그리고 학교를 졸업하고 도시에서 직장을 잡는다. 9시에 출근해 5시에 퇴근하는 편안함을 추구하지만, 도시의 직장 생활도 생각대로 녹록한 것은 아니다. 
그러는 동안 상황이 바뀌었다. IMF를 겪고 직장도 편한 시대는 지나갔다. 일자리를 잃거나 조기에 퇴직을 강요당하거나 불안함이 일상화됐다. 반면 폐업을 이겨내면서 축산을 이어갔던 농촌의 아버지는 규모를 키웠다. 
상황이 이쯤 되니, 자의반 타의반 고향을 떠났던 이들은 다시 자의반 타의반 귀향길에 올라  가업을 잇는 대물림의 대열에 끼어든다. 그중엔 나름 축산에 대한 전문지식으로 무장된 이들도 많다. 
자신들의 부모가 일궈놓은 터전을 더 키워보고 싶은 생각이 앞서지만, 정작 초보의 축산농가 앞에 놓인 것은 직접 겪어보지 못한 험한 일들이다. 상상했던 축산농가의 삶과 실제 삶의 괴리는 완전히 예상 밖이다. 
일선축협의 조합원으로 활동하는 후계 축산인들이 가장 목말라하는 것이 바로 ‘축산 현장에 대한 지식’이라는 점이 그것을 잘 대변해 준다.  

 

소통 못 할 일은 없다


한우 우수농장으로 선정된 농가에 가보면 1세대와 후계 세대와의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분명해진다. 하지만 소통의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1세대가 병으로 더 이상 경영을 할 수 없어서 전체를 물려준 경우거나, 통 크게 아예 농장 하나를 떼어내 맡긴 경우다. 
후계 세대의 대부분이 부모 세대의 땀과 눈물을 바탕으로 일군 규모농가를 물려받았다. 함께 있을 땐 티격태격 갈등이 심했지만, 전적으로 경영에 참여하게 될 땐 무거운 책임감 때문에 작은 것이라도 부모 세대의 조언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뤄지고, 잦은 대화는 이해와 소통으로 이어졌다. 
어떤 사회든 세대 간의 갈등은 언제나 존재하기 마련이다. 시간의 흐름은 상황을 변화시키고, 변화된 상황은 그것에 대처하는 인식도 변하기 때문이다.  
후계 세대들은 주변과 정보를 교환하고 변화하는 상황에 발빠르게 대처하거나, 부모 세대들이 속으로 참으며 견뎌낸 부조리한 상황에 대해서도 함께 헤쳐 나가려는 의지가 강하다. 그런 것들에 좌절해왔던 부모 세대들에게는 부질없는(?) 짓으로 보일지는 몰라도 말이다.
부모는 자식이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어려보이고 못내 불안해 보이는 것은 당연지사다. 하지만 세대 간의 갈등이 상호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서 온다는 사실에 입각하면 소통 못할 일이 아니다. 
어느 사회든 조직이든 마찬가지다. 조직이 발전하는 과정에서는 좌충우돌하는 저돌적인 조직원이 필요하지만, 안정기에 접어들면 관리형이 필요하다. 초창기의 멤버들이 ‘토사구팽’이라고 분노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처해진 상황에 따른 인식에 기반을 두지 않는 행동은, 갈등을 조장하고 결국엔 전체가 공멸하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내가 조금씩 변화하고 바뀌면 사회는 그에 맞게 진화한다는 말은 쉽다. 하지만 행동으로 옮겨지기는 힘든 일이다. 
우리의 무지와 게으름을 주변의 탓으로 돌려서는 안된다. 그것이야말로 어거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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