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경제신문 권민 기자] 최근 한 종합일간지 1면 톱 기사의  ‘영국 첫 백신접종, 인류 반격이 시작됐다’라는 제목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인류의 반격이라고? 코로나 펜데믹의 기세를 꺾을 백신접종을 두고 나름대로 머리를 짜낸 제목이겠지만, 쓴웃음이 나오는 것은 왤까?
아직도 모든 가치 판단 기준이 사람이고, 사람에게 이익이 되면 좋은 것이고, 해가 되면 나쁜 것이라는, 그래서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는 인간중심의 고리타분한 사고방식에 빠져있는 것은 아닐까?

 

인간은 만물의 척도


그런 의미에서 서울대 종교학과 배철현 교수가 하버드 대학시절의 에피소드는 참 좋은 교훈으로 남는다. 
그가 하버드 대학에서 공부할 때 들은 이야기다. 당시 찰스 윌리엄 엘리엇 총장은 새로 지은 철학과 건물의 꼭대기 인방보에 새길 글을 철학과 교수들에게 요청했다. 
인방보란 창, 문 등 개구부 바로 위의 벽을 받치기 위해 걸쳐진 콘크리트, 돌, 나무 혹은 스틸의 수평부재로, 창문 위에 건너질러 상부에서 오는 하중을 좌우벽으로 전달시키기 위하여 대는 보를 말한다. 
철학과 교수들이 상의해 총장에게 제출한 문구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프로타고라스의 ‘인간은 만물의 척도’였다. 
그러나 실제로 철학과 건물이 완성되고 인방보를 가린 천이 내려졌을 때 거기에 새겨진 문구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가 아니었다. 구약성경 시편 8장 5장에 나오는 ‘인간이 무엇이기에 당신이 이토록 보살피십니까?’였다. 
인간이 최고라는 자부심보다 신 앞에 무릎을 꿇는 겸손함을 더 가치있는 것으로 판단했던 것이다. 
1만2000여년의 인류 역사는 45억년이라는 지구 역사에 비하면 아주 작은 점 하나에 불과하다. 지구가 생겨나고 그 오랜 세월동안 인류가 주인공이었던 적은 아주아주 최근의 일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자연을 착취하고 파괴하면서 마치 원래부터 주인공인 양 득의양양하다. 이제는 질병까지도 통제할 수 있다는 자만심에 빠진 듯하다. 
인류의 질병에 관한 자만심이 얼마나 무지의 소치인지는 ‘인수공통감염병의 열쇠’를 쓴 내셔널 지오그래픽 고정필진 중 한 명인 데이비드 콰먼의 말을 빌리면 확연하게 나타난다. 
그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잊을 만 하면 찾아와 닭을 몰살시키고 사람의 건강까지 위협하는 에비앙 인플루엔자(AI),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했던 사스, 아프리카 사람들을 끔찍한 고통과 죽음으로 몰고 가는 에볼라, 말레이시아와 방글라데시를 휩쓴 니파, 2900만 명의 사망자와 3000만 명이 넘는 환자를 낳을 세기말 역병 에이즈, 2015년 우리나라 전체를 마비시켰던 메르스, 그리고 소위 ‘햄버거병’으로 알려진 용혈요독증후군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모두 동물의 병원체가 인간에게 옮겨와 생기는 병, 즉 인수공통감염병이다. 이들 병원체는 동물의 몸에서 살며 간헐적으로 인간을 공격한다. 유행이 가라앉아도 병원체는 동물의 몸속에 숨어 계속 명맥을 이어가므로 모든 동물 숙주를 멸종시키지 않는 한 근절시킬 수 없다.

 

생각 그 자체가 망상


동물의 몸속에서 계속 변이를 일으키며 진화하기 때문에 효과적인 백신을 만들기도 어렵다. 왜 동물의 병원체가 인간에게 건너올까? 인간과 동물이 접촉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숫자와 능력이 폭발적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분별과 도덕과 지혜가 능력을 쫓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1979년 천연두 퇴치운동에서 인간이 승리한 이유는 인수공통감염병이 아니기 때문이다. 천연두 바이러스는 자연적인 조건에서 오직 인간에게만 감염을 일으킨다. 
수천 년간 인간을 괴롭히며 특히 20세기 전반 유럽과 북미에서 무시무시한 유행을 일으켰던 소아마비도 마찬가지다. 
1988년 WHO는 몇몇 협력기구와 손잡고 국제적인 박멸운동을 시작해 현재까지 환자수를 99% 감소하는 데 성공했다. 이유는 뭘까?
수백만 명에게 백신을 접종하는 것이 쉽고, 비용도 많이 들지 않을 뿐 더러 영구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바이러스가 인간 외에는 달리 숨을 곳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말라리아의 경우는 어떤가? 전 세계적으로 말라리아 박멸운동이 벌어졌지만 결과적으로 말라리아는 인간이 종식시킬 수 없다는 사실만 입증됐다. 왜냐? 말라리아를 옮기는 매개체부터 보유숙주를 모두 멸종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2년 8개월 만에 고병원성 AI가 가금농장에서 발생해 전국 대유행 조짐을 보이고 있다. 방역당국의 예방적 살처분이 한창 진행 중이다. 수많은 닭과 오리, 메추리들이 2016~2017년과 마찬가지로 산채로 매몰되고 있다. 
AI 바이러스를 묻힌 채 수천km를 날아다니며 국경을 넘나드는 철새를 비롯 야생조류를 막는다는 생각 자체가 일종의 망상이다. 그러니 이제는 농장주들이 방역을 잘못했다고 책임을 묻는 것도 허황되다. 
살처분에 따른 가금류 수급 불안은 가격을 움직인다. 질병을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좀더 새로운 대책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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