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태종은 성군중의 성군이다. 그에게는 세 개의 거울이 있었는데 자신의 얼굴을 비춰주는 구리거울, 역사의 흥망성쇠를 알려주는 역사의 거울, 그리고 나의 언행을 바로 잡아주는 사람의 거울이 그것이었다. 
항상 직언을 멈추지 않았던 위징(魏徵)이 오늘 세상을 떠났으니 누가 나에게 직언을 하겠는가. 당 태종은 너무 슬퍼 5일 동안 조회를 파하며 위징을 추모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신하들에게 “오늘 내가 거울 하나를 잃었다!”며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적의 충신을 발탁한 명군 당 태종은 자신에게 적대시 해왔던 정적의 심복부하를 처벌하지 않고 오히려 중용하여 중국 5천년 역사에 찬란한 치세로 기록되고 있다. 당 태종 이세민은 고조 이연의 2남으로 부왕을 도와 대당(大唐)제국을 일으킨 창업공신이다. 그러나 장자 상속원칙에 밀려 황태자 자리는 장남 건성에게 돌아가고 2남인 본인은 진왕에 만족해야 했다. 더구나 황태자와 3남 원길로 부터도 견제를 받았다.
이세민은 돌궐족 정벌을 계기로 ‘현무문의 변란’을 일으켜 건성과 원길을 치고 황태자로 책봉되었다가 고조의 뒤를 이어 제위에 올랐다. ‘현무문의 변란’으로 정권을 장악하게 된 세민은 두 사람의 인재를 얻었다. 위징과 왕규 두 사람은 형의 충신으로 항상 형에게 세민을 쳐서 후환을 없애라고 충동질했던 인물들이었다. ‘네놈은 왜 우리형제들 사이를 이간 시켰는가’라고 세민이 문초하자, 위징의 태도는 당당했다. “황태자 건성이 나의 진언에 따랐으면 오늘과 같은 비운은 없었을 것이다….” 태종도 대단한 인물로 금방 상대를 알아보고 그를 발탁했다.
제나라 환공을 도와 천하를 통일한 관중(管仲)에게 정치를 누구에게 맡기면 좋겠냐고 자문을 구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러자 관중은 자식을 아는 데는 그 아버지만한 사람이 없고, 신하를 잘 아는 사람은 임금만한 이가 없다며 임금께서 생각해서 결정하라고 답했다. 그러자 환공은 포숙아(鮑叔牙)는 어떠냐고 묻자 관포지교(管鮑之交)라는 숙어를 낳을 정도로 가까운 친구였지만 재상으로서의 경륜을 못 갖췄다고 고개를 저었다. 
또 수조를 추천하자 소인이라고 혹평했고 개방, 역아 등을 거론하자 관중은 “위험한 인물” 이라며 멀리할 것을 당부했다. 1년 뒤 관중이 죽자 환공은 관중이 추천한 습붕을 외면하고 자기가 신임하는 내시 수조를 썼다. 재상이 돼 3년이 되던 해 수조는 환공이 나들이를 나간 사이에 개방, 역아 등과 공모해 난을 일으켰고 환공은 침전 문지기 방에서 굶어죽었다. 환공 아들들이 후계 다툼을 하는 바람에 시체가 석 달이나 방치됐고 시체에서 생긴 벌레가 문밖까지 기어 나왔다고 한다. 
적의 충신을 기용하는 인재발탁은 제나라 환공이 시조이며 이것을 벤치마킹한 당 태종은 성군으로 추앙받지만 왜 제나라 환공은 비참한 죽음으로 벌레가 되었는가. 곰곰이 생각해 볼일이다. 사람을 거울삼아 위험을 회피한 당 태종은 진정한 성군이다. 나의 거울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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