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경제신문 권민 기자] 과거 가축 사육방식의 극단적 잔혹성을 21세기 대한민국 축산업에 대비하는 것은 ‘맞지 않다’가 아니라 ‘옳지 않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를 전체로, 특수한 상황을 일반적 상황으로 확대하는 것은 다분히 고의적이다. 
고의성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 그럼 그 목적이란 도대체 뭘까? 동물을 사랑해서일까? 정말 식생활의 윤리성을 깨달아서일까? 

 

축산업 폄훼 고의적


비건들 중에는 많은 수가 애완동물을 키우고 있지만 그들이 고양이와 개 등에게 먹이는 사료와 애완용품들에는 가축의 부산물이나 혈액이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대부분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애완동물이 먹는 것들은 뭘까?
그들이 축산인들이 가축을 직접 살생한다고 비난한다면 자신들은 간접 살생자가 아닐까? 게다가 고기를 먹는 행위가 자신의 윤리적 식생활과 맞지 않다면 자신의 윤리대로 행동하면 그뿐이다. 타인의 윤리성을 비난할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앞서 ‘식육용 송아지고기’의 예를 좀더 구체적으로 들면, 사실 그 사육방식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역겨울 정도지만 왜 그 고기 생산에 열을 올렸는지를 설명하자면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적절한 예일 수도 있을 듯 싶다. 
동물을 사육할 때 인위적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 성별이다. 암컷과 수컷은 거의 비슷한 비율로 태어난다. 우유를 생산하기 위해 소를 키우는 곳에서는 수송아지 처리가 문제다. 이 수송아지들은 대부분 식육용으로 키우기에도 적당하지 않다. 우유를 생산하기 위해 개량된 종이기 때문이다. 
원치 않게 태어난 수송아지들을 ‘보비bobby 송아지’라고 한다. (물론 지금 이야기하는 것은 국내에선 사육된 적이 없다.) 이 수송아지들은 ‘흰송아지 고기’로 팔리게 되는데, 사육방식은 네덜란드에서 유행해 유럽과 미국 등 지금의 축산 선진국이라는 나라에서 확산됐다. 
특히 네덜란드에서는 수백 년간 특수한 방법으로 흰 식육용 송아지고기를 생산했다. 모든 어린 동물들은 살이 희게 태어나지만, 운동과 음식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살색이 빠르게 짙어진다. 고기색을 희게 한다는 것이 특수한 방법이다. 
과학적으로 고기색을 희게 만들기 위해서는 두 가지 과정이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한다. 첫째 동물의 살과 근육에 있는 색소인 미오글로빈의 발달을 막는 것이고 둘째, 송아지에게 빈혈을 유발하는 사료를 먹이는 것이다. 
네덜란드를 비롯 유럽과 북미의 사육자들이 ‘흰 송아지고기’를 만들기 위해 주기적으로 송아지의 목에 있는 혈관을 베어 피를 빼내는 작업은 그나마 가장 자비로운 방식이다. 일부러 빈혈을 유발하는 방식은 상상을 초월한다. 
사육방식이 하도 끔찍해 그 나라들에서조차 금지했지만 왜 이런 방식이 오랫동안 유지됐느냐는 의문에 대한 답변은 아주 간단했다. “주부는 반드시 흰색 송아지고기를 삽니다. 빨간 송아지고기는 안사요”다. 
생산자에게 지불되는 가격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은 육질의 백색성이었다. 그리고 그 수요는 요리의 질이나 맛, 부드러움 때문이 아니다. 백색성은 단지 고기를 보기 좋게 하고 고기 속에 뼈를 볼 수 있고, 우유만 먹여 키운 송아지임을 소비자에게 보여주는 것뿐이었다. 

 

소비자들 이중성


사육방식의 잔인성 때문에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은 바로 소비자 이기주의 또는 이중성이고 자신들이 구입하고 먹는 고기에 대한 무지함이다. 
‘값싸고 품질 좋은’ 것을 찾기 시작하면 제품을 공급하는 생산자들의 입장에서는 ‘편법적인’ 방식을 선택할 수밖에 도리가 없다. 품질 고급화를 추구하는 공급자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구조다. 
밀집식 또는 공장식 가축사육방식의 도입도 같은 맥락이다. 농축산업계에서 가격 경쟁을 버텨내려면 규모를 늘려 박리다매식의 생산방식을 채택할 수밖에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을 무시하고 축산인을 매도하는 것 자체가 무식의 소치다. 
그렇다고 해서 축산인들이 이전과 같은 환경과 동물복지를 무시한 사육방식에서 벗어나지 않고, 극단적 축산반대론자의 주장과 똑같은 무식함으로 반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육방식이 바뀌어가듯 윤리적 소비에 대한 의식도 바뀌어가고 있기에 그렇다. 
가축을 키우면서 수익을 올리는 것에는 외부에 끼친 손실의 대가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가 나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가축을 키우는 데 왠 참견이냐”는 주장은 맞지 않는 논리다. 
2000년 초 소고기 개방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축산물 브랜드화가 추진됐다. 가격 경쟁에서의 열세를 품질로 승부하겠다는 의도였다. 혈통‧사료‧관리 등 3통(統)을 모토로 국내 축산물은 고급화됐다. 안전과 위생도 확보됐다. 
내가 생산한 축산물이 무엇을 먹고,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사육되었는지 ‘스토리’까지 입히는 단계에 이르렀다. 막연한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소비자는 이기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수준이다. 
환경이 강화되면서 축산도 이전의 축산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래 전의 잣대를 들이미는 것은 그만큼 속을 들여다보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을 일깨우는 것은 축산인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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