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성했던 나뭇잎도 가을 앞에는 맥없이 무너지면서 오색 물감을 두른다. 산에서 의연하게 살고 있는 나무는 곱디고운 단풍을 만들어 사람들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아마도 산자체가 변화 없이 똑같은 형태로 서있다면 사람들은 식상해 할 것이다. 
봄에는 연둣빛 속잎을 살포시 밀어내고 여름에는 진한 초록색으로 장식을 하고 있으며 가을에는 형형색색 단풍으로 나무들도 변화를 꾀한다. 
단풍이 드는 원리는 나무에서 초록색을 내는 엽록소(葉綠素)가 파괴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식물의 색소에는 초록색 엽록소만 있는 것이 아니고 안토시아닌은 잎사귀를 빨갛게, 카로틴은 누르스름하게, 크산토필은 샛노랗게 물들인다. 
지구상에는 870만 종류의 생물이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중 동물이 770만 종, 식물은 29만 8000종으로 알려져 있다. 동물은 추위나 더위를 피하는 방법이 식물에 비해서는 나름대로 잘 대처해 나간다. 
특히 인간은 난방이나 냉방을 이용하여 살아간다. 하지만 나무는 북풍한설 몰아치는 동토나 대지위에서 꼼짝하지 못하고 추위와 더위를 이겨나가는 방법을 터득하지 못하면 생존이 불가능하다. 
나무가 추운 겨울을 나는 방법은 울긋불긋한 단풍을 만들어 내거나 잎을 바짝 말려서 땅에 떨어뜨리는 것이다. 결국 나무도 생존을 위해 이파리로 하여금 녹색의 엽록소를 띠우고 기온이 10도 이하로 내려가면 얼어 죽지 않기 위해 오색단풍을 선보이는 지혜로 겨울나기를 하는 것을 볼 때 영리한 생존방법에 감탄을 금할 길 없다.
 흔히 가을에는 산행도 좋지만 독서하기에 제격이라고 말한다.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찌는 계절이라서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독서하는데 유독 가을만이 좋겠는가. 어느 계절에 책을 읽어도 다 좋으리라. 
파란 하늘과 서리 맞은 단풍이 어우러져 시인의 시상이 절로 나는 계절임에 틀림이 없다. 
조선 중기의 학자인 율곡 이이(李珥,1536-1584년)가 늦가을 파주시 파평면에 있는 화석정(花石亭)이라는 정자에서 읊은 시에도 서리 맞은 단풍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숲속 정자에 가을 깊으니/ 시인의 뜻은 다함이 없도다/ 멀리 흐르는 강물은 하늘과 이어져 푸르고/ 서리 맞은 단풍은 해를 향해 붉도다/ 산은 외로운 둥근 달을 토해내고/ 강은 만리의 바람을 머금도다/ 변방의 기러기는 어느 곳으로 가는가/ 울음소리 저무는 구름 속으로 사라지누나.” 
단풍 명소인 설악산 천불동계곡과 경북 봉화 청량산의 단풍이 곱다. 코로나19로 외출이 어렵지만 코로나블루(우울), 코로나레드(분노)를 달래기 위한 힐링도 필요하다. 
나무의 생존방식으로 아름다운 단풍을 선사받고 있으니 자연의 선물 앞에 인간은 늘 겸손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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