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경제신문 권민 기자] # 19세기 중반 프랑스의 한 염색공장에서 벌어진 일이다.
모두가 바쁘게 정신없이 일하는 도중 한 여직원이 등유가 든 램프를 옮기다가 염색 테이블 위에 떨어뜨리는 실수를 했다. 램프가 깨지고 램프 안의 등유가 쏟아져 나왔다.
당연히 테이블에 올려둔 작업물들은 단숨에 엉망이 되었고, 바쁜 와중에 작업이 중단된 공장 직원들은 투덜거리며 화를 냈다. 물론 그 여직원은 그 실수로 인해 직장에서 ‘아웃’될 것이 겁나 어쩔 줄 모르고 구석에서 눈치만 살폈다.  
그런데 당시 공장의 대표였던 장 밥티스트 졸리는 조금 달랐다. 화를 내기 전에 먼저 그 상황을 ‘관찰’한 것이다.
염색 공장의 작업대를 덮고 있는 테이블보는 계속되는 작업으로 여러 가지 염색약에 얼룩져 있었다. 그런데 여직원이 등유를 쏟아버린 부분만 얼룩이 지워져 가는 것을 보았다.
장 밥티스트 졸리는 그것을 조용히 관찰하고 생각했다. 세탁 산업의 한 축이 되어버린 ‘드라이클리닝’이 발명되는 순간이었다.

 

접시론 의미 파악을

 

# 핀란드의 10월 13일은 ‘실수·실패의 날’이다.
지난 1년간 저질렀던 실수나 실패했던 사례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여, 다시는 그런 실수나 실패를 하지 않도록 반전의 기회로 삼으라는 취지로 지정한 것이다.
한 번의 실수도 없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어쩌면 사람이 바르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 중의 하나는 실수일지도 모른다.

# 지난 18일 인사혁신처‧국무조정실‧행정안전부가 공동으로 주관하는 ‘적극행정 경진대회’가 열렸다. 
이날 정세균 국무총리는 기념사를 통해 “적극행정의 핵심은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라면서 “과거의 관행과 시선에 머물지 않고, 진취적이고 창의적인 자세로 변화를 주도하는 힘”이라고 정의했다. 
또 적극행정을 ‘접시론’으로 설명했다. “일하다가 접시를 깨는 것은 얼마든지 용인할 수 있지만 일하지 않아서 접시에 먼지를 쌓이게 해서는 절대 안된다”는 의미다. 그리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과감히 도전하라”고 강조했다. 
2020년 상반기에 이어 하반기에도 농림축산식품부가 2회 연속 최우수 성적으로 입상했다. 그리고 그 성과를 ‘장관’의 솔선수범으로 돌렸다. 
상반기엔 ASF 확산방지 사례로, 하반기엔 교육부와 협업해 학생가정에 농산물 꾸러미를 공급한 사례로 입상했다. 이것은 융통성 있는 법 해석, 제도적 범위에서 창의성 발휘를 장관이 강조한 덕분이라는 것이다. 
그즈음 가금을 사육하는 농장주들의 하소연이 들렸다. 농식품부에서 소독 인증사진을 매월 두 차례 찍어보내라는 내용이다. 뜻은 현장에서 소독이 잘되고 있는지, 농가가 소독할 때 규정은 잘 지키고 있는지 알기 위해서라지만 실상은 장관 일일 상황보고에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기존에는 가금농장 소독사진과 생석회 도포사진만 제출해왔는데 앞으론 가금협회별 일일 사진 제출실적과 누적실적을 보고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는 것이다. 참 기발한 아이디어다. 이런 것이 적극행정이라면 농식품부는 내년에도 그리고 후년에도 내리 받을 수 있으리라. 
지난해 ASF로 농장에 있는 모든 돼지를 예방적 살처분한 희생농가들이 재입식을 언제 할 수 있느냐고 1년 동안 되묻기한 덕분에 겨우 재입식의 길이 열렸다.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한 희생농가들은 하도 꿀먹은 벙어리여서 장관이 현장을 방문하는 곳을 따라다니며 물었다. 
그 농가들이 얼마나 귀찮았으면 농가들은 장관이 자신들을 피한다고까지 분통을 터뜨렸다. 농식품부 예산의 태도도 말이 많았다. 

 

누구위한 행정일까


반드시 필요한 예산이라고 반영해야 한다면 기재부의 입장을 들어 먼저 삭감하거나 아예 반영조차 하지 않는다는 불만도 팽배했다. 오죽하면 기재부 대변이라는 말까지 돌았을까.
실수나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은 정부의 정책을 행정으로 옮길 때 그렇게 하라는 말이 아니다. “농가의 불만과 불편을 두려워하지 말라”로 이해했다면, 그리고 적극행정이 그런 뜻이라면 이건 도대체 누구를 위한 행정일까? 행정을 위한 행정이 아닐까?
정 총리의 접시론의 대상은 공무원이고 공무원이 지향해야 할 대상은 국민이고 농민이다. 그들을 위해서 그들의 편익을 위해서 아이디어를 내고, 창의성을 발휘하라는 뜻이다. 책상머리에 앉아서 잣대로 쭉 그어놓고 어떠한 불만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밀고 나가라는 뜻이 아니다. 
소독사진 인증사진을 찍어 보내라면 AI가 이곳저곳 야생조류의 분변에서 발생하고 있는 긴박한 상황에서 축사를 돌아보며 가축에 이상이 없는지 체크하고, 축사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뺏는 것도 그렇지만 그것으로 소독에 이상이 없다고 안심하려는 것도 참 어이없는 짓이다. 
어떻게 이런 발상이 나오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도 없지만, 이런 부처가 어떻게 적극행정 우수 사례가 됐는지도 궁금하다. 우수사례를 보급하고 확산되는 것이 경진대회의 뜻이라면 오히려 이런 사례가 벤치마킹될까 염려되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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