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경제신문 권민 기자] 한참 전의 일이다. 아들과 함께 <변호인>이란 영화를 본 적이 있다. 그 영화를 본 사람들의 평이, 영화가 끝나고 그렇게 순대국밥이 먹고 싶은 적이 없었다고 했다. 
영화관 옆에는 수십 년을 한 장소에서 대를 이어 순대국을 팔던 식당이 있었다. 학창시절 수십 번을 더 다녔던 그 집에서 아들과 순대국을 먹으며 영화 이야기를 했다. 
‘부림 사건’을 모티브로 노무현 대통령의 변호사 시절을 그린 그 영화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엄혹했던 군사독재시절을 이야기 했다. 바로 어제 일 같이 또렷한 기억을 풀어가던 중 아들의 얼굴을 봤다. 

 

세대간 갈등의 원인


아들은 코메디 영화인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빠 정말 있었던 일이예요?” 한다. 그날 처음으로 아들이 낯설게 보였다. 아마 아들도 나와 똑같은 생각이었으리라. 
그 일을 지인에게 말했더니, 지인 왈 “야, 나는 더 했어”다. 사연인 즉 이랬다. 그는 그의 아들과 5·18민주화 운동을 그린 <화려한 휴가>라는 영화를 봤단다. 그리고 맥주집에서 아들과 대화를 하는 데, 아들이 “아빠, 정말 있었던 일이예요?” 했단다. 
그때 그 지인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우리는 아들 세대를 우리의 관점에서 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겪었던 시절을 마치 아들 세대도 겪었다는 착각 말이다. 우리가 아들 세대를 이해하지 못하니 아들 세대도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렇게 쌓여 세대 차이가 나타나는 것이라고. 
세대 간의 갈등은 어느 시대에서나 존재해 왔다. “요즘 젊은 것들은 왜그래?” 이 말은 과거에도 흔히 쓰였던 말이고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그와 함께 같이 쓰이는 말이 “우리 때는 안 그랬다”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과거에는 우리가 그 말의 피해자였고, 현재에는 가해자로 바뀌어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 대부분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한 채, 자신들만의 울타리를 만들어 꾸짖거나 조롱당한다.   
 ‘표현형 편견’이라 일컬어지는 특수한 형태의 인종 편견을 연구하는 사회심리학자인 키스 매덕스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의미를 함께 공유하며 연대하는 내집단을 형성하려는 우리의 욕망은 결코 채워지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그 욕망을 채우려고 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우리의 많은 경험은 가족과 종교와 민족의 역사에 근원적으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내집단의 유대를 강화하려는 그 속성 자체가 여러 집단으로의 분열과 심지어 탈인간화를 부추길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우리가 지금 양쪽의 진영으로 갈라져서 조그마한 자극에도 죽기 살기로 서로 물고 뜯는 극심한 양극화의 원인은, 한 가지가 아니라 다분히 다면적이라고 지적했다.    
비단 그것이 정치적인 것만은 아니다. 미국의 정치학자인 조너선 하이트는 <바른 마음:나의 옳음과 그들의 옳음은 왜 다른가>에서, 서로 갈라져 싸우고 있는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는 도덕적 기반이 다르기 때문에 현실에 대한 인식도 다르기 마련이라고 했다. 

 

보수와 진보의 차이


그는 세 가지 중요한 도덕적 가치-피해·보살핌, 공정함과 자유-는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 그리고 중도까지 모두 인정한다고 했다. 예를 들면 타인을 해치는 것은 나쁜 행동이고, 타인을 보살피는 일은 올바른 행동이다. 또 모두가 공정한 대우를 받아야 하고, 모두가 자유로워야 한다.   
그러나 보수주의자의 도덕 가치 체계에서는 진보주의자가 도덕성과 관계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들이 추가된다. 그중 하나가 ‘권위’다. 외적인 규칙을 따르고 책임자에게 순응하는 자세다. 
따라서 보수주의자는 권위를 존중하지만, 하이트가 주장하듯 진보주의자의 유명한 구호는 ‘모든 권위에 대해 의문을 품어라’다. 
또 다른 하나는 ‘순수함’이다. 특히 성적 취향과 임신에 대한 보수주의적 관점과 관계가 있다. 세 번째는 ‘충성심’이다. 
보수주의자들은 차이를 제쳐두고 서로 돕는 반면에 진보는 사소한 것까지 들추어내며 애국심의 표현을 국가주의라고 생각하며 애국심을 강하게 드러내는 걸 피하는 성향을 띤다. 
성격적인 면에서도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는 특히 ‘경험에 대한 개방성’ 다시 말해 새로운 경험과 경계 무너뜨리기보다 전통적인 경험과 안전지대를 바라는 정도가 확연히 다르다. 
이러한 것들을 종합해 보면 전통과 권위를 존중하고 내집단에 충성하며, 사회 규범을 위반하는 사람을 의심하고, 가족과 친구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외부의 위협을 차단하려는 사람들은 작은 피해와 공정함을 기꺼이 희생하려고 한다. 
그 반대쪽에는 피해자와 공정함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고, 사회의 진보를 위해 권위에 도전할 필요가 있다고 믿으며, 또 사회 규범이 제약적이어서 창의성과 개인의 개별적인 경험을 방해한다고 생각하고 배려가 필요한 다양한 타자에게 다가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위치해 있다. 
어느 것이 옳고 그른 것은 아니다. 또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이고 나쁜 사람인지도 생각하는 기준에 따라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집단이 양극화되면 어떤지는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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