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경제신문 권민 기자] 1962년 사우스캐롤라이나의 한 섬유공장, 후덥지근한 그 공장에서 여름은 가장 바쁜 계절이어서 모두가 잔업에 투입됐다. 그 주에는 진드기 같은 작은 벌레가 수입 옷감에 묻어왔다는 소문 때문에 스트레스가 더욱 심했다. 
그날 오후 늦게, 한 젊은 여성이 벌레에게 물린 것 같다고 호소하더니 곧바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다음 주 화요일에는 또 다른 여성이 벌레에 물렸다며 전전긍긍하다가 끝내 실신했다. 

 

집단 히스테리 난무


또 다른 여성도 쓰러졌다. 곧이어 4명의 여성이 어지러움증을 호소하고 구토 증세가 있다고 의사에게 하소연했다. 
그로부터 11일 동안 62명의 직원이 벌레에게 물렸고, 그로 인한 다양한 징후로 의학적 치료를 받았다. 벌레에 대한 그들의 진술은 상당히 구체적이었고 자세했다. 
공장 경영진과 정부 당국이 광범위하게 조사한 결과, 소수의 벌레가 발견되었지만, 그 벌레들은 사람을 물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공장 노동자들의 하소연이 증상의 원인일 수 없었다. 
의사들을 비롯한 전문가들은 그런 외형적 증거를 검토한 끝에, 노동자들이 겪은 질환은 결국 머릿속에만 있었던 것이란 뜻밖의 결론을 내렸다. 이러한 현상은 ‘히스테리성 전염’이라고 일컬어지며, 더 극단적인 표현으로는 ‘집단 히스테리’로 불린다. 
그 6월의 벌레 사건 이후로, 최근에는 뉴욕의 한 고등학교에서 여학생들이 ‘투렛 증후군’과 유사한 증상을 집단으로 보인 적이 있다. 투렛 증후군은 자신도 모르게 경련을 일으키거나 소리를 내는 일종의 ‘틱 장애’다. 
이런 사례들의 공통점을 정리하면 물리적으로 제한된 공간과 유대가 긴밀한 집단이다. 이런 집단에서 어떤 지표적 징후가 발생하면 그 증상이 전염되고, 그로 인해 집단에 극도로 불안한 상태가 지속되는 동안 현기증과 경련 등 다양한 증상이 나타난다. 
미국의 어섬프션 대학교에서 심리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어섬프션 대학교 부속인 다무르 센터 부국장인 세라 로즈 캐버너의 저서 <패거리 심리학, 원저 하이브 마인드HIVE MIND> 서문의 일부분이다.  
그녀가 왜 이러한 사건들을 맨 먼저 꺼냈을까? 바로 강화된 내집단과 외집단의 갈등을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갈수록 극과 극으로 찢어진 이 갈등의 국면을 번역자는 바로 ‘패거리’로 요약했다. 
그는 갈등을 심화시키는 요인 중 하나가 소셜미디어라고 규정하지만, 소셜미디어를 우리가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보다 나은 삶으로 진행될 수 있다고 따뜻한 충고를 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2020년 한해는 코로나로 시작해 코로나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은 아니라고 하지만 우한발 코로나바이러스는 지금껏 우리가 누려온 모든 것들이 어떠했는지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준 사건이다. 
세계가 하나라고 자유경제를 전파하고, 글로벌 시대를 찬양했던 소위 선진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위기가 닥치자 국경을 걸어잠근 채 자국 이기주의자로 돌변했다. 
멀리 볼 것도 없다. 우리는 현재 국가적 위기 앞에서도 당파적 싸움에 몰입해 자신의 당에 이익으로 삼고 싶어 안달이다. 그 모두가 ‘국민의 이익’을 핑계 삼지만 하는 행실을 보면 과연 그들의 주장처럼 국민의 안위나 생각하고 있는지 혀를 찰 지경이다. 

 

자성의 시간 가질 때


입으로는 ‘협치’를 내세우면서도 그렇게 조장된 파당은, 서로를 물고 뜯는 난장판이다. 소셜미디어는 온통 ‘탈인간화’된 말로 도배되다시피 한다. 탈인간화란 외집단을 지능도 낮고 공감 능력도 부족하다고 묘사하는 것이다. 
자신의 행동을 절제하지 못하고, 공격적인 충동에 휩쓸리며, ‘금수 같은’ 속성을 지닌 존재로도 묘사된다. 이런 평가들은 본능적인 혐오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세라 로즈 캐버너는 말한다. 
여기에는 객관적이어야 할 언론들도 합세한다. 정치와 야합해서 기존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위기를 조장하고, 선택된 언어들로 여론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몰고 간다. 
캐나다의 작가 겸 칼럼리스트인 나오미 클라인은 이러한 것들을 ‘쇼크 독트린’으로 규정했다. 위기를 조장해 사람들이 두려움을 품기 시작하면 먼저 그 문제의 해결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사물을 정확히 보려 하지 않다는 것이다. 때문에 위기를 조장하는 부류는 자신들의 속뜻을 현실에서 펼쳐 보이기 쉽다고 했다. 
그들은 그래서 언제나 ‘위기를 기회로 삼는다’고 한다. 위기는 모든 것들을 단박에 쓸어버리기 때문에, 그들이 제시하는 것들을 제대로 살펴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기존의 반대도 세력을 잃게 마련이기에 그렇다. 
도대체 누가 갈등을 조장하는가? 도대체 누가 누구를 탓하는가? 잘되는 집안은 평상시 서로 싸우다가도 위기가 닥치면 합심해서 그 위기를 떨쳐낸다. 
하지만 ‘콩가루’ 집안은 평상시에도 잦은 싸움이 일지만 위기가 닥치면 서로 ‘네 탓’ 공방을 하면서 더 심하게 갈라선다. 
한 해가 며칠 남지 않았다. 그 며칠이 다른 며칠과 무슨 차이가 있겠냐마는 갈등보다 화해를 생각하고, 말보다 방역 일선으로 뛰어드는 이들을 먼저 생각하는 자성의 시간을 가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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